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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일제 땐 김소월, 당대엔 신경림”…‘국민시인’ 가시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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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2일 오전 별세한 신경림 시인의 추모제를 앞둔 24일 오후 빈소가 마련된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문인 등이 추모제와 장지로 이동할 때 쓸 만장을 만들어 정리하고 있다. 만장에는 시인의 시 글귀 등이 적혔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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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우리 시대의 가장 뛰어난 시인이자 한 비범한 인격과의 작별을 위해 여기 모였습니다. 그는 70년 가까운 문필생활을 통해 수많은 시와 산문을 민족문학의 자산으로 남겼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일제강점기부터 오늘에 이르는 고난의 세월을 이웃 동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정직하고 치열하게 살아냈습니다. 시인 신경림 선생님이 바로 그분입니다.”(염무웅 평론가)



‘민중의 시인’ 신경림의 영결식이 대한민국 문인장으로 엄수됐다. 시인은 22일 오전 89살을 끝으로 영면에 들었다. 1956년 등단 이래 시력 68년.



추모 행렬이 이어지던 24일 저녁 7시 영결식은 염무웅 평론가(영남대 명예교수)의 추모사로 시작했다. 문인장 장례위원장이기도 한 염 평론가는 “일제강점기 김소월이 있었다면 해방후 대한민국 시대에는 신경림이 거의 유일하게 국민시인의 호칭을 들을 만하다”며 “각자 영역에서 대단한 업적을 달성한 시인들이 있지만, 조선 백성 누구나 읽어 각자 나름으로 좋아할 수 있는 시인이 김소월이듯 신경림의 시 세계는 일반 독자의 접근 가능성을 향해 누구보다 넓게 열려 있고 그 안에서 독자들이 누릴 수 있는 문학적 자양분 또한 가장 보편적인 언어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한다”고 추도했다.



영결식은 문정희 국립한국문학관장의 추도사, 이근배·이재무 시인의 조시, 고인의 시에 곡을 붙인 노래, 민중춤꾼 장순향의 천도무로 이어지고, 시인의 시 낭독으로 매듭했다. 고인은 25일 아침 일찍 장지인 충북 충주 노은면 선영으로 떠난다.



이번처럼 대대적으로 국내 문인단체와 기관이 다함께 상주 되어 고인을 배웅하려는 문인장은 소설가 박경리(1926~2008), 이문구(1941~2003)에 이어 세 번째다. 유가족은 당초 “겉치레를 너무 싫어하신 분”이라며 가족장을 추진했다. 문인들이 설득했다. “가족들에겐 그렇지만 우리에겐 국민시인”이라고. 현기영 소설가와 한국작가회의·한국문인협회·한국시인협회·한국문학평론가협회·한국아동문학인협회·국제펜클럽한국본부·한국문학번역원·국립한국문학관 등 단체장이 공동장례위원장을, 도종환 시인(국회의원)이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한겨레

22일 오전 별세한 신경림 시인의 추모제를 앞둔 24일 오후 빈소가 마련된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찾은 시민들이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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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고인의 빈소엔 24일 오전까지 1천여명이 다녀갔다. 황동규(86) 시인은 첫날 다녀갔다. 1970년대 ‘시의 시대’를 개척한 ‘창비시선’과 ‘문학과지성사 시인선’의 각 첫권이 신경림이고 황동규다.



정우영 시인은 한겨레에 “구중서(88) 선생이 조문하고 문지방 넘으면서 들썩이며 울었다. 구슬프게 애기처럼 우시길래 가서 부축해드렸는데 꼭 (내가 아닌) 신경림 선생이 부축하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완성된 민중시의 전형을 키 작은 신경림이 보였다면, 민중 리얼리즘의 이론은 키 큰 구중서가 벼렸다. 정 시인은 “서로 가까이 사시고 술자리도 함께 하시는 각별한 사이지만 서로 또 존대하는 평생의 동무였다”고 말했다.



온라인에선 여러 문인 등의 회고와 추모의 글이 이어졌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마지막까지 현역이었던 시인은 우리 문화예술계뿐 아니라 이 시대의 올곧은 어른으로서 우리 사회의 버팀목이셨다”고 페이스북에 썼다. 민중의 곁에서 민중의 이름으로 한국 시의 판을 뒤집은 시인의 삶에 대한 각주가 붙는 중이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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