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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8 (금)

엔비디아, 시스코처럼 폭락 전철 밟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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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 파죽지세 ‘괴물’ 버블론 일다


매경이코노미

엔비디아 주가가 파죽지세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기존 H100 반도체가 탑재된 제품 ‘호퍼’ 반도체가 여전히 초과 수요 상태라고 밝혀 시장 우려를 불식시켰다. (AFP)


인공지능(AI) 반도체를 만드는 엔비디아 주가가 파죽지세다. 최근 시가총액은 2조8000억달러(약 3848조원)를 돌파했다. 이는 메타(1조2000억달러), 테슬라(5610억달러), 넷플릭스(2820억달러), AMD(2670억달러), 인텔(1280억달러), IBM(1534억달러) 등 기라성 같은 빅테크 시총을 합한 것보다 많다. 우리 증시 코스피와 코스닥을 모두 더한 시총(약 2600조원)보다 약 1200조원 많다. 코로나 팬데믹 본격화 전 2020년 초 엔비디아 시총은 약 1450억달러였다. 4년여 동안 엔비디아 주가는 18배가량 올랐다.

시장에서는 과거 1990년대 후반~2000년 초반 미국 IT 버블 당시 네트워크 장비 업체 시스코시스템즈(이하 시스코)와 견주는 이가 많아졌다. 시스코에 비춰봤을 때 엔비디아는 아직 ‘조족지혈’ 수준이다.

1995년 1월 2달러에 불과했던 시스코 주가는 2000년 3월 27일 최고치인 80달러까지 약 40배(4000%) 폭등했다. 닷컴 버블이 꺼진 뒤 2002년 10월에는 8달러까지 추락해 급등 전 수준으로 주저앉았다. 현상만 놓고 보면 작금의 AI 상승장이 닷컴 버블 때와 유사한 측면이 많다는 견해가 적지 않다. 그럼에도 당시 거시경제 환경, 실적, 잉여현금흐름(FCF) 등 측면에서 엔비디아 ‘버블론’에 동의하지 않는 시각도 다수다. 엔비디아 버블론을 둘러싼 갑론을박을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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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짝 실적에 액면분할까지

수요 공백 우려도 불식

최근 엔비디아 주가 강세 배경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실적이다. 지난 5월 22일 엔비디아는 실적 발표에서 시장 우려를 말끔히 불식시켰다. 지난 1분기(2~4월) 매출은 260억달러를 넘겼다. 시장 기대치는 246억달러였다. 실적 발표 뒤 엔비디아는 10 대 1 액면분할로 주주들을 열광시켰다. 액면분할은 기존 주식 액면가를 떨어뜨려 총 주식 수를 늘리는 것으로 기업가치는 그대로다. 다만, 액면분할 후 비싼 주식을 낮은 가격에 매수할 수 있어 거래 편의성이 개선돼 투자자 접근성이 좋아진다.

둘째, 수요 공백을 뜻하는 ‘에어포켓’ 우려를 불식시켰다. 시장에서는 엔비디아 슈퍼칩 ‘블랙웰(Blackwell)’ 출시를 앞두고 수요 이연에 따른 공백 현상을 우려했다. 엔비디아는 지난 3월 캘리포니아 새너제이 SAP센터에서 열린 개발자 콘퍼런스 ‘GTC 2024’에서 ‘블랙웰’이라 명명한 신형 칩셋을 공개했다. 여기에는 현재 가장 앞섰다는 엔비디아 GPU H200을 넘어서는 B200이 들어간다. 이 가속기는 현재 주력 모델 H100보다 AI 추론 성능이 30배 이상 향상됐다. 블랙웰이 출시되는 올 연말까지 AI 칩 주문이 이연되며 수요 공백을 빚을 것이라는 우려가 컸으나 이는 기우였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기존 H100 반도체가 탑재된 제품 ‘호퍼’ 반도체가 여전히 초과 수요 상태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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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버블 떠올리는 거시경제 환경

AI발 생산성 혁신 기대감 커

닷컴 버블 당시 시스코와 작금의 엔비디아는 거시경제 측면에서 겹치는 대목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금리 등 거시경제 환경이 그렇다. 통상 기술주 주가는 금리에 민감하다. 기술주는 먼 미래 현금흐름을 현재 시점으로 당겨와 기업가치를 추정하므로, 할인율 배수가 커 금리에 따른 기업가치 변동성이 크다.

IT 버블 직전에는 미국 연준의 금리 인하로 시장 유동성이 풍부했다. 도식화하면 1990년대 IT 버블 당시에는 ‘금리 인하-신경제 활황-과잉 설비투자-IT 버블 정점-금리 인상-IT 버블 붕괴’로 이어졌다. 1994년 2월 금리 인상에 나선 연준은 1995년 2월 금리 동결 뒤 7월 첫 금리 인하를 시작으로 그해 25bp(1bp=0.01%포인트)씩 세 차례 금리를 낮췄다. 앨런 그린스펀 당시 미 연준 의장은 인플레이션이 완화하는 가운데 경기 성장세가 둔화하자 선제적 대응을 위해 금리를 인하했다. 당시 금리 인하는 침체가 현실화했을 경우 이에 대응하기 위한 금리 인하(Recession Cut)가 아니라, 경기 연착륙 유도를 위한 선제적 금리 인하라는 점에서 ‘보험성 금리 인하(Insurance Cut)’에 가까웠다.

