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17 (월)

“믿었던 책마저” 종이 분리배출 열심히 했는데…다 수입산이라고? [지구,뭐래?]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헤럴드경제

골목 곳곳에 배송박스가 널려있는 모습.


[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책에 쓸 만한 100% 국산 재생종이가 없었어요”

우리나라 종이 재활용률은 85.2%(2022년 기준)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런데 정작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쓰는 종이나 책을 보면 재생종이를 찾아보기 힘들다.

시중의 재생종이 중 상당수에 나무를 베어낸 새 종이가 절반 이상 들어간다. 종이 쓰레기 100%로 만든 재생종이는 대부분 수입산이다.

출판업계와 환경단체들은 국내에서 버린 종이 쓰레기로 만든 재생종이를 값싸고 쉽게 쓸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헤럴드경제

이탈리아산 100% 재생지 ‘센토’로 출판된 책 ‘우리가 바다에 버린 모든 것들’(왼쪽)과 ‘제로의 책’ [예스24 홈페이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23일 출판 및 디자인 업계 관계자들이 충남 천안의 한솔제지 공장을 찾았다. 한솔제지 천안공장은 재생종이를 비롯한 특수종이들을 만드는 곳이다. 이들이 제지 공장까지 찾아간 건, 그동안 국산 폐지 100%로 된 재생 인쇄용 종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각 가정에서 분리배출된 종이 쓰레기의 대부분 상자나 화장지로 재활용된다. 한솔제지 천안공장 기술환경팀 관계자는 “폐지의 90% 가까이 판지로 쓰인다”며 “일부 고품질의 폐지는 포장재 및 특수지로 생산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한솔제지는 업계의 수요를 반영해 폐지를 100% 재활용한 인쇄용 재생종이 ‘인스퍼에코 100’을 지난 4월 말 출시했다. 지난 9일 생산을 시작, 환경표지인증 획득을 준비하고 있다.

헤럴드경제

한솔제지 천안공장. 주소현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재생종이는 종이 쓰레기로 만든다. 종이 쓰레기의 잉크를 뽑고(탈묵), 물에 푸는(해리) 공정을 거쳐 만든 재생펄프가 원료다. 재생펄프의 함유량에 따라 폐지 재활용률이 정해진다.

국산 재생종이는 주로 폐지 재활용률이 30~40% 선이다. 폐지 재활용률 30~40%를 넘기면 환경부 인증 친환경 마크를 획득할 수 있어서다. 친환경 종이라고 했는데 알고 보면 종이쓰레기는 30~40%뿐이고, 50~60%는 나무를 베어 만든 새 종이가 들어가는 셈이다.

폐지 재활용률이 높을수록 새 종이를 덜 쓰게 되고, 그만큼 나무를 덜 베어낼 수 있다. 종이를 만드는 데 쓰이는 나무들은 종이 생산을 목적으로 만든 숲, ‘조림지’에서 가져오고, 베어낸 만큼 나무를 새로 심으니 순환이 된다는 게 제지업계의 설명이다. 그러나 조림지는 다양한 나무들과 야생동물들의 서식지인 자연림을 밀어낸 자리에 들어서는 만큼 친환경이 아니라는 비판을 받는다.

종이 쓰레기를 재활용하면 에너지와 물 등을 15~20% 가량 줄이는 효과도 있다. 새 종이를 만들 때는 나무에서 섬유질을 추출하는데 이 과정에서 에너지 소비가 크고 물과 화학 약품 등이 많이 들어간다.

헤럴드경제

[123rf]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문제는 폐지 재활용률 100%인 재생종이 수급을 그동안 수입에 의존해 왔다는 데 있다. 수입 재생종이는 가격도 5~10배 비싼 데다 운송 과정에서 탄소가 배출된다. 무엇보다 국내 종이 쓰레기를 재활용하지 못한다.

국내에서 버린 종이쓰레기로만 만든 재생종이를 쉽게 쓸 수 있으려면 수요도 뒷받침돼야 한다. 종이는 많이 만들수록 가격이 내려가는 구조기 때문이다. 일부 독립출판사나 환경단체 등에서 폐지 재활용률 100% 재생종이를 주문 제작하려고 해도 수량을 맞추지 못하는 상황이다.

해외에서는 이미 재생종이가 일상 생활 곳곳에서 쓰인다. 독일에서는 종이의 4분의 3 가량 종이쓰레기를 재활용해 생산한다. 독일재생종이민관협의회의 설문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40%가 사용하는 종이의 80%를 재생종이로 충당했다.

헤럴드경제

서울 영등포구 한 골목에 놓인 폐지 수레. 주소현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재생종이가 새 종이보다 많다 보니 당연히 재생종이 가격이 새 종이보다 더 저렴하다. 출판업계에서는 재생종이 점유율이 8~10% 이상으로 올라가면 새 종이와 가격이 비슷한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본다.

결국 일부 친환경 소비자뿐 아니라 대규모 출판사와 기업, 학교 등에서도 국산 100% 재생종이를 많이 찾아야 저렴한 가격에 쉽게 재생종이를 살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서재훈 한바랄 출판사 대표는 “해외에서는 초기 재생종이 생산이나 구입 시 정부가 지원해 재생종이 가격이 내려갔다”며 “다양한 재생종이가 대량 생산될 수 있도록 국산 100% 재생종이 수요를 모으면서 제지업계와 제작을 협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헤럴드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addressh@heraldcorp.com

Copyright ⓒ 헤럴드경제 All Rights Reserved.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