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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美세균기지' 사표 낸 전문가의 비판, "세균무기 말고 방역 연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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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kimsphoto@hanmail.net)]
미국의 여러 연구자들은 한국전쟁에서 세균무기를 아예 사용하지 않았다거나 (아주 소규모로) 성능 테스트조차 해보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한국전쟁이 터진 1950년 무렵 미국은 세균전을 펼칠 기술적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미 고인이 된 미 데트릭 기지의 생화학전 무기 개발의 책임자 에그버트 블린 육군소장(미 육군 화학부대장)과 블린 소장의 직속 부하로 데트릭기지에서 생물학전(세균전) 프로그램을 총괄하던 윌리엄 크리시 준장 지하에서 그런 주장을 듣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마도 헛웃음을 짓거나 "우릴 뭘로 보느냐"며 어이없어 할 것 같다.

제2차 세계대전 뒤 미국의 세균전력 강화를 책임 졌던 블린 육군소장과 크리시 준장, 이 두 사람은 미국이 기술적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여길 게 틀림없다. 지난 글(연재68)에서 살펴봤듯이, 한국전쟁이 터지기 앞서 미 국방부는 스티븐슨위원회를 통해 화학전, 생물학전(세균전), 방사능전 등 비재래식 살상무기 전반을 검토했었다. 크리시 준장은 1950년 2월 이 위원회에서 "비상시에 3개월만 주어지면, 데트릭 기지의 연구원들이 세균전 공격능력을 내놓을 수 있다"고 밝혔다.

731부대로 전수 받은 세균전 기술

실제로 데트릭 기지의 세균 연구자들은 500파운드 짜리 M16-A1 전단폭탄(propaganda leaflet bomb)을 개발했고, 1950년 말까지 7만 개를 무기 격납고에 채웠다. 전단폭탄이란 선전용 전단지와 함께 세균 곤충들을 넣은 집속탄을 가리킨다. 연구자들은 작물용 세균으로 오염시킨 깃털폭탄을 개발해 내기도 했다. 이 모두 731부대 악마의 의사들이 고안해 냈던 도자기폭탄(도자기 안에 세균을 담아 떨어뜨리는 폭탄)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으로 이해하면 틀림없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7년부터 1950년 한국전쟁이 벌어지기 전까지 3년 동안 미국의 세균전력은 엄청나게 커졌다고 알려진다. 스티븐슨 위원회에서 크리시 준장이 공개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그가 "비상시에 3개월만 주어지면, 데트릭 기지의 연구원들이 세균전 공격능력을 내놓을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시이 시로(石井四郎, 1892-1959)가 있었다. 731부대 전쟁범죄자들이 살아있는 사람을 '마루타'로 삼아 생체실험을 거듭하면서 쌓아올린 세균전 정보를 고스란히 넘겨받고 그들의 죄를 덮어준 '더러운 거래' 덕이었다.

데트릭 기지에서 파견된 4명의 조사관(특히 3차 조사관 노버트 펠, 4차 조사관인 에드윈 힐)이 챙긴 탄저균 생체실험 자료)이 챙긴 '피 묻은 자료'를 하나하나씩 살펴보던 미국의 세균전 연구자들은 매우 기뻐했다. "이것은 뜻밖의 횡재나 다름없다"고 박수를 쳤다고 알려진다. 기껏해야 쥐나 원숭이 같은 동물을 실험대상으로 삼아야 하는 미 세균학자들로선 이시이 시로 패거리가 건네준 문서와 슬라이드 필름들은 그야말로 '꿈의 연구자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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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 화학부대와 생물학전(세균전) 연구소가 자리 잡은 메릴랜드주 데트릭기지 정문의 삼엄한 모습. ⓒ위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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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세균전 예산 5억 달러

한국전쟁 무렵 미국의 세균전 능력을 의심하는 (따라서 한반도에서 세균무기를 쓰지 못했을 것이라 주장하는) 또 다른 논리적 근거는 예산 부족이었다. 한국전쟁에 들어가는 엄청난 비용 부담 때문에 미 국방부가 생물학 무기를 연구·개발·생산하는 데 많은 예산을 들이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도 지난 글에서 봤듯이, 1952년 한 해 동안 미국이 생물학전(세균전) 프로그램에 5억 달러를 집행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캐나다 토론토 요크대학 교수들로 둘 다 동아시아역사학 전공자인 스티븐 엔디콧, 에드워드 해거먼은 "예산 문제는 미국의 한반도 세균전을 부정하는 논거로 꼽힐 수 없다"고 여긴다. 이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자금은 문제가 안 됐다.

