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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8 (화)

[인터뷰]"민주유공자법 반드시 대통령께 거부권 건의… 국가 정체성 흔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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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 인터뷰]
"동의대 사건, 순직 경찰과 가해자를 같이 안장할 수 있나"
"사회적 합의 없어… 박종철·이한열처럼 국민이 납득해야"
"보훈부 승격 1년… 국가유공자에서 제복 근무자로 확대"
"윤석열 대통령께 부담이 된다 하더라도, 저희는 거부권을 행사해주십사 요청할 겁니다."
한국일보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이 23일 서울 용산구 서울지방보훈청에서 본보 인터뷰를 갖고 윤석열 대통령께 부담이 되더라도 민주유공자법 거부권 행사를 반드시 건의드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용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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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은 23일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단호하게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하는 '민주유공자법'이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더라도 반드시 막아낼 것이라는 결의가 담겼다. 윤석열 대통령이 민주유공자법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다면 11번째가 된다. 정치적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강 장관은 법 시행을 그대로 두고 보는 건 "국가 정체성을 흔드는 것"이라며 "정치적 유불리를 따질 사안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강 장관은 1989년 '동의대 사건'을 예로 들며 "당시 순직한 경찰들이 국립묘지에 안장돼 있는데, 법이 통과되면 가해자를 함께 안장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유공자법은 △유신반대투쟁 △6월 항쟁 △부마 항쟁 등의 관련자와 유가족에 대해 교육, 취업, 의료, 대부, 양로, 양육 등을 지원하는 내용이다.

지난해 여론을 달궜던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에 대해서는 "소관 기관인 육군사관학교에서 요청이 온다면 협업을 통해 가장 좋은 방안을 찾아보겠다"고 밝혔다. 강 장관은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보훈부는 정부부처 가운데 유일하게 법에 따라 기부금을 모금할 수 있다"면서 "국민의 힘을 하나로 모으는 '모두의 보훈' 프로젝트를 시행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민주유공자법 통과를 반대하는 이유는.

"이 법안은 140여 사건을 아우른다. 독재정권 반대운동뿐만 아니라 교육·언론·노동운동 및 부산 동의대·서울대 프락치·남민전 사건 등 사회적 논란이 된 사건도 포함된다. 관련된 당사자 및 유가족은 900여 명에 이른다. 어떤 사건이 민주유공 사건인지, 사건 관련자 중 어떤 사람을 민주유공자로 인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다고 볼 수 없다. 법안에 명확한 기준과 범위가 규정돼 있지 않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강 장관이 언급한 동의대 사건은 1989년 입시비리에 항의하던 학생들이 전경 5명을 납치·감금해 이를 구출하려던 경찰 7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부상당한 일이다. 2009년 민주화운동으로 공식 인정됐지만 논란이 여전하다.
한국일보

김영삼 전 대통령이 민주당 총재 시절이던 1989년 5월 4일 부산 백병원 영안실에 차려진 동의대 사건 순직경찰관 합동빈소를 찾아 분향한 뒤 묵념을 올리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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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보나.

"굉장한 혼란이 야기될 거다. 이를테면 동의대 사건으로 순직한 경찰 7명이 국립묘지에 안장돼 있다. 그런데 법안이 통과되면 최악의 경우 가해자 3명이 피해자들과 같은 묘지에 묻힐 수 있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선 국립묘지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이것도 만만찮은 일이다. 후속 조치는 차치하더라도, 한 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가 모두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아 국립묘지에 묻힌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다."

-'채 상병 특검법'을 거부한 윤 대통령이 민주유공자법에 재차 거부권을 행사하긴 부담이 클 텐데.

"윤 대통령께 부담을 드리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 법안은 우리도 물러설 수 없다. 국가 정체성과 관련돼 있기 때문에 정치적 유불리를 따질 사안이 아니다. 국가의 철학과 가치관에 혼돈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민생 법안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큰 파장을 일으킬 것이다. 국가보훈부는 유일하게 '국가'를 품은 정부부처다. 보훈은 교육의 '백년대계'를 넘어서는, 국가의 주춧돌이자 근간이다. 공권력에 피해를 입은 이들에게 보상을 하는 건 마땅하지만, 이들을 '영웅'으로 기리고 예우하는 '유공자'로 인정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민주당의 반대를 어떻게 극복할 건가.

"최근 여당 원내대표, 정책위의장,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났다. 야당 의원들과는 여러 경로를 통해 소통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 야당 의원 설득을 위한 노력을 더 적극적으로 할 생각이다. 여야가 합의해 납득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하고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과정이 충분히 선행돼야 한다. 박종철·이한열 열사는 국민 다수가 공감하겠지만, 경찰을 숨지게 한 동의대 사건 가해자 등은 국민이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일보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은 23일 서울 용산구 서울지방보훈청에서 가진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국가유공자뿐만 아니라 제복 근무자 모두를 지원하는 일상 속 살아있는 보훈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신용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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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전 대통령과 홍범도 장군 논란이 일었다. 최근 정부가 독립운동가 공적 재평가 방안을 내놨는데.

"무장투쟁뿐만 아니라 외교·교육·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공적 평가에 대해 균형을 맞추겠다는 것이지, 특정 인물을 재평가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특히 이승만 전 대통령은 건국훈장 1등급인 '대한민국장'을 받은 분으로, 공적을 더 높일 여지도 없다. 홍범도 장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육군사관학교 내 흉상 이전 논란이 있었지만, 역대 정부에서 위대한 독립전쟁의 영웅인 홍 장군의 위상과 입지가 흔들린 적은 없다."

-내달 5일로 보훈부 승격 1년인데, 그간 성과와 향후 계획은.

"예전에는 국가유공자만 대상으로 했다면, 현 정부 이후 군인·경찰·소방관 등 '제복 입은 영웅'들, 나아가 국민 모두를 아우르는 보훈으로 거듭나고 있다. 하지만 예산이 큰 부담이다. 올해 6조4,000억 원 예산 가운데 보상금 등 경직성 예산을 제외하면 우리가 쓸 수 있는 돈은 3,000억 원 남짓이다. 묘안을 찾던 중 35년간 사장돼 있던 '보훈기금법' 시행령을 발견했다. 정부부처 가운데 보훈부가 유일하게 기부금을 모금할 수 있는 법적 근거다. 시행령을 개정해 투명성과 공정성을 제고했다. 이를 계기로 6월부터 국민 모두가 힘을 합쳐 국가유공자와 제복 근무자를 지원하는 '모두의 보훈' 프로젝트를 시행할 계획이다. '일상 속 살아있는 보훈'을 정책 방향으로 삼아 꾸준히 실천하겠다."
강정애 보훈부 장관은 누구
지난해 12월 제2대 국가보훈부 장관으로 임명된 강 장관의 집안은 대표적인 독립유공자 명문가다. 남편인 권영빈 중앙대 교수 집안과 합치면 직계만 9명, 인척 포함 약 25명이 독립운동가로 포상을 받았다. 강 장관의 부친인 강갑신 선생은 6·25전쟁에 참전해 화랑무공훈장을 받았고, 시조부는 김원봉 등과 함께 의열단을 결성했던 권준 장군, 시부는 독립유공자 권태휴 지사다. 1998년부터 숙명여대 교수로 재직했으며 2016년 숙명여대 총장으로 선출됐다. 교수 임용 후부터 모든 정부에서 다수의 자문 위원으로 활동했고, 여성 최초로 한국인사관리학회장을 역임했다.


김광수 정치부장 rollings@hankookilbo.com
김경준 기자 ultrakj7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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