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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만물상] “기어서라도 무대에 오를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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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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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세계적 팝스타 셀린 디옹이 라스베가스 무대에서 열창을 뽑아냈다. 백댄서 수십명이 숨 가쁜 율동으로 무대 뒤편을 흔들었다. 어깨를 드러낸 빨간 드레스에 허리까지 내려오는 생머리를 흩날리며 셀린이 ‘나는 살아 있어요’(I am alive)를 불렀다. ‘당신이 나를 부를 때,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죠.’ 이날 공연은 미국 근육장애협회 기금 모금 행사였다. 당시 무대를 뛰어다닌 셀린은 건강했다.

▶지난주말 아마존 스트리밍 플랫폼이 쉰여섯 살 셀린의 투병 다큐멘터리를 공개했다. 기구한 운명의 장난일까. 병명이 희소 신경 질환인 ‘전신 근육강직 인간증후군’(Stiff-person syndrome)이다. 근육이 서서히 굳어가면서 뼈를 깎는 듯한 경련을 일으키며 악화된다. 이 병은 백만 명에 한 명꼴로 걸리는데 여자가 남자보다 세 배쯤 많다. 나이를 가리지 않지만 40대가 좀 더 위험한 걸로 알려졌다.

▶셀린은 앨범보다 라이브 무대가 더 돋보이는 디바로서 독보적이다. 다큐 예고편에서 셀린은 지난 삶을 돌아보며 “내 목소리는 인생의 지휘자”라고 했다. 또 셀린은 지금까지 “우리가 마법을 만들어냈다”고도 했다. 영화 ‘타이타닉’ 주제곡 ‘마이 하트 윌 고 온’(My Heart Will Go On)으로 널리 알려진 셀린은 그래미상 5회, 아카데미 주제가상 2회 수상자다.

▶셀린은 불어-영어 두 언어로 노래한다. 프랑스 언론과 인터뷰에서 지난 두 해를 돌아보며 “처음에는 ‘왜 나야?’ ‘어떻게 이런 일이?’ ‘내 잘못인가?’ 같은 질문을 수없이 던졌다”고 했다. “기적 같은 치료제가 나오길 바랐다”고도 했다. “하지만 삶은 당신에게 어떤 답도 주지 않는다. 그저 살아가는 것일 뿐”이라고 했다. 걷는 것도 어렵고 성대(聲帶)를 쓰는 것도 힘들다. 평생 매니저로서 함께 ‘마법’을 일궜던 남편이 8년 전 후두암으로 세상을 떴을 때 일시 활동을 접었던 셀린이 다시 시련을 맞았다.

▶두 차례 내한 공연을 했던 셀린은 한국을 좋아했다. 한복을 입고 아들과 온돌에 앉은 사진도 있다. 휘트니 휴스턴, 머라이어 캐리와 함께 ‘세계 3대 디바’로 불리지만 둘에 견주어 가창력 논란이 없다. 다큐에서 셀린은 약 먹는 장면까지 보여주면서 “공연은 힘들지 않다, 그러나 공연 취소는 정말 고통스럽다”고 했다. 셀린은 “사람들이 미치도록 그립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뛸 수 없으면 걷고, 걸을 수 없으면 기어서 가겠다”고 했다. 가수에게 무대란 그런 것이다./

[김광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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