"(세균전 능력을 키울 자금이 부족했다는) 그런 추정은 1951~1953년 생물학(세균)무기 개발에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었다는 증거에 의해서, 그리고 미국의 가장 중요한 맹방인 영국과 캐나다가 이 프로그램 개발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없다. 또한 이 프로그램을 북대서양기구(NATO)로 확대한다는 현안이 걸려 있었다"(엔디콧·해거먼, <한국전쟁과 미국의 세균전>, 중심, 2003, 281쪽).

원자폭탄 개발을 위한 맨해튼 프로젝트에 영국 연구자와 미국으로 망명해온 독일 과학자들이 참여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세균무기 개발에도 영국과 캐나다 출신 연구자들이 미국의 데트릭기지 연구자들과 손을 잡았다. 영국은 스코틀랜드 해안 무인도 그루나드 섬에서, 캐나다는 남부 서필드 무인지대에서 탄저균 소형폭탄을 실험했고 그 결과를 미국과 공유했다고 알려진다.

핵폭탄에 견준 세균폭탄의 이점

미국이 이시이 시로를 비롯한 731부대 '악마의 의사집단'의 전쟁범죄를 눈감아줬다는 비난을 무릅쓰고 세균정보를 챙길 정도로 미국이 세균전에 관심을 쏟은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3명의 <뉴욕타임스> 기자(주디스 밀러, 스티븐 잉겔버그, 윌리엄 브로드)가 2001년 9.11테러 뒤에 낸 책(원제목은 Germs: Biological Weapons and American Secret War, 2001)을 길잡이 삼아 미국이 세균전에 매력을 느낀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다.

(독자 분들도 기억하시듯, 9·11 테러 뒤 한동안 미국인들에게 두려움을 안겨주었던 또 다른 테러가 있었다. 그 테러의 이름은 '탄저균 테러'였다. 치명적인 세균무기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탄저균 백색 가루가 담긴 우편물들이 나돌았다. 아무 생각 없이 우편물을 열어보고 감염된 22명 가운데 대중지 <선>(Sun) 사진부장을 비롯해 5명이 숨졌다. 한동안 미국 사회가 우편물 공포에 시달려야 했다. 그런 으스스한 분위기를 타고 3명의 <뉴욕타임스> 기자들이 함께 써낸 책이라 전세계적으로 많이 읽혔다.)

첫째, 세균무기가 상대적으로 개발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같은 비재래식 살상무기이지만 1945년에 개발해냈던 핵폭탄에 견주면 생물무기(세균무기)는 개발 비용이 아주 적게 들어간다. 그렇기에 미국은 소련을 비롯한 (미국보다 상대적으로 가난한) 적성국가들이 큰돈을 들이지 않고 세균무기를 만들어 미국을 공격하지나 않을까 걱정했다.

둘째는 살상 효과다. 세균전 연구자들은 인명을 죽이거나 불구로 만드는 힘에서 세균무기는 핵폭탄에 못지않은 살상력을 지닌 것으로 봤다. 1그람의 몇백 분의 1에 지나지 않는 극소량으로 수만 명을 죽일 수 있는 독성을 지닌 것으로 확인됐다.

셋째는 은밀성이다. 세균무기는 핵폭탄처럼 요란하지도 않고 은밀한 공격으로 적을 궤멸시키거나 약화시킬 수 있다. 더구나 자연발생적인 질병의 결과와 비슷하기에 적의 비난으로부터 빠져나가는 편리함이 있다. 1949년 7월 10여명의 전문가들로 이뤄진 연구팀은 미 국방장관에게 "세균무기의 계획과 개발에 좀 더 힘써야 할 가치가 있다"는 요지의 비밀 보고서를 올렸다.

[연구팀은 (세균무기로 적을 공격하는 형태의) 전쟁은 아직 초기 단계에 있지만, 진보 상태로 보면 무기의 효과가 엄청나게 커질 것이라 주장했다. 세균무기는 조용하지만 치명적이므로 은밀한 공격에 이상적이라 했다. 연구팀은 이어 '이러한 파괴 행위의 결과가 자연발생의 결과와 유사하기 때문에 은밀한 사용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덧붙였다](주디스 밀러 외, <세균전쟁: 생물학 무기와 미국의 극비전쟁>, 황금가지, 2002, 44쪽).

