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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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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 언급한 푸틴, ‘친러 우크라 대통령’ 만들기 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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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매체 “2014년 축출된 친러 야누코비치, 벨라루스서 푸틴과 합류”

조선일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알렉산더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24일 벨라루스 민스크의 대통령궁에서 기자 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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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를 상대로 군사 공세를 강화하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맹방(盟邦) 벨라루스를 방문해 “평화 협상으로 전쟁을 끝낼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러시아가 2022년 2월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한 뒤 푸틴이 ‘협상’을 언급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푸틴을 추종하다 쫓겨난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까지 벨라루스에 간 정황이 포착되면서 푸틴이 전쟁을 마무리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내 친(親)러 세력을 준동하려 한다는 관측까지 제기되고 있다.

푸틴은 지난 24일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에서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과 정상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휴전 협상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우리는 평화 협상을 거절한 적이 없다”며 “(다만) 협상은 ‘오늘날의 현실’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늘날의 현실’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로부터 빼앗은 영토를 러시아 땅으로 인정하라는 의미다. 러시아는 현재 돈바스(도네츠크주와 루한스크주) 대부분, 또 자포리자주와 헤르손주 등 남부 상당 부분을 점령하고 러시아 합병을 선언했다. 2014년 2월 강제 병합한 크림 반도까지 포함한 러시아 점령지 넓이는 총 17만㎢로, 우크라이나 전체 영토의 약 5분의 1(18%)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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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오른쪽) 러시아 대통령이 2013년 모스크바를 방문한 빅토르 야누코비치 당시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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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루스는 이번 전쟁에서 유일한 러시아의 군사동맹으로, 경제 제재와 올림픽 참가 금지 등 각종 제재를 함께 받는 처지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이후 10개월 만인 2022년 12월 벨라루스를 찾았고, 지난해 11월 두 번째 방문 후 6개월 만에 또 방문해 루카셴코와 회담을 할 만큼 벨라루스와 밀착하고 있다.

앞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개전 직후인 2022년 2월 27일과 3월 말 각각 벨라루스와 튀르키예에서 휴전 협상을 벌였다. 하지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나토 가입 포기, 무장 해제 및 중립화, 크림 반도와 동부 돈바스 등 러시아 점령지의 영구적 포기 등을 요구하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절대 수용 불가 입장을 굽히지 않으면서 협상은 진전없이 결렬됐다. 푸틴은 이후 지난해 6월과 12월에도 “러시아는 지속적으로 평화 협상에 열려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번의 푸틴 평화 협상론은 과거와 차원이 다르다는 분석이 나온다. 우크라이나를 군사적으로 지원해온 서방은 물론 우크라이나 국민들마저 전쟁 장기화에 상당한 피로감을 느끼는 상황에서 종전을 ‘압박’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주요 전선에서 잇따라 패퇴하고, 러시아가 벨라루스와 함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겨냥한 전술핵 훈련을 하는 등 러시아와 나토의 직접 충돌 가능성도 부각되면서 종전을 피할 수 없는 선택지 중 하나로 밀어넣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여기에 푸틴이 한 걸음 더 나아가 ‘종전 협상과 그 이후’까지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정황이 나왔다. 바로 야누코비치의 벨라루스행(行)이다. 벨라루스·우크라이나 매체에 따르면 푸틴과 루카셴코의 정상회담이 열리던 24일 러시아에 머물던 야누코비치의 비행기가 벨라루스 남동부 고멜 공항에 착륙했다. 현지 매체 우크라이나인스카 프라우다는 “야누코비치가 이 비행기에 탔다면 그와 루카셴코, 푸틴 세 사람이 젤렌스키를 우크라이나에서 밀어내고 친러 세력이 정권을 장악하는 시나리오를 논의했을 수 있다”며 “푸틴이 ‘우크라이나 내부 흔들기’에 나서려 한다”고 보도했다.

야누코비치는 피로 얼룩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악연의 중심에 선 인물이다. 그는 초기 친서방 정책을 펼치다 러시아의 압력에 노골적 반서방·친러 정책으로 돌아섰고, 이에 분노한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인해 2014년 2월 축출됐다. 푸틴은 이에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계 보호’를 명분으로 크림반도와 동부 돈바스를 차례차례 손아귀에 넣었고, 급기야 전면 침공까지 했다. 야누코비치는 이후 러시아에 망명, 푸틴 정권의 비호를 받으며 줄곧 자신의 축출이 부당하다고 주장해왔다. 이 때문에 푸틴이 다시 야누코비치를 앞세워 우크라이나에 친러 꼭두각시 정권 수립을 꾀하려 한다는 관측이 계속 나왔다.

이런 관측을 뒷받침하듯 푸틴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행정부의 정통성도 문제 삼았다. 푸틴은 “우리는 (협상 상대인 우크라이나) 지도자의 정당성이 끝났다는 것을 안다”며 “법적 구속력이 있는 문서(평화 협정)에 서명하려면 합법적인 정부와 거래하고 있다는 것을 완전히 확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젤렌스키는 2019년 5월 20일 취임해 지난 20일 5년의 임기를 채웠지만, 계엄령 와중엔 선거를 치를 수 없다는 헌법 규정에 따라 여전히 정부를 이끌고 있다. 국제사회에선 전혀 문제 삼지 않는데도, 원인 제공자인 푸틴이 도리어 젤렌스키의 정통성을 공격하고 나선 것이다. 우크라 매체들은 “젤렌스키를 무능하고 비합법적인 지도자라고 선동해 우크라이나 내 분열을 획책하고 서방과 단결도 해치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푸틴의 평화 협상론이 다음 달 15일부터 이틀간 스위스에서 열리는 ‘우크라이나 평화회의’를 견제하려는 의도라는 해석도 있다. 이 회의에는 젤렌스키가 참석할 예정이며 한국을 포함, 전 세계 80국 이상이 참여한다. 젤렌스키는 푸틴의 협상론을 일축했다. 회의를 앞두고 26일 공개한 영상에서 “러시아는 대화를 원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모두 새빨간 거짓말”이라며 “평화는 진짜 전쟁이 끝나기를 바라는 국가 정상들에 의해 논의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빅토르 야누코비치

친러시아 성향의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 도네츠크 주지사·총리를 지내고 2004년 대선에서 승리했지만, 부정선거 논란으로 대규모 반정부 시위(오렌지 혁명)를 촉발시키면서 선거가 무효화됐다. 이후 2010년 대선에서 승리해 5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2013년 11월 유럽연합(EU) 가입 절차를 돌연 중단하고 러시아와 경제 협력을 강화하는 등의 친러 노선에 반발한 대규모 반정부 시위(마이단 혁명)로 2014년 2월 축출돼 러시아로 피신해 망명 생활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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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정철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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