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20 (목)

성관계·입막음 폭로에 ‘유죄’ 받아도 건재한 트럼프…미국이 타락했나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5월30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유죄가 확정되자 트럼프 지지자들이 뉴욕의 트럼프 빌딩 밖에서 지지 시위를 벌이고 있다. AFP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정의길의 글로벌 파파고는?



파파고는 국제공용어 에스페란토어로 앵무새라는 뜻입니다. 예리한 통찰과 풍부한 역사적 사례로 무장한 정의길 선임기자가 에스페란토어로 지저귀는 여러분의 앵무새가 되어 국제뉴스의 행간을 알기 쉽게 풀어드립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지?



30일(현지시각) 뉴욕 시민 12명으로 구성된 맨해튼 형사법원 배심원단은 유무죄 심사 이틀 만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적용된 34개 혐의 모두에 만장일치 유죄 평결을 내놨다. 재판을 주관한 후안 머천 판사는 7월11일에 형을 선고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6년 대선 전 포르노 배우 스토미 대니얼스에게 성관계 사실 함구 대가로 13만달러(약 1억8천만원)를 주고 회사 장부에 ‘법률 비용’으로 기록한 혐의로 기소돼 4월부터 재판을 받았다. 검찰은 대선에 영향을 미치려는 중범죄라며 조작 행위 34건을 각각의 혐의로 삼아 기소했고, 트럼프 전 대통령은 헛소문으로부터 ‘가정을 지키려고’ 돈을 줬을 뿐이라고 주장해왔다. (…)



트럼프 전 대통령이 기소된 4건 중 유일하게 대선 전에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돼온 이번 사건의 유죄 평결은 그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여론조사를 통해 제기된 상황이다. 그러나 지난해 기소 직후 지지층이 강하게 결집한 예를 들어 꼭 불리하지는 않다는 반론도 있다. 이후 그는 공화당 경선 상대인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를 크게 따돌렸다. (한겨레, 5월31일)





Q. 복습 차원에서 찬찬히 시작해보자.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이번에 유죄 평결받은 ‘입막음 사건’의 발단이 뭐야?



A. 2018년 1월12일 월스트리트저널이 트럼프 쪽이 성인영화 배우 스타 스토미 대니얼스(45)에게 트럼프와의 성관계 주장을 침묵하라는 대가로 13만달러를 지급했다고 보도했어. 이후 대니얼스의 폭로가 본격 시작됐지. 2006년 7월 네바다 타호 호수 리조트에서 열린 유명인 골프대회에서 트럼프를 만났다는 거야. 당시 60세였던 트럼프는 27세인 대니얼스를 자신의 호텔 방에 초청했어. 트럼프는 당시 멜라니아와 결혼해 낳은 첫아들이 4개월 때였어. 트럼프는 대니얼스가 자신의 딸 이방카를 닮았다며 자신이 출연하는 당시 인기 리얼리티 프로그램 ‘어프렌티스’에 출연시켜 주겠다며 환심을 샀어. 성인영화 촬영 때 콘돔 사용, 성관계로 인한 질병 등을 얘기했대. 대니얼스가 화장실에 다녀오니 트럼프는 하의를 벗고 있었고, 성관계를 가졌다고 해. 대니얼스는 강요는 아니었으나, 자신이 원한 것은 아니었고, 당시 자신은 “정신이 나갔다”고 했어. 이후 대니얼스는 뉴욕으로 트럼프를 찾아가기도 했는데 트럼프는 어프렌티스 건은 입을 싹 씻었고 두 사람 관계도 끝났어.



Q. 어쩌다 두 사람 관계가 공개된 거야?



A. 2011년 트럼프가 대선 출마하려고 할 때 대니얼스는 트럼프와의 일을 ‘라이프 & 스타일’이라는 연예 잡지에 1만5천달러에 팔려고 했어. 이 잡지는 대니얼스와 인터뷰 뒤 트럼프 쪽에 확인을 요청했는데, 트럼프의 개인 변호사 마이클 코언이 대니얼스의 주장을 기사화하면 소송하겠다고 협박해서 보도되지 않았어. 대니얼스는 ‘인 터치 위클리’라는 잡지도 접촉했는데 코언이 또 소송하겠다며 협박했어.



