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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대통령은 왜 격노했을까 [한겨레 프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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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오동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공수처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환담장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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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철 | 통일외교팀장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해병대원 사건) 수사 결과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무척 화를 냈다는 이른바 ‘브이아이피(VIP) 격노설’이 현안이다. 나는 국방부 출입기자라 주변 사람들에게 관련 질문을 자주 받는다. 올해 초까지는 ‘격노설’이 맞냐 틀리냐는 질문을 들었다. 최근에는 “왜 대통령이 격노했느냐”는 이야기를 듣는다. 사람들의 관심이 ‘격노설’의 진위에서 이제는 윤 대통령의 ‘격노’를 기정사실로 간주하고 왜 화를 냈느냐로 옮겨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왜 사람들이 ‘격노설’을 개연성이 높다고 여길까. 그동안 알려진 윤 대통령의 언행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이런 일로 사단장이 처벌받으면 사단장을 누가 하느냐”고 말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윤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 뒤 2022년 11월7일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에서 했던 말과 비슷한 논리다. 당시 그는 “엄연히 책임이라고 하는 것은 있는 사람에게 딱딱 물어야 하는 것이지, 그냥 막연하게 다 책임지라 하는 것은 현대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이야기다”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태원 참사 때 수사를 통해 불법 행위가 있었는지 밝히고 그에 따라서만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판단을 내세워 ‘법적 책임’만 강조했다. 해병대원 사건 때도 윤 대통령이 비슷한 반응을 보였을 것이란 합리적 의심이 ‘격노설’이 널리 퍼진 배경이라고 나는 본다.



군 지휘관의 법적 책임은 지휘관의 고의 또는 과실이 원인이 되어 사고나 피해가 발생했을 때 인정되는 책임이다. 아무리 검찰총장을 지낸 수사 전문가인 윤 대통령이라도 해병대원 사건 수사기록을 직접 검토하지 못한 상태에서 해병대원 사건에서 당시 해병대 1사단장의 법적 책임이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할 수는 없는 일이다. 지난해 7월 대통령실은 해병대원 사건 수사보고서를 입수하려고 여러차례 시도했지만 실패하고 8쪽짜리 언론 브리핑 자료만 받았다.



법적 책임만을 강조한 ‘격노설’이 알려지자 군 안팎에서는 “지휘 책임이란 군 특성을 같이 봐야 한다”는 반응이 나왔다. 해병대원 사건은 법적 책임뿐만 아니라 지휘 책임도 맞물려 있다. 지휘 책임은 자신의 지휘 밑에 있는 부하에 대한 지휘·감독과 관련해 지는 책임이다. 군 지휘관의 권한이 포괄적이고 강하기 때문에 군 내부에서는 지휘 책임은 무한 책임이란 관행이 있다. 지휘관이 부대 내 사건·사고에 대해 무한 책임을 지다 보니, 지휘관이 책임 추궁, 승진 누락 우려 때문에 사건·사고 진상을 은폐하는 부작용까지 나을 정도다.



여러 사람의 의심대로 ‘격노설’이 맞다면 대통령이 왜 화를 냈을까.



먼저 ‘검찰 지상주의자’인 윤 대통령이 검사 때부터 형성된 경찰을 발아래로 보는 고정관념이 작용했을 것이란 추정이 있다. 군 고위직을 지낸 한 인사는 “윤 대통령은 박정훈 대령이 이끈 군사경찰인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 결과가 못 미더웠을 것이다. ‘격노설’의 바탕에는 사단장까지 혐의를 둔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 결과에 대해 군사경찰도 결국 경찰로 여기고 무시하는 대통령의 편견이 깔려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음으로는 윤 대통령 주변 인사가 해병대원 사건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해서 윤 대통령이 이 사건에 선입견을 갖고 있었을 것이란 추정이다. 시중에서는 ‘격노설’과 관련된 누가 어떤 역할을 했고, 누구와 누구가 어떻게 연결돼 결국 윤 대통령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는 식의 소문이 떠돌아다닌다.



나는 이런 소문들이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권위와 신뢰에 악영향을 줄까 걱정된다. 대통령은 국군 장병 50만명의 통수권자다. 유사시 전쟁 승리를 위해 대통령의 합법적인 명령이면 설사 그 길이 죽음으로 가는 길이라도 군인들은 따라야 한다. 군에 대통령의 영이 서지 않으면 안보 위기다. 특검법안을 받든지 윤 대통령이 직접 나서 ‘격노설’ 논란을 빨리 매듭짓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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