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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올해 역대 최다 4만명 장기이식 대기…장기구득 코디네이터의 48시간 따라가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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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신장 이식 수술이 진행되는 모습./의정부성모병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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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엄마와 이별해야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지난 3월 18일 의정부성모병원 지하 1층 내분비·신장센터 내 6평 남짓의 장기이식센터에서 만난 조영지(31) 장기구득 코디네이터는 “병원에서 뇌사로 추정되는 환자가 발생했다고 통보받아 아침 일찍 병원을 찾아 뇌사자 보호자를 만났다”고 했다. 환자는 지난 3월 5일 계단에서 넘어져 뇌출혈이 발생해 내원했던 고(故) 송경순(59)씨로 병원에서 수술과 치료를 받았으나 회복되지 못하고 뇌사 상태에 빠졌다고 한다. 조씨가 장기이식 절차에 관해 설명하자 송씨의 딸인 임은솔(30)씨는 “선한 영향력이라고 생각해 흔쾌히 장기 기증을 결심하게 됐다”면서도 “당장 내일 엄마와 영원히 이별해야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꿈을 꾸는 것 같다”고 했다. 송씨는 5명의 생명을 살리고 세상을 떠났다.

24일 한국장기조직기증원에 따르면 고형장기 이식 대기자가 지난 3월 기준 4만 4000명을 돌파하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에 본지 기자가 장기이식을 시행하는 의료기관에서 장기 공여자와 이식 수혜자를 연결하는 ‘장기구득 코디네이터’와 동행하며 장기이식 과정을 들여다봤다.

5년 차 코디네이터인 조씨는 12년 차 박수정(42) 코디네이터와 함께 18일 아침 일찍 병원을 찾았다. 보통 2인 1팀으로 일하는 코디네이터는 한 달에 2~3차례 정도 뇌사자 기증 상황과 마주한다. 조씨와 박씨는 이날 가장 먼저 기증이 접수된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고 보호자와 면담을 진행하며 가족 동의서 작성을 도왔다. 동의서 작성이 끝나면 그 즉시 기증 절차가 시작된다. 기증 완료까지 48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조씨는 “절차를 설명하면 보호자들은 ‘이제 진짜 마지막이구나’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분위기가 엄숙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오후 3시 30분이 되자 뇌사 판정을 위한 1차 뇌사 조사가 시작됐다. 1차 조사에서는 뇌간 반사 확인과 무호흡 검사 등이 진행됐다. 뇌사 조사는 환자가 성인일 경우 6시간 간격을 두고 모두 두 차례 이뤄진다고 한다. 조씨는 1차 조사가 끝난 직후 틈틈이 사후에도 가능한 조직기증을 위해 적합성 평가를 진행했다. 조씨는 “환자가 다장기 기증자이기 때문에 수혜병원과 조율해야 할 업무가 많아 끼니를 챙겨먹을 시간이 없다”고 했다.

오후 6시 30분이 되자 환자에 대한 CT판독과 초음파·유전자 검사, 혈장검사 결과가 나왔다. 이어 각 병원의 기증 수혜자를 선정하기 위한 절차에 돌입했다. 19일 오전 8시 10분이 되자 조씨와 박씨는 환자가 있는 3층 중환자실로 올라가 2차 뇌사 조사와 뇌파검사를 진행했다. 오전 11시 55분에는 신경외과 의료진이 동석한 뇌사판정위원회에 참석해 해당 환자가 의료적·윤리적으로 뇌사한 것이 맞는지 확인하고, 기증동의서가 법적 절차에 따라 작성됐는지 검토했다. 뇌사판정 관련 서류와 환자 검사 결과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판정위원회 참석위원 전원이 만장일치로 동의하면 뇌사판정위원회가 종료된다고 한다.

판정위원회가 종료된 오후 12시 5분이 송경순씨의 법적 사망 시각이 됐다. 환자가 사망 판정을 받자 조씨는 112에 신고했고, 곧이어 도착한 경찰과 과학수사대가 검시(檢視)하며 뇌사 판정 자료를 받아 갔다. 이후 조씨는 병원이 소속된 의정부지검에 연락해 수술 진행 여부를 의료 담당 검사에게 확인받았다.

이날 송경순씨는 심장, 폐, 간, 좌우 신장 등 5개의 장기를 기증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수술은 오후 3시 반쯤 시작돼 밤 11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조씨는 장기 적출이 끝난 기증자의 시신을 깨끗하게 닦고 환의를 입힌 후 유가족에게 인계했다.

며칠 뒤 조씨는 임씨로부터 “어려운 결정을 선생님들과 함께해서 씩씩하게 해낼 수 있었다”며 “엄마가 좋은 일 하고 가실 수 있게 도와주셔서 감사하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조씨는 “장기기증은 누군가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과정이지만 코디네이터는 유가족과 함께 누군가의 임종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이기 때문에 쉽지 않은 직업”이라면서도 “유가족들이 ‘선생님 덕분에 옳은 선택한 것 같다’는 말씀을 해주실 때마다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조씨는 지난 5년간 코디네이터로 일하며 자신과 동갑내기였던 여성 기증자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해당 기증자는 우울증이 심화돼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다 뇌사 상태에 빠졌다. 조씨는 “(기증자의) 어머니가 저를 볼 때마다 딸이 생각나서 많이 힘들어 했다”며 “처음에는 마음의 문을 열지 않으셨지만, 나중에는 한 시간 동안 울면서 통화한 적도 있다”고 했다. 기증자의 어머니는 장례식장에서 “이렇게라도 좋은 일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라고 말하며 고생한 조씨를 꼭 안아줬다 한다.

[구동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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