트럼프가 2016년 대선 출마를 발표하기 한달 전인 2015년 8월 트럼프 진영에선 대선가도에 지장을 줄 트럼프 스캔들을 정리하는 모임을 가졌어. 미국의 유명한 황색 타블로이드 신문인 ‘내셔널 인콰이어러’를 발행하는 ‘아메리카 미디어 인코포레이션’(AMI)의 경영주 데이비드 페커가 독점 보도를 조건으로 트럼프의 스캔들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제보를 받아 돈을 주고 입을 막자는 전략을 제시했어. AMI가 직접 나섰지. 트럼프가 80년대에 가정부와 관계해 혼외 자녀를 낳았다고 주장하던 트럼프 빌딩의 도어맨 디노 사주딘에게 3만 달러, 트럼프와 밀월 관계를 가졌던 ‘플레이보이’ 모델 카렌 맥두걸에게 15만달러를 주고 틀어막았어. 페커는 이번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서 이런 내용을 증언했어.



그해 10월 들어 트럼프 쪽은 대니얼스가 폭로를 시도하고 있다는 걸 알게 돼. 그런데 이번엔 페커가 몸을 사린 거야. 코언이 직접 나섰지. 대니얼스에게 13만달러를 주면서 발설하지 않는다는 이른바 ‘비공개 합의’(NDA)를 한 거야.



하지만 2011년 대니얼스가 연예 잡지들에 제보한 내용은 이미 알 만한 사람들에겐 다 알려진 얘기였지. 그러다 월스트리트저널이 나서 코언이 돈 준 사실까지 보도하자 본격적으로 논란이 됐어. 코언은 보도 자체를 부인하다가 한달 뒤 돈 준 사실을 시인했어. 트럼프는 이제까지 딱 잡아떼고 있지만.



한겨레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유죄 판결을 이끌어낸 앨빈 브래그 뉴욕 맨해튼지검 검사장. 그는 민주당 맨해튼지검 사상 첫 흑인 지검장으로 2021년 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해 공화당 후보를 꺾고 지검장 자리에 올랐다. 로이터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Q. 트럼프와 대니얼스가 성관계를 한 건 불법이 아니잖아. 왜 재판까지 가서 트럼프가 유죄를 받았지?



A. 코언이 대니얼스에 돈을 지불한 게 불법이야. 그 돈이 트럼프의 선거자금에서 나왔으면 선거자금법 위반이고, 돈의 출처를 가리려고 회계조작도 했어.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 한 행위도 선거법 위반이야.



월스트리트 보도 시점엔 트럼프는 이미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사건, 트럼프재단의 회계 조작 등으로 특검 수사를 받기 시작하고 있었어. 트럼프 최측근인 코언은 자신에 대한 수사가 시작된 지 4개월 만에 수사에 협조적으로 나와. 대니얼스에게 돈을 준 것은 선거법 위반 등이라는 8개의 혐의도 인정했지. 코언의 ‘배신’으로 트럼프는 궁지에 몰려. 결국 2023년 3월30일 뉴욕 주 법원 맨해튼 지법에서 대배심의 결정으로 34개 혐의에 대해 기소가 결정돼. 이번 재판에선 34개 혐의 모두가 배심원들로부터 유죄평결을 받게 되지. 이제 판사의 형량 선고만 남았어.



한겨레

2007년 2월 11일 스토미 대니얼스가 제49회 그래미 어워즈 시상식에 참석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Q. 그런데 스토미 대니얼스라는 사람, 대단하더라. 폭로뿐 아니라 커리어도 엄청나.



A. 본명은 스테파니 클리퍼드라고 해. 루이지애나에서 출신인데 언론인이 되고 싶었지만 집안 형편이 안 좋았대. 우연히 친구 따라 스트립 클럽에 갔다가 스트리퍼(누드 댄서)를 시작해 성인영화 배우가 됐지. ‘포르노의 오스카’로 불리는 AVN(Adult Video News)상을 몇번이나 받았어. 성인영화 감독도 하고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도 출마하려 했을 만큼 적극적인 활동가야. 트럼프를 만났을 당시에도 이미 미국의 대표적 성인영화 배우였어. 2010년 당시 공화당 상원 의원이었던 데이비드 비터가 매춘 혐의가 불거지자 대니얼스 팬들을 중심으로 출마 청원운동이 벌어져.