넷째는 방어력이다. 세균무기를 갖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적의 세균전 공격을 막아낼 수 있다. 만일 적이 세균무기로 공격한다면 보복을 당할 것이란 각오를 해야 한다.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미국 정부가 밝혀온 세균전 관련 공식 입장은 "미국이 세균무기로 선제공격을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적국이 미국에게 세균전을 편다면 그에 대한 반격으로만 세균무기를 쓴다는 얘기다(이런 설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국가가 몇 개나 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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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트릭 기지 안의 세균무기 연구실. 731부대의 인체실험 세균정보를 얻은 덕에 미국의 세균전 능력은 빠른 속도로 커졌다. ⓒ위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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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발적 세균전쟁, 핵전쟁의 가능성

반격용이란 명분 아래 세균무기를 개발 보유한다는 논리는 핵무기의 '상호확증파괴'(mutual assured destruction, MAD) 전략개념처럼 불안하기 그지없다. MAD는 적이 핵무기로 공격해오면 나는 피해를 입겠지만 적에게 핵공격으로 보복해 확실하게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개념이다. 따지고 보면, 20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핵무기는 고전적인 힘의 균형 개념을 깨뜨리는 파괴력을 지녔다. 그것은 곧 '공포의 균형'이다. 핵전쟁이 일어날 경우 전쟁의 승패를 떠나 핵공격으로 서로를 파괴한다는 MAD 개념은 미국-소련 핵전쟁에서 승자가 있을 수 없다는 점에서 전쟁 억제력(deterrence)을 지녀왔다고 한다.

문제는 만에 하나 적의 의도를 잘못 파악해서. 또는 컴퓨터 시스템 고장으로 "적이 핵무기를 쏘아 올릴 수도 있다", 또는 "이미 핵무기가 우리 쪽으로 날아오고 있다"는 두려움에서 비롯된 우발적인 핵전쟁이다.

거장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만든 고전적인 흑백 전쟁영화 '닥터 스트렌지러브'(1964)가 좋은 보기다. 영화 속에서 공산주의자들이 미국인의 '신성한 혈통'을 더럽힐 음모를 꾸민다는 망상에 사로잡힌 미 공군 장군은 핵 폭격기를 출격시키라는 돌이킬 수 없는 명령을 내린다. 이 말도 안 되는 블랙 코미디가 현실로 다가오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조지프 나이(미 하버드 케네디스쿨 대학원장)를 비롯한 여러 국제정치학자들도 인간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므로 '상호확증파괴'(MAD) 전략개념에 바탕한 핵무기의 전쟁억제론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해왔다. 핵보유국들이 점점 늘어나는 상황에선 더욱이나 우발적인 핵전쟁의 가능성이 늘 남아 있다. 세균전쟁도 마찬가지다.

평화냐 세균무기냐

위의 미 국방부 연구팀은 비밀 보고서 끝에 "미국이 세균무기의 공격을 받으면 피해가 너무 클 것이므로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경고를 덧붙였다. 그것도 긴급하게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했다. 연방정부와 사설 연구기관들이 힘을 합쳐 특별 국방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는 제안이었다.

여기서 특별 국방프로그램이란 결국은 △적으로부터 세균무기 공격을 받았을 경우에 대비한 백신을 개발하고 △적이 공격할 때 사용할 것으로 예상되는 세균무기를 연구하는 작업을 가리킨다. 보고서의 서술은 한편으론 백신 개발을 촉구하면서도 세균무기를 서둘러 연구 개발해야 한다는 데 방점을 찍었다.

위 보고서의 논조와는 달리, 어떤 명분으로든 전쟁을 반대하는 평화주의 연구자들은 세균무기 개발을 반대해왔다. 메릴랜드 세균전기지인 데트릭기지에서 근무했던 미생물학자 시어도어 로즈버리(워싱턴대 명예교수, 세균학)도 반전 평화주의자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데트릭기지의 공중 감염 프로젝트 책임자였다. 하지만 그가 하는 일이 올바르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자, 고민 끝에 사표를 내고 대학교로 일터를 옮겼다.

로즈버리는 일찍이 미국의 세균전쟁 준비가 세계평화에 위협적일 수 있다고 걱정했다. 한국전쟁이 터지기 1년 전인 1949년 <평화인가 페스트인가>(Peace or Pestilence)란 책을 내면서 세균무기 자체를 거세게 비난했다. '생물전쟁과 그 회피 방법'이란 부제목을 붙인 책에서 로즈버리는 이렇게 경고했다. "만에 하나 본격적으로 세균전이 벌어질 경우 그 피해가 어느 정도가 될지 예측이 어렵고, 통제 자체가 불가능하기에 매우 위험하다"(구글 검색란에서 'Peace or Pestilence'를 치면 로즈버리의 책 원문을 볼 수 있다).

