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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8 (화)

이슈 경찰과 행정안전부

[전국 레이더] "아이 납치됐다" 경찰 80명 출동했는데…도넘은 허위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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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간 4천건 허위신고…경찰에 앙갚음·정신질환 등에 기인

명백한 범죄…처벌 강화 추세

(전국종합=연합뉴스) 지난 19일 오후 대구에서 "아이들이 차량에 강제로 태워졌는데 소리를 질렀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비상 상황으로 판단한 경찰은 순찰차 40대와 인력 80여명을 투입했다.

하지만 현장의 폐쇄회로(CC)TV에서 납치 장면은 포착할 수 없었다. 납치 장소에 대한 신고자의 진술도 오락가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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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전화 허위신고 만우절
[연합뉴스TV 캡처]



알고 보니 허위신고였다.

전국에서 자행되는 이 같은 허위신고는 연간 4천건 안팎으로, 경찰과 구조대원들을 헛걸음하게 하고 정작 필요한 현장에 즉시 투입을 방해할 수 있다.

◇ 한 사람이 하루에 수백건 허위신고…"폭파" 신고에 대피 소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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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112 신고센터
[연합뉴스TV 캡처]


반복 허위 신고자 중 상당수는 민원 해결이나 공공 기관의 처분 등에 앙갚음하기 위해 신고를 한다.

일단 신고를 하면 경찰이 적극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정신 질환 등 어려움이 있거나 술 혹은 마약에 취해 112에 전화하기도 한다.

지난 2월 25일 오후 인천경찰청 112상황실에 신고 전화가 걸려 왔다.

신고자는 "(경찰관들을) 계속 괴롭히겠다"며 같은 날 오후 2시부터 7시간 동안 290차례나 112에 신고했다.

경찰이 현장에 출동해 확인한 결과 신고자는 술에 취해 있었고 범죄 등 특별한 상황은 없었다.

이 신고자는 최근 1년 동안 인천에서만 317건의 허위신고를 했다. 전국적으로는 2천88건에 이르렀다.

이달 10일 강원 영월에서는 112에 전화를 걸어 욕설하거나 거짓 신고를 하는 등 하루 140회 전화해 경찰력 낭비를 초래한 40대가 유치장 신세를 졌다.

이 남성은 처음에는 112에 단순 욕설 전화를 했다가 범칙금 부과 통고 처분을 받자 앙심을 품고 절도나 기물 파손 등을 지어내 신고한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달 8일 전북 임실군의 한 빌라에서는 '사람이 죽은 것 같다. 문이 열리지 않는다'는 신고가 들어왔는데 알고 보니 연락을 피하는 지인을 만나기 위한 거짓 신고였다.

같은 달 13일 오후 수원시 권선구에서 "살인 사건이 났다. 위층에서 비명이 들렸다"고 3차례 허위 신고가 접수됐다.

신고자는 소음 피해 신고를 여러 차례 했으나 해결되지 않자 술에 취한 상태에서 이런 범행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폭파, 테러 예고 등 허위 신고로 공공·상업 기관 운영이 일시 중단되고 수백명이 대피하는 소동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지난해 2월 "경기 광명역을 11시에 폭파할 예정"이라는 글이 119 신고 센터 홈페이지에 올라와 경찰 등 133명이 출동했으며, 2022년 8월 경기 고양일산우체국에 폭발물 택배가 있다는 거짓 신고가 접수돼 200여명이 대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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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국에 출동한 경찰특공대
[독자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 허위 신고로 의심돼도 출동해야…경찰력 낭비 '심각'

허위 신고로 낭비되는 경찰력의 규모는 상당하다.

납치나 살인 등 강력 사건 발생 때 내려지는 최단 시간 출동 지령 '코드0'(CODE 0·매뉴얼 중 위급사항 최고 단계)가 발령되면 인근 지구대, 형사기동대, 기동순찰대, 당직 형사팀, 다목적 기동대 등 수십명 규모의 인력이 투입된다.

폭파나 테러 의심 신고에는 규모가 커진다. 경찰 초동대응팀을 비롯해 10명 내외의 경찰특공대, 군 폭발물 대응팀과 소방 등 60∼70명, 많게는 100명 이상이 투입되기도 한다.

경찰 입장에서는 코드0 등 강력 대응 조치를 '아낄' 수도 없다. 신고 내용만으로 실제 상황의 위급 정도를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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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112 허위신고(PG)


허위 신고가 의심된다고 해도 일단 강력 대응해야 한다. 자의적 판단으로 적극 대응을 하지 않아 문제가 생기면 그 책임을 져야 하는 부담 때문이다.

112 상황실의 한 관계자는 "신고 내용이 터무니없거나 모순되는 등 허위 신고가 분명한 경우에도 신고자가 강력 범죄를 언급하면 매뉴얼에 따라 코드 0등 강력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다"며 "이에 따라 신고 지령을 내리는 부서와 현장부서 사이에 갈등이 빚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허위 신고로 인한 피해와 경찰력 낭비가 커지면서 허위 신고자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는 추세다.

경찰청이 집계한 허위신고는 2020년 3천533건, 2021년 4천153건, 2022년 3천946건 등이다. 이중 형사입건 사례는 같은 기간 954건, 955건, 990건이며 구속 건수는 22건, 10건, 47건이었다.

112 허위신고를 하면 형법상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죄로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경범죄 처벌법상 6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 과료 처분을 받을 수 있다.

특히 올해 1월 제정된 '112신고의 운영 및 처리에 관한 법률'이 7월 3일 시행되면 거짓으로 신고를 해 경찰력이 낭비될 경우 500만원 이하 과태료 처분을 받는다.

대전지법은 올해 2월 경찰이 상습 허위 신고자 B(31)씨 등 3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이들이 출동한 경찰관 59명에게 1천105만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하기도 했다.

처벌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경기북부경찰청은 허위 신고를 비롯해 비슷한 내용의 반복 신고에 대해 112뿐만 아니라 여성·청소년, 교통 등 다양한 기능이 맞춤형 대응을 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반복 허위 신고를 하는 피의자 중 상당수는 울분을 품은 사회적 약자거나 정신 질환이나 알코올·마약 중독 등 문제를 가지고 있다"며 "이들이 가진 문제에 대해 파악하고 가능한 부분은 해결에 도움을 주는 것도 허위 신고 문제에 접근하는 또 다른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천경환, 장지현, 손현규, 박성제, 백나용, 박영서, 나보배, 황수빈, 강영훈, 정회성, 강수환, 최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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