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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물과 식량의 시소게임 [김형준의 메타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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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1972년 12월7일 아폴로 17호 우주비행사들이 찍은 지구 사진 ‘블루마블’. 나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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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준 | 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



블루마블(Blue Marble). 1972년 12월7일 아폴로 17호가 우주에서 촬영한 지구의 모습이 마치 푸른 구슬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나는 이 사진을 보면 아직도 가슴이 설렌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환경 사진 중 한장으로 지구가 물의 행성이라 불리는 이유를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표면에 푸른 바다가 가득하고 아래쪽으로 거대한 남극대륙의 빙상을 볼 수 있다. 하늘에 어지럽게 자리한 구름도 물이요, 아프리카 대륙의 중심에 자리한 진녹색의 열대 우림도 상당 부분이 물로 구성되어 있다.



물의 행성인 지구는 소금의 행성이기도 하다. 지구에 존재하는 물의 97% 이상은 소금물이다. 인간을 포함한 대부분의 육상 생물이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담수는 채 3%가 되지 않는다. 그중 액체 상태로 존재하는 물은 1% 미만이고 그나마도 대부분은 지하수로 존재한다. 호수나 강과 같이 손쉽게 취할 수 있는 지표수는 0.01%를 밑도는데 양으로 따지면 93조톤 정도이고 우리가 가장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수자원인 강물의 총량은 2조톤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인류는 매년 약 4.5조톤의 물을 사용한다. 호수와 강에 담겨있는 물의 총량이 100조톤이 채 되지 않으니 불과 20여년이면 육상에 존재하는 담수를 모두 써버리게 되는 셈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전 지구의 모든 호수와 강은 이미 바닥을 드러냈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물이 “순환하는 자원”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의 하천은 무려 45조톤의 담수를 매년 바다로 흘려보낸다. 태양에너지로 작동하는 거대한 정수 시스템이 사용량의 열 배에 달하는 신선한 물을 끊임없이 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물 부족 현상은 왜 생기는 것일까? 바로 지구상의 물순환이 균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구상의 어떤 곳에 비가 너무 많이 내려 홍수가 발생할 때 다른 곳에서는 땅이 메말라 가는 가뭄을 경험하곤 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시공간적 불균일성은 기후변화와 함께 증폭되어 간다.



결국 총 담수 이용의 70%를 차지하는 농업용수의 효율적 사용은 전지구적 물 부족 문제의 효율적 해소와 직결된다. 물은 무겁기 때문에 운송 비용이 매우 많이 든다. 따라서 물 부족은 물이 충분한 지역에서 부족한 지역으로 수송함으로써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다. 어떤 재화의 생산에 포함되는 물을 가리켜 가상수(virtual water)라고 한다. 쌀 1㎏에 포함된 물은 150g 정도에 불과하지만 재배할 때는 약 4톤의 물이 필요하고 쇠고기 1㎏은 600~700g가량의 물을 포함하지만 생산에는 20톤가량의 물이 들어간다. 1톤의 쌀과 쇠고기를 수입하면 2만4000톤의 숨겨진 물을 함께 들여오는 셈이고 그만큼 국내의 수자원을 절약할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 식량 수입은 물 부족 문제 해소에 효과적인 해결책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아쉽게도 세상에는 만병통치약이 존재하지 않는다. 환경 문제는 사회 문제이기도 하다. 모든 문제가 연결돼 있다. 가상수 수입을 통한 물 부족 문제 해소는 식량 안보 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부작용이 존재한다. 고민이 깊어진다. 우리는 물과 식량이라는 생명권과도 직결된 필수 자원의 어느 쪽에 무게추를 올려놓아야 하는가. 그리고 어떠한 선택을 하더라도 선한 타인의 희생이 요구된다면 사회는 어떻게 그들을 보호해야 할까. 지구의 한계와 인간의 존엄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고 비로소 안전하고 정의로운 세계에 도달해야 하는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있다. 명확한 답이 없는 선택에 내몰리고 있지만 과학에 근거해 과감한 결단을 내리되 자칫 거대 담론의 뒤에 가려질 수 있는 인간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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