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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박수금지’ 영국 의회, 기립박수 쳤다…의수·의족 출근한 그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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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난 22일(현지시각) 크레이그 맥킨리 영국 보수당 하원 의원이 패혈증으로 양쪽 손과 발을 잃은 후 처음으로 의사당에 출석했다.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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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위와 질서 유지를 위해 전통적으로 박수를 금지하고 있는 영국 의회에서 기립 박수가 나왔다. 모든 의원들의 박수 세례를 받은 주인공은 패혈증으로 두 손과 두 발을 절단한 보수당 소속 크레이그 맥킨리(57) 하원 의원이다.



22일(현지시각) 가디언, 비비시(BBC) 등은 이날 맥킨리 의원이 투병 뒤 약 8개월 만에 처음으로 의사당에 돌아와 동료 의원들로부터 기립박수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맥킨리가 의사당에 들어서자 린지 호일 영국 하원 의장은 “아시다시피 우리는 박수를 허용하지 않지만, 이번 경우는 예외다. 당신이 우리 곁에 돌아오게 돼 정말 기쁘다”며 동료 의원들에게 박수를 허용했다.



호일 의장은 맥킨리 의원을 향해 “여기 의회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나와 함께 동료인 맥킨리 의원의 복귀를 환영한다고 확신한다”며 “당신은 패혈증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줬다.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줘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것이 내가 기립박수를 허용한 유일한 이유”라고 덧붙였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 역시 “그의 놀라운 회복력에 경외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했고, 키어 스타머 영국 노동당 대표도 맥킨리 의원의 “용기와 결단력”에 찬사를 보내며 “진정으로 의회가 하나가 되는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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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현지시각) 크레이그 맥킨리 영국 보수당 하원 의원이 패혈증으로 양쪽 손과 발을 잃은 후 처음으로 의사당에 출석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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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지난해 9월 맥킨리 의원은 패혈증에 걸려 병원에 입원했고 생존 확률이 5%에 불과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패혈증은 미생물 감염에 대응해 전신에 일어난 염증 반응으로 주요 장기가 손상되는 중증 감염 질환이다. 신속하고 적절한 치료가 이뤄지지 않으면 짧은 시간 내에 사망에 이를 수 있다.



맥킨리 의원은 16일 동안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겨우 깨어났지만 양쪽 팔과 다리가 검게 변해 괴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결국 지난해 12월 양쪽 팔꿈치와 무릎 아래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고, 이후 의수와 의족을 맞추고 재활을 거쳐 스스로 걸을 수 있게 되자 이날 의정 활동을 재개했다.



이날 동료 의원들 앞에 다시 선 맥킨리 의원은 “오늘은 내게 매우 감동적인 날”이라며 다시 일하게 되기를 고대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맥킨리 의원은 “나로 인해 (의회의) 여러 규칙이 깨지게 되어 미안하다”며 농담 섞인 사과를 하기도 했다. 이어 “나의 ‘플라스틱 발’에는 운동화밖에 맞지 않아 구두를 신지 못했고 ‘새 팔’ 위에는 재킷을 걸칠 수 없었다”며 셔츠와 운동화 차림으로 의회에 출석한 것을 사과하기도 했다. 맥킨리 의원은 앞선 비비시와의 인터뷰에서 최초의 ‘생체공학 하원 의원’(bionic MP)로 알려지고 싶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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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이그 맥킨리 영국 보수당 하원 의원.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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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여러 차례 병문안을 와준 호일 의장과 수낵 총리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호일 의장에게 “병원에 있는 나머지 사람들은 내가 치명적으로 아프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병원에 있는 검은 복장의 호일 의장을 보고) ‘이미 장의사를 불렀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이 말을 들은 호일 의장은 자신의 옷을 들어 보이며 크게 웃었다.



이날 맥킨리 의원은 패혈증 환자들을 위한 정부의 지원책 강화를 촉구했다. 총리와의 질의응답에 나선 그는 정부 차원에서 패혈증의 초기 징후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요구하며 “내 경우는 너무 빠르고 갑작스러웠으나 상당수 사람에겐 며칠이 걸리니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하는 걸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건부 장관에게는 자신과 같은 신체 절단 환자들에게 적절한 시기에 보철물 제공을 보장해달라고 촉구했다.



수낵 총리는 맥킨리 의원의 질의에 답하기에 앞서 “맥킨리 의원이 (의회로) 다시 돌아오게 되어서 기쁘다”며 “이 자리에 있는 맥킨리 의원의 가족들이 지난 몇 달간 보여준 맥킨리 의원을 향한 헌신은 우리의 존경을 받아 마땅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2015년 하원 의원에 당선된 이후 계속 재선에 성공한 맥킨리 의원은 7월4일로 예정된 차기 총선에는 출마하지 않기로 했다. 그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서 “내 마음은 나에게 다시 일어서라고 말하고 있고 국가적 문제 전반에 걸쳐 해결하지 못한 일이 너무 많지만 내 머리는 지금으로서는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혹독한 선거 운동을 견디기 어려울 것이고, 재선된다 해도 이전처럼 주당 70~80시간 근무를 지속하긴 힘들다”고 전했다고 비비시는 보도했다.



정봉비 기자 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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