"세균무기 말고 전염병 막는 연구해야"

책에서 로즈버리는 "(미국인들이 세균무기 공격을 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데트릭 기지가 만들어졌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 기지가 더 많은 두려움을 만들고 있다"(Camp Detrick was born of fear. It now helps to generate more fear)고 비판했다. 그가 폈던 주장의 핵심은 "우리 인류가 세균을 연구한다면, 무기를 개발하는 쪽이 아니라 전염병을 막는 쪽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로즈버리는 결론적으로 미 세균전의 중심인 데트릭 기지를 평화적이고 건설적 역할을 하도록 바꾸자고 제안했다. 그가 일했던 데트릭 기지의 성격이 생물무기(BW, 세균무기) 개발이 아니라 방역 연구 쪽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이었다. 저온 살균법을 개발해 19세기 '세균학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루이 파스퇴르처럼, BW 연구보다는 인간 복지에 도움이 되는 전염병 연구와 예방 쪽으로 말이다. 책 결론 부분의 한 대목을 보자.

"캠프 데트릭에는 다른 좋은 것이 있다. (기지의 연구 방향을) 전쟁보다는 평화에 적용한다면 대단히 건설적이고 가치 있는 일이 될 것이다. 파스퇴르 시절부터 세균학은 개인의 감염에 대처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에 혁명을 가져왔다. 그런 오래된 실험 세균학만큼, 인간 복지에도 유익한 자연 전염병에 대한 실험적 탐구를 (데트릭 기지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럴 경우 우리는 물 위생을 통해 콜레라와 장티푸스를 통제할 수 있는 것처럼, 효과적으로 (세균과 전염병을) 통제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Theodor Rosebury, <Peace or Pestilence, Biological Warfare and How to Avoid It>, 1949, 1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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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트릭 기지에서 근무했던 미생물학자 시어도어 로즈버리가 사표를 낸 뒤 써낸 <평화인가 페스트인가>. 반전 평화주의자인 로즈버리는 이 책에서 데트릭 기지가 세균무기 개발을 멈추고 방역 연구에 힘써야 한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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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연스런 전쟁의 역병 없애야"

로즈버리는 "데트릭 기지가 살상력 높은 세균무기를 개발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그러면서 "부자연스러운 전쟁의 역병을 없애야 한다"(We must abolish the unnatural plague of war)는 평화의 메시지를 띄었다. 안타깝게도 미 군부는 로즈버리의 목소리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데트릭기지 지휘관들은 물론 미 국방부도 기지의 내부 정보가 바깥에 알려진 것에 신경을 쓸 뿐이었다. 그 무렵 데트릭 기지를 중심으로 미 세균전문가들이 밤낮으로 애를 쓴 것은 세균무기 개발, 그리고 부차적으로 (세균전에 대비한) 백신 개발이었다. 대외적 포장은 미국민의 안전을 우선한 백신 개발을 내세웠지만, 중점 연구는 보다 살상력이 높고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세균무기 개발 쪽이었다. 로즈버리는 바로 그런 점을 비판했다.

218쪽 분량의 책에는 로즈버리가 일했던 데트릭 기지의 분위기나 역할이 드러나 있다. 일반인들이라면 도저히 알 수 없는 내용들이 담겼다(물론 로주버리의 판단으로 국가안보에 해를 끼칠 염려가 있다고 여겨지는 정보는 삼갔을 것이다). 데트릭 기지 근무자가 사표를 낸 뒤 책을 통해 미 세균정책을 비판하며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오자, 벌집을 쑤셨다는 말이 딱 맞았을 것 같다. 데트릭 기지는 물론 미 국방부 관계자들은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어느 세균학자의 의문사

그런 뒤 데트릭 기지의 또 다른 연구자가 사표를 내려 했다. 하지만 곧 그가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는 사건이 터졌다. 프랭크 올슨(세균학박사)가 비극의 주인공이다. 올슨은 1953년 미 뉴욕 맨해튼 고층호텔 방에서 창문으로 떨어져 죽었다. 그 죽음은 '투신자살'로 발표됐다. 그 뒤로 의문사 의혹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유가족은 올슨이 한국전쟁에서 미국이 세균전을 펴는 것을 못 마땅하게 여겼고, 그런 까닭에 사표를 내고 데트릭 기지를 떠나려 했다가 죽었다고 믿는다.

미 군부와 정보기관 CIA는 올슨이 기지 근무를 그만둔다면, (<평화인가 페스트인가>를 쓴 시어도어 로즈버리처럼) 미국의 한반도 세균전을 비롯해 미 세균기지의 비밀스런 내막을 폭로할지도 몰라 신경이 쓰였을 것이다. 그의 죽음 뒤에는 국가기관의 타살이란 의혹이 따른다. 다음 글에서 올슨의 죽음과 미국의 세균전을 둘러싼 이야기를 좀 더 살펴보려 한다. (계속)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kimsphot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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