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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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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종 대 왕’ ‘영화꽁짜’ 될 뻔… ‘경복궁 담장 낙서’ 전말 [사사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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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담장 낙서 사건’의 배후 강모(30)씨가 불법 영상공유 사이트 등의 운영을 시작한 것은 지난해 10월이다. 강씨는 총 5개의 불법 영상공유 사이트와 3개의 음란물 공유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영화와 드라마 등 저작물 2368개와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3개, 불법촬영물 9개, 음란물 930개를 배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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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3년 12월 17일 문화재청 작업자들이 서울 종로구 경복궁 서편 담장에 칠해진 낙서에 대해 제거 작업을 하는 모습. 뉴시스


수입도 쏠쏠했다. 강씨는 이 사이트에 개당 500만~1000만원을 받고 배너 광고를 실었다. 이를 통해 강씨가 거둔 수익은 2억5000여만원에 달한다. 이렇게 얻은 수익금은 가상화폐로 바꿔 관리했다.

사이트가 유명해지면 이용자가 늘어나고, 광고 단가도 오를 것이라고 생각한 강씨는 보안 메신저 텔레그램을 통해 ‘바이럴 마케팅’을 대신해 줄 사람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처음 강씨가 노린 것은 숭례문과 경복궁 담장,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이었다. 강씨는 지난해 12월14일 텔레그램으로 접촉한 A(15)군에게 ‘낙서’를 사주했지만, A군이 겁을 먹고 중도에 포기하는 바람에 실패했다.

강씨는 텔레그램 단체 채팅방에서 만난 임모(18)군에게 자신을 ‘이 팀장’이라고 소개했다. “경복궁 담장과 세종대왕 동상 등에 스프레이 칠을 하면 500만원을 주겠다”는 제안도 덧붙였다. 임군이 이를 받아들이자, 사이트 운영 공범을 통해 임군에게 스프레이 구매 비용과 교통비 등 10만원을 송금했다.

임군은 여자친구 김모(16)양과 함께 A씨 지시대로 지난해 12월16일 오전 1시 경기 수원시에서 출발했다. 강씨는 흰색 벤츠를 타고 현장 주변을 돌며 감시하고 낙서할 구체적 장소를 찍어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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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지정문화재인 경복궁 담장에 낙서하게 시킨 30대 남성이 지난 25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를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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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씨의 지시를 받은 임군 등은 경복궁 영추문 담장과 국립고궁박물관 쪽문에 강씨가 운영하는 사이트 주소와 ‘영화 공짜’등의 문구를 적었다. 강씨는 세종대왕 동상에도 낙서할 것을 지시했다. 임군은 “경비가 너무 삼엄하다”며 이를 거부했고, 강씨는 대신 서울경찰청 외벽에 낙서할 것을 주문했다. 강씨는 마케팅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임군 등에게 언론사에 낙서 사실을 익명 제보하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강씨는 임군 등에게 “수원 어딘가에 500만원을 숨겨놓겠다”고 말했으나 정작 실제로 돈을 건네진 않았다. 범행 후 귀가한 임군과 김양은 사흘 만에 경찰에 붙잡혔다.

임군 등이 검거된 사이 강씨는 주거지를 두 차례 옮기는 등 도피 생활을 이어갔다.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 ‘사이트 운영자가 긴급 체포됐다’는 허위 소문을 퍼뜨리는가 하면, 올해 4월에는 여권을 발급받는 등 해외 도피를 구상했다. 다만 실제로 해외로 도피하진 않고 5월부터 전남 여수시 한 숙박업소로 거처를 옮겼다. 불법 영상공유 사이트 1개, 도박사이트 1개 구축 등 사업 확장을 준비하기도 했다. 같은 달 22일 경찰에 붙잡힌 강씨는 28일 조사 도중 달아났다가 2시간여 만에 재검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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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규식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장이 31일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서 경복궁 낙서테러 사건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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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31일 강씨를 문화재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검찰에 구속 송치했다. 임군과 김양, 강씨의 공범인 조모(19)씨는 불구속 상태로 검찰에 넘겨졌다. 경찰은 강씨가 은닉한 범행수익 등을 추가로 추적하는 한편 그가 운영하던 사이트의 관리를 맡거나 자금 세탁에 도움을 준 혐의로 검거된 공범 4명의 수사를 이어갈 방침이다.

백준무 기자 jm10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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