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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0 (목)

이슈 법의 심판대 오른 MB

이명박 전 대통령과 UAE 대통령의 '100년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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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빈 방문 중 전직 대통령 자택 방문 이례적

일가족 모두 나와 반겨…아부다비 공식 초청

2009년 바라카 원전 수주 인연 이어져 와

"아! 정말 반갑다, 이 사람"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 사저 마당에서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 대통령을 맞이하기 직전 이렇게 말했다. 두 사람이 만난 것은 이 전 대통령이 2016년 무함마드 대통령의 초청으로 아랍에미리트(UAE)를 찾은 지 8년 만이다.

이 전 대통령과 함께 일했던 곽승준 전 국정기획수석과 장다사로 전 총무기획관이 무함마드 대통령을 대문 앞에서 먼저 영접했다. 이 전 대통령은 한복 차림을 한 김윤옥 여사와 함께 무함마드 대통령을 사저 안 현관에서 기다렸다. 이 자리에는 아들, 며느리, 손주 등도 있었다. 곽 전 수석, 장 전 기획관과 함께 현관으로 들어온 무함마드 대통령은 이 전 대통령의 친손주들로부터 꽃다발을 건네받았다. 현관 한 기둥에는 환영한다는 문구(My dear friend, welcome to my home!')의 팻말도 붙어 있었다. 이를 본 무함마드 대통령은 가슴에 손을 올리면서 "오 마이 갓, 마이 프렌드(Oh my god, my friend)"라며 감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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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대통령과 김윤옥 여사가 29일 오전 서울 강남구 자택에서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 아랍에미리트(UAE) 대통령을 만나 기념 촬영하고 있다. 2024.5.29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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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 대통령과 무함마드 대통령은 사저에서 55분간 대화를 이어갔다. 이 전 대통령은 기념 촬영을 하면서 "우리는 매우 행복합니다(We are very happy)"라고 말했고, 무함마드 대통령은 "우리는 그렇습니다(We are)"라고 화답했다. 영어로 인사말을 나눈 두 사람은 한국과 UAE 양국 협력, 이스라엘과 하마스 분쟁, 미국 대선 등 국제 정세를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이 자리에는 맹형규 전 행정안전부 장관과 하금열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도 함께했다. 맹 전 장관은 "두 분이 진심으로 존경하고 좋아하는 그런 분위기가 느껴졌다"면서 "이 전 대통령이 가족들과 함께 있는 모습을 무함마드 대통령이 굉장히 좋아했고, 가족들을 모두 아부다비로 모시겠다고 공식적으로 초청했다"고 말했다.

국빈 방문 중인 외국 정상이 퇴임 10년이 넘은 전직 대통령의 자택을 방문한 일은 전례를 찾기 힘들다. 무함마드 대통령은 함께 방한한 UAE 왕실 요리사가 연어, 양고기 등을 주재료로 만든 8가지 요리(28일 저녁), 5가지 요리(29일 아침) 등 총 13가지 요리를 이 전 대통령 사저로 보내 각별한 마음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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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대통령이 29일 오전 서울 강남구 자택에서 무함마드 UAE 대통령을 접견하고 있다. 2024.5.29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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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접견은 2009년 UAE 바라카 원자력발전소 수주 과정에서 두 사람이 맺은 인연에서 비롯됐다. 당시 UAE는 원전 건설을 프랑스에 맡기려 했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실질적인 권한이 있었던 무함마드 대통령(당시 왕세제)과 여러 차례 통화하면서 직접 설득했다. 입장이 곤란해진 UAE 측이 여러 차례 통화를 미루기도 했지만, 이 전 대통령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회고록에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나는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국가 통치가 아닌 국가 경영을 하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했다. 경영 입장에서 본다면 내 자존심보다는 국익을 우선시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우리 역사에 큰 획을 긋는 일인데 체면을 따질 문제가 아니었다'고 썼다.

당시만 해도 한국은 한 번도 원전을 수출하지 않은 나라였다. UAE가 프랑스와의 계약도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었던 것으로 파악돼 당시 외교부 장관은 "전혀 가능성이 없다"고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은 한승수 전 국무총리를 단장으로 관계 부처 장관이 참여한 40명의 대표단을 UAE로 파견하는 등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했다. 마침내 무함마드 대통령은 마음을 열었고, 이 전 대통령은 쐐기를 박기 위해 직접 UAE를 방문했다.

이 전 대통령은 현대건설에 근무했던 시절부터 중동 문화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중동 국가는 기계적인 이해타산보다는 감정과 우정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이 전 대통령도 그런 스타일을 추구했다. UAE에 도착하자마자 '형제와 같은 마음'을 보이기 위해 무함마드 대통령 선친인 고(故) 자이드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했고, 이때 예고 없이 무함마드 대통령이 나타나 이 전 대통령을 끝까지 직접 안내했다.

원전 수주는 건설만이 아니라 완공 이후 60년간의 원전 수명 기간 중 운영까지 포함한다는 의미에서 '100년의 우정'이라고 불린다. 이 전 대통령은 원전 수주 계약을 마친 뒤에도 무함마드 대통령과의 인연을 이어갔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편지를 보내고 선물을 챙겼다. 편지를 보낼 때는 문구 하나까지도 각별히 신경을 썼다고 한다.

박형준 부산시장(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외교상으로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외교 관계가 아니라 마음을 주고받는 관계로 만든 것이 상당히 인상적"이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재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전 특임장관)은 "원전 사업을 수주하는 과정에서 (두 분이) 인간적으로 친해졌다"면서 "아크부대 등을 파견하겠다는 약속도 정확히 지키면서 양국이 신뢰를 쌓았고, 서로 인간적으로 신뢰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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