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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김호중이라는 미디어 스타의 ‘비상과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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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비에스에서 2022년 추석특집으로 방영한 ‘김호중의 한가위 판타지아’의 한 장면. 에스비에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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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나라를 시끄럽게 만든 가수 김호중의 연예계 생명이 위태롭다 . 인명 피해 없는 음주운전 사고가 이토록 큰 파문을 몰고 온 사례가 또 있었던가? 내 기억으로는 비슷한 사례도 없다. 이렇게까지 커다란 눈덩이를 굴린 장본인이 다름 아닌 김호중 본인과 소속사 대표라는 점에서 이번 사태는 끔찍한 블랙코미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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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아주 오래전으로 돌려보자. 어른이 되기 전 성장기까지. 함께 학교에 다녔던 친구들의 증언을 통해 그의 학창 시절을 짐작할 수 있다. 다수의 회고에 따르면 김호중은 폭력의 정도가 매우 심한 학교폭력 가해자였다. 김호중 본인도 폭력으로 점철되었던 과거를 부정하지 않고 고백했다. 조직폭력배로 살다가 성악에 눈을 떴다는 이야기는 방송 프로그램 ‘스타킹’(SBS)에서 2009년 소개되었고 방송 출연을 계기로 그는 성악 유학을 다녀올 수 있었다. 이 과정은 2013년 영화 ‘파파로티’로 제작되기까지 했다.



여기서 잠깐. 친구들의 증언과 김호중 본인의 고백 사이에는 미묘하면서 매우 중요한 차이가 있다. 친구들은 김호중의 조폭 경력을 단호히 부정한다. 김호중이 조폭 운운한 건 친구들에게 겁을 주기 위한 허풍이었고 실제로는 학폭 가해자일 뿐이라고. 김호중은 방송에서 성악가가 되지 않았다면 ‘세계적인 조폭’이 되었을 거라고 말한 적 있다. 말풍선이 달린 채 갈무리되어 돌아다니는 사진을 보면서 나는 두가지가 무척 의아했다. 깡패가 다 똑같은 깡패지 세계적인 깡패는 뭘까? 열 몇 살짜리 애가 조폭 세계를 얼마나 경험했다고 이런 소리를 할까? 만약 학창 시절 친구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방송·영화 관계자들은 김호중의 거짓말에 농락당한 셈이 된다. 그의 거짓말을 알면서도 눈감아주었다면 그들이 대중을 농락한 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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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예능 프로그램 ‘스타킹’에서 조직폭력배로 살다가 성악에 눈떴다는 김호중의 사연이 소개됐다. 에스비에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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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중의 사연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영화 ‘파파로티’. 영화 포스터


미디어가 만들어낸 성악가 김호중은 다시 미디어의 선택을 받으면서 트로트 가수로 변신한다. 경연 프로그램 ‘미스터 트롯’(티브이조선)에 출연하면서 지금의 스타덤에 오른 것이다. 이 프로그램을 기획해 대박을 낸 사람이 김호중을 처음 세상에 알린 프로그램 ‘스타킹’을 만든 피디(PD)다. 이 피디가 연출한 ‘불타는 트롯맨’(MBN)은 학폭 가해자 황영웅이 출연해 논란이 됐고, 비행 청소년 갱생 프로그램을 표방했던 ‘송포유’(SBS)는 학폭 가해자를 미화시킨다는 비판을 받으며 조기 종영한 바 있다. 그때 문제가 되었던 학생 출연자는 마약에 취한 상태에서 운전하다 젊은 여성을 치어 죽인 소위 ‘롤스로이스남’이 되었다. 그리고 김호중마저 이 지경에 이르렀다.



롤스로이스남은 사람을 죽이고도 뻔뻔하게 변명과 거짓말을 일삼았고 황영웅은 방송 하차 몇 달 만에 신곡을 발표하고 콘서트를 진행했는데, 김호중도 약속이나 한 듯 같은 방식으로 대처했다. 김호중 사건이 더 충격적인 지점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소속사가 나서서 범죄에 가담했다는 점이다. 운전자 바꿔치기, 거짓 진술, 증거 인멸 등 혐의도 여럿이다. 그래 놓고선 공연 스케줄을 소화해야 하니 구속영장 심사를 미뤄 달라는 황당한 요청까지 했다. 법원이 받아줄 턱이 있나. 국민의 분노를 달래긴커녕 점점 더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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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중을 지금의 트로트 스타로 만든 티브이(TV)조선 경연프로그램 ‘미스터 트롯’의 한 장면. 프로그램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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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생각해보면 가장 분개해야 할 사람들은 김호중의 팬들이다. 그런데 이 모든 행각이 다 드러난 뒤에도 공연장은 팬들로 가득 찼다. 그들을 비난하고 싶진 않다. 다만 이 말씀은 꼭 드리고 싶다. 간혹 지나친 팬덤은 그 대상을 고립시킨다고. 온 세상이 다 호중이를 비난해도 난 호중이를 지킬 거라는 선언은 김호중을 세상으로부터 소외시키겠다는 저주가 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김호중과 소속사 역시 강성 팬들만 믿고 간다는 식의 전략을 편다면 말리고 싶다. 당장은 편하게 돈을 벌겠지만 결국 대중음악 시장에서 서서히 소멸할 수밖에 없다. 가수를 망치는 팬, 가수를 망치는 소속사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가족 중에도 김호중의 열성팬이 있다. 방송일을 하면서 가장 돈독한 정을 쌓은 사람이 김호중 소속사의 핵심 관계자이기도 하다. 그들이 나를 원망해도 어쩔 수 없다는 심정으로 이 글을 쓴다. 지금은 김호중을 위해서라도 쓴소리가 필요한 때다. 공은 바닥에 세게 떨어진 만큼 높이 솟아오른다는 물리학의 법칙이 약간의 위로가 될까? 다만, 처절한 반성과 성장 없이는 튀어 오르기는커녕 바닥에 깨져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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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가 곧 마무리되고 김호중과 소속사 대표는 법정에 설 예정이다. 검찰총장 대행 경력까지 있는 막강한 전관 변호사의 도움으로 법적 처벌은 최소화할 수 있을지 몰라도 연예인에게 더 중요한 건 대중의 용서다. 그들만의 금쪽이로 남을지 개과천선하고 더 큰 가수로 돌아올지, 선택의 갈림길에 선 김호중에게 김수철의 1989년 곡 ‘정신차려’를 들려주고 싶다.



“말로만 그래 놓고 또 또 또다시/ 그러면 어떡하니/ 자꾸 자꾸 그럴수록 사람 사람이/ 사랑이 안 보이잖아/ 아 여보게 정신차려 이 친구야”



에스비에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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