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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챗지피티 뺨치는 첨단의 농촌 소설 [책&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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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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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의 발견
김종광 지음 l 마이디어북스 l 1만7000원



“딴은 우리 시대의 시골을 실록처럼 기록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썼습니다.”



김종광(사진)의 새 소설집 ‘안녕의 발견’ 작가 후기에 나오는 말이다. 물론 작가는 곧이어 자신의 소설이 지닌 한계와 문제를 겸손하게 고백하지만, 독자로서는 그의 겸손보다는 사명감을 더 사고 싶다. 젊은이들은 빠져나가고 고령 인구만 남은 농촌, 문학에서는 실제보다 더 존재감이 희박해진 시골의 현실을 김종광은 뚝심과 고집으로 줄기차게 다뤄 왔다. 그가 최근에 낸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안녕의 발견’에 실린 아홉 단편은 모두 안녕시 육경면 역경리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작가의 고향인 충남 보령이 안녕시의 모델이다.



한겨레

도시에 살고 있는 작가가 이렇듯 시골 현실을 줄기차게 소설화할 수 있는 비결은 연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와 여전히 고향에 사시는 어머니의 존재에 있다. 어머니는 이번 책에 실린 두 단편에도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토론 배우는 시간’은 시니어 독서 토론 프로그램에 참여한 어머니의 경험을 다룬 작품으로, 작가가 2021년 7월 ‘한겨레’ 여름 특집으로 기고한 짧은 소설을 확대시킨 것이다. 비록 강사의 말을 듣다가 잠깐씩 졸기도 하지만 연륜에 따른 경험과 지혜로 보란 듯이 과정을 마친 어머니가 다시 성인문해교실에 스카우트 되어 겪는 일을 다룬 작품이 ‘뭐라도 배우는 시간’이다. “일기 써보니 꿈만 같지/ 자식한테 편지 쓰고 사진 찍어 보내는 재미 오지지”라며 문해의 감격을 노래한 늙은 학생들의 시가 뭉클하다.



특유의 의뭉과 해학이 경지에 오른 가운데 내용과 형식에서 새로움을 시도한 작품들도 눈에 띈다. 여자 동창의 자살 배경을 캐는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여덟 남성의 입말로만 이루어진 ‘71년생 향토맨들’, 동네 노인들이 똑같은 꿈을 꾸고 마을 아이를 위기에서 구해 내는 ‘어린애를 지켜라’, 촉법소년의 끔찍한 범죄 행각을 담은 ‘시골 악귀’ 등이 그것들이다. 아르바이트로 농사 일을 하러 온 대학생들을 등장시킨 ‘농사는 처음이지?’에서 농사 아르바이트를 마친 한 학생은 이런 소감을 밝힌다. “농촌엔 챗지피티가 뽑아준 답처럼 뻔한 게 없더라고요. 도시 토박이인 저한테는 다 전위적이었어요.” 챗지피티가 할 수 없는 일을 김종광의 소설이 한다는 말이겠다. 따분하고 답답해 보이는 시골 이야기가 오히려 신선하고 전위적일 수 있다는 뜻이겠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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