대니얼스의 출마변도 흥미로워. 당시 공화당전국위원회가 선거자금 모금책들에게 레즈비언 나이트클럽에서 즐긴 비용을 내준 것이 폭로됐어. 대니얼스는 공화당이 당 자금을 섹스에 사용한 것은 공화당이 자신의 자유방임주의적 가치를 잘 대변한다면서 공화당 후보 출마를 결심했다는 거야. 결국 나오진 않았어.



대니얼스은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로 유명세를 얻자 본격적인 폭로전을 벌였어. 2018년 회고록 ‘완전한 폭로’를 출간했는데 “트럼프와의 성관계는 2분 만에 끝났다”, “내 생애 최악의 90초였다” 등 노골적인 내용도 담았지. 트럼프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구호를 패러디해 ‘미국을 다시 흥분하게’라는 전국 스트립 클럽 순회공연도 벌였어.



트럼프가 자신의 얘기를 ‘사기’라고 주장하자 명예훼손 등으로 고소했지. 대니얼스는 이 소송에서 져서 최대 60만달러까지 물어줘야 하는 위기에 처해. 결국 끝까지 소송을 벌일 수밖에 없었지. 이번 재판에도 증인으로 나왔어.



한겨레

5월7일 뉴욕 법원에서 나오고 스토미 대니얼스. AP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Q. 트럼프 지지자들은 이번 사건을 ‘정치적 보복’이라고 주장하던데, 파파고는 어떻게 생각해?



A. 대니얼스의 폭로는 사실일 거야. 그렇지 않았다면 왜 13만달러를 줬겠어? 트럼프가 대선 후보가 아닌 일반인이었으면 대니얼스와 있었던 일은 그냥 넘어갔겠지. 이번 사건은 대선 후보로서 거쳐야 할 검증이기도 해. 지지자들이야 정적을 없애기 위한 과도한 신상털기라고 비난하지만.



문제는 ‘트럼프 리스크’가 대니얼스와의 사건에 그치지 않는다는 거야. 앞서 말했던 코언이라는 ‘키맨’을 잘 봐야 해. 2006~2018년 12년간 트럼프 개인 변호사로 온갖 궂은일을 맡았던 코언은 다 알고 있어. 그는 트럼프재단의 부사장, 트럼프 엔터테인먼트 공동대표를 지냈고 2017~2018년엔 공화당전국위 재정담당 부의장까지 지냈어. 코언은 러시아의 미 대선 개입 문제로 특검 수사를 받으며 곤욕을 치르다가 2018년 8월부터 탈세, 은행 사기, 선거법 위반 등 모든 혐의를 인정했고, 2018년 12월 3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출소했어.



한겨레

트럼프의 개인 변호사였던 마이클 코언. AP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Q. 코언은 왜 트럼프에게 등을 돌린 거야?



A. 코언은 대니얼스에게 입막음 돈을 줄 즈음부터 이미 트럼프와 서먹해진 상태였어. 트럼프가 보너스를 3분의 2나 깎았고 대통령 당선 뒤 원하던 자리도 주지 않았어. 코언은 특검 수사 초반부엔 트럼프와 ‘의리’를 지키려 하다가 가족들이 트럼프를 위해 더이상 거짓말하지 말라고 설득하자 태도가 변했어.



트럼프는 코언이 변호사로서 지켜야 할 고객의 비밀을 누설했다며 또 거액의 소송전을 벌이고 있어. 코언은 2019년 하원 공개 청문회에 나와서 트럼프의 죄상을 낱낱이 까발렸어. 코언은 트럼프 기소가 결정된 날 시엔엔(CNN)에 출연해 “이 자식아, 화요일에 (법정에서) 보자”고 욕을 퍼붓기도 했지.



