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17 (월)

[단독] 야설?… 선 넘은 로펌 광고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서울신문

변호사업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자극적인 문구를 내세운 광고들이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서울의 한 전철역 광고판에 26일 ‘상간녀를 고소해서 벌받게 하고 싶다’는 내용의 변호사 광고가 게시돼 있다(사진은 기사에 등장하는 법무법인과는 무관). 홍윤기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30대 박모씨는 지난해 9월 변호사 수임을 위해 온라인 검색을 하던 중 한 포털 사이트에서 ‘○○(지역 이름) 장애인 성범죄 만족했습니다’라는 제목의 게시글을 봤다. 호기심에 해당 글을 클릭하자 ‘성매매 만족했습니다’, ‘도촬죄 예약했어요’ 등과 같은 게시글들이 줄줄이 떠 깜짝 놀랐다. 알고 보니 성범죄 피의자들을 대상으로 한 A법무법인의 변호사 홍보 글이었다. 심지어 한 게시글에는 성범죄 과정을 자세히 묘사한 후 말미에 “변호사 덕분에 승소했다”는 후기가 달려 있었다. 박씨는 “마치 성매매 후기 같은 제목을 달거나 ‘야설’(야한소설) 수준의 게시글을 게재해 클릭을 유도하고 있었다”면서 “이게 과연 로펌 광고라고 할 수 있는지 믿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변호사 숫자가 3만 5000명을 넘기며 경쟁이 치열해지자 선정적인 문구 등을 앞세운 변호사 광고가 우후죽순 등장하고 있다. 자극적인 내용을 앞세워 일단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보자는 식이다. 누구나 접근할 수 있어 청소년들까지 무분별한 광고 글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 자칫 ‘범죄를 저지르고도 변호사만 잘 선임하면 된다’는 식의 잘못된 인식까지 심어 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서울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대한변호사협회(변협)는 최근 A법무법인에 대한 징계 절차에 착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1월 변협 징계조사위원회(조사위)에 회부한 데 이어 조만간 징계 수위를 확정할 방침이다.

특히 A법무법인의 경우 포털 사이트에 다수의 카페를 개설하고 ‘야설’을 연상케 하는 자극적인 제목의 글을 수백 개 올려 클릭을 유도하는 수법을 썼다고 한다. “가해자는 흥분하거나 성욕이 달아오를 때 여성을 강간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물에 수면제를 넣어 먹이기로 했다”면서 성범죄 피해 상황을 자세히 묘사한 후 “피해자는 변호사 덕분에 승소했고, 이 사건을 계기로 피해자는 전문가가 필요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고 덧붙이는 식이다. 변협은 “변호사 품위에 어긋나는 현저히 저속한 광고들”이라며 중징계까지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변협은 해당 광고 글이 변호사의 품위유지 의무 규정을 위반했다고 본다. 변협은 변호사법에 근거해 ‘변호사 광고에 관한 규정’을 정하고 있는데 변호사의 품위 또는 신용을 훼손할 우려가 있는 내용의 광고를 금하고 있다.

변협 관계자는 “최근 도를 넘는 광고 글이 확 늘었는데 징계하려 하면 잠시 지웠다가 다시 반복하는 편법을 쓰고 있다”고 토로했다. A법무법인 관계자는 “변협 징계가 안 나온 상황에서 이렇다 할 견해를 표명하긴 어렵다”는 입장이다.

A법무법인 외에도 포털 사이트 블로그 등을 통해서 “미성년자 성매매한 분만 보세요”, “미성년자와 조건만남하고도 처벌 피한 방법” 등을 내걸고 광고하는 로펌들이 적지 않다.

법무법인의 ‘선 넘는 광고’가 오히려 성범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피해자에게 자칫 상처가 될 수 있는 성범죄 내용을 구체적으로 앞세우고, 자사 변호사는 ‘역시 다르다’, ‘실력 있다’라는 홍보 글을 붙이는 것은 성범죄를 저질러도 괜찮다거나 살인해도 무죄가 되게 해 준다는 인식을 심어 줄 수 있다”면서 “범죄를 용인하는 것처럼 보이게 해 결국 사회의 공공성을 해친다”고 꼬집었다. 김신규 목포대 법학과 교수는 “가치 판단 기준이 아직 정립되지 않은 청소년들에겐 해당 범죄를 일상적인 행위로 간주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지하철역 등에서 마치 성범죄 전문 로펌인양 광고해 징계 대상이 된 법무법인도 있다. 변호사업무 광고 규정에 따르면 ‘특정 사건 전문’ 표시의 경우 전문 분야 등록을 한 변호사만 사용할 수 있다. 따라서 법무법인 앞에는 ‘전문’이라는 표현을 아무나 쓸 수 없게 돼 있다. 변협은 B법무법인이 전문이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쓰진 않았지만 소비자에게 이런 인식을 심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보고 징계 절차에 착수했다. 다만 B법무법인은 “주취급 업무를 표현하고자 한 것으로 변호사 품위를 저해했다는 데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했다.

법조계는 변호사 수의 급증으로 업계 경쟁이 과열되면서 이처럼 자극적인 변호사 광고 경쟁이 난무하고 있다고 본다. 실제 서울신문이 법무부를 통해 전국 변호사 현황을 분석한 결과 전체 등록 변호사 수는 2014년 12월 31일 기준 1만 8708명에서 지난 4월 30일 기준 3만 5232명으로 10여년 만에 1.9배가량 늘어났다.

상황이 이런데도 변호사 광고를 규제할 수 있는 조항은 ‘품위 유지 위반’ 정도로 모호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법무부는 “광고 규정 관련 변화의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면서도 구체적인 검토에 나서지는 않고 있다. 전 교수는 “해외 로펌들은 피의자나 피해자에게 개별적으로 연락해 법적 변호를 권유하기는 해도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이런 식의 광고는 하지 않는다”면서 “변호사 광고에 대한 좀더 엄격한 규정과 자정작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소희·송수연·이성진 기자



    ▶ 밀리터리 인사이드

    - 저작권자 ⓒ 서울신문사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