Q. 유죄를 받았으면 아직 1심이라고 해도 대선 후보로선 끝장난 거 아니야?



A. 트럼프 혐의엔 최대 4년 실형이 가능해. 하지만 법조계에선 벌금형이 나올 확률이 높다고 본대. 설사 실형을 받아도 대법원까지 가려면 시간이 많아. 문제는 트럼프가 유죄 받은 것이 선거판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야. 트럼프 유죄가 결정된 5월30일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를 보면 별 영향은 없는 것 같아. 바이든 41%-트럼프 39%(로이터·입소스 조사), 바이든 49%-트럼프 51%(포브스·해리스 X 조사)



트럼프에 대한 미국 유권자들의 평가는 이미 극단적으로 갈려 있어. 그래서 이번 사건으로 오히려 트럼프 지지자가 똘똘 뭉칠 거라는 관측이 나와. 문제는 무당층이야. 여론조사 업체 모닝컨설트 조사를 보면 무당층 49%가 ‘트럼프는 이제 선거운동을 끝내야 한다’고 답했어.



현재 미국 무당층은 최소 20%가량 돼. 현재 바이든-트럼프 지지율 차이는 5% 내 박빙이야. 무당층 절반이 실제 트럼프를 반대한다면 대선에 결정적 영향을 끼칠 거야. 물론 무당층이 실제 투표장에 나올 거라고 장담할 수 없지만.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Q. 역대 미국 대선을 보면 트럼프에 비하면 훨씬 가벼운 스캔들에도 후보들이 낙마했잖아. 트럼프는 왜 이렇게 건재한 건데? 트럼프에 대한 기대수준이 워낙 낮아서 그런가? 아니면 미국 사회가 바뀐 건가?



A.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미국에선 정치인의 성스캔들이 별로 문제가 안 됐어. 1920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로 당선된 워런 하딩은 결격 사유를 묻자 “나는 씹는 담배, 술을 좋아한다. 친구 부인과 관계도 맺고 있고 30살 어린 여성과 혼외자녀도 있다. 이거 말곤 더 숨길 게 없다”고 당당히 말했어. 그러고도 당선됐지. 유명한 플레이보이였던 존 F. 케네디도 1960년 대선 때 무난히 넘어갔어.



정치인들의 사생활이 문제가 된 건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한 이후 권력 감시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으면서야. 언론들은 앞다퉈 정치인들을 검증했고, 황색 언론들은 성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었지.



1987년 유력한 민주당 대선 주자였던 게리 하트 상원 의원은 8년간의 로널드 레이건 공화당 행정부를 끝낼 것이라는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었지. 하지만 도나 라이스라는 젊은 여성을 무릎에 앉힌 사진이 공개되면서 선거운동을 그만뒀어.



Q. 그런데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르윈스키 스캔들’로 난리가 났는데도 두번째 임기까지 성공적으로 마쳤잖아? 그건 왜 그렇지?



A. 클린턴은 백악관 집무실에서 인턴이었던 모니카 르윈스키와 성적 접촉을 한 혐의로 특검 수사까지 받았어. 하지만 부인 힐러리가 나서서 ‘공화당 공작’이라며 남편을 감싼 데다 대통령 본인이 워낙 명석하고 소통 능력이 뛰어나서 위기를 극복했지.



하지만 클린턴을 계기로 미국 정치 양극화가 심화됐어. 보수 진영은 클린턴 부부가 위선적인 자유주의자라고 혐오했고, 진보 및 자유주의 진영은 공화당의 극우화를 비난했지.



트럼프가 유죄를 받고도 지지율에 큰 타격을 안 입는 것은 그에 대한 도덕적 기대가 낮아서기도 하지만 미국 정치 양극화가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해. 진보 진영이 클린턴의 섹스 스캔들을 보수 진영의 공작이라고 보듯, 보수도 트럼프가 민주당 진영의 공격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지.



1990년대 이후 진보 진영을 중심으로 미국 사회엔 ‘정치적 올바름’(PC, Political Correctness) 문화가 확산해. 대중들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전반적으로 향상시키는 것보다는 인종·젠더·종교의 소수자들을 배려하고 개인의 도덕적 처신을 강조하는 흐름이었지. 하지만 보수 진영은 이를 위선이라고 생각해. 이 점을 잘 알고 있던 트럼프는 2016년 대선 때 정치적 올바름을 박살 내겠다고 공언해서 지지자들의 환호를 받았어. 트럼프 입지가 멀쩡한 것은 미국 사회의 도덕적 타락보다는 사회·정치적 양극화가 빚은 비극적 현상이라고 보는 게 타당할 것 같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권력에 타협하지 않는 언론, 한겨레 [후원하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기획] 누구나 한번은 1인가구가 된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