이는 최근 거시경제 환경과도 일정 부분 겹친다. 2023년 이후 최근까진 ‘고강도 금리 인상-생성형 AI발 생산성 혁신-금리 인하 기대감 고조’ 패턴을 보인다. 얼핏 1990년대 거시경제 환경과 달라 보이지만, 보험성 금리 인하 기대감이 상존하는 가운데 AI발 생산성 혁신이 가속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무르익은 점 등은 겹치는 대목이다.

올 들어 ‘소프트랜딩’ ‘노랜딩’ 가능성이 부각되는 가운데 ‘울퉁불퉁한 물가’로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이 다소 후퇴하기는 했다. 하지만 지표상 기술적 침체 징후조차 목격되지 않음에도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이 여전한 데다, AI 기술혁명으로 노동생산성 개선 초입에 들어섰단 진단이 제기되는 점 등이 유사하다는 평가다. 1990년대 중후반 미국 경제 역시 IT 신경제 기반 ‘인플레이션 없는 고성장’에 대한 장밋빛 전망이 넘쳐났다. 성장주 기업가치는 늘 논란거리지만 풍부한 유동성은 당시 IT 업종 프리미엄을 정당화하는 버팀목이 됐다. 이는 1999년부터 2000년 상반기까지 기록적인 상승세를 보인 ‘IT 버블’로 이어졌다. 폭등세를 보인 세계 증시는 과도한 설비투자와 공급 과잉으로 거품이 붕괴되자 폭락세로 돌변했다.

과격한 주가 되돌림은 없을 듯

FCF·높은 이익률 탁월

그러나 엔비디아가 당시 IT 버블을 주도했던 시스코 전철을 밟을지에 관해선 시각이 엇갈린다. 현재로서는 시스코처럼 과격한 주가 되돌림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의견이 다수다.

첫째, AI 칩 수요다. 버블 붕괴는 시장 기대치와 기업 실적 간 괴리가 커질 때 극단적으로 나타난다. 1990년대 후반 주요 IT 기업은 풍부한 유동성으로 공격적인 설비투자(CAPEX)를 단행했지만 ‘캐즘(대중화 전 수요 정체)’은 예상보다 길었다.

인터넷은 1990년대 중반 상용화됐지만 이를 뒷받침할 통신 인프라, IT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성장은 더뎠다. 이런 가운데 2000년 7월 미국 증시에서 나온 보고서 한 장으로 시장 ‘색깔’은 돌변했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당시 한 애널리스트가 “공급은 늘고 있고 수요는 선취매와 오버부킹이 문제라서 2~3개 분기 뒤 공급 과잉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를 담은 보고서를 냈다. 당시 이 경고가 이르다는 분석이 대세였지만 기대감만으로 치솟았던 시스코 등 주가는 1999년 말 연준 금리 인상과 함께 와르르 무너졌다.

AI 혁명 선봉장에 선 엔비디아는 결이 다르다. 현재까진 한껏 높아진 시장 기대치를 충족시키는 수준을 넘어 ‘어닝 서프라이즈’를 연출했다. 엔비디아 실적 발표 다음 날인 5월 23일 월가를 비롯한 글로벌 IB(투자은행) 최소 25곳이 매수 의견을 내거나 목표가를 올렸다. 엔비디아 투자 보고서를 낸 글로벌 IB 총 62곳이 제시한 목표가 범위는 주당 655~1400달러, 평균치는 약 1173달러다.

둘째, 매출총이익률과 잉여현금흐름 창출 능력이다.

올 1분기 엔비디아 매출총이익률(Gross margin ratio)은 78.4%다. ‘경이로운 이익률’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매출총이익률은 매출에서 어느 정도 이익을 남기는지 보여준다. 매출총이익을 매출액으로 나눠 구한다. 높은 이익률로 유명한 애플(약 46%)조차 엔비디아에 상대가 안 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올 1분기 각각 매출총이익률 36%, 38%의 2배를 웃돈다. 엔비디아 매출총이익률 증가세도 매섭다. 1분기 매출총이익률은 직전 분기보다 2.4%포인트 올랐다. 지난해 동기 대비로는 13.8%포인트 올랐다.

실질적인 기업가치를 가늠하는 지표인 잉여현금흐름도 월등하다. 기업 여윳돈을 뜻하는 잉여현금흐름은 영업현금흐름에서 설비투자 비용과 기업 인수 비용 지출 등을 차감해 구한다. 엔비디아 잉여현금흐름은 과거 5년간 50% 안팎 성장세를 보였다. 지난해 엔비디아 잉여현금흐름은 30조원을 웃돈다.

FCF 성장 속도 우려

AI 기기 ‘캐즘’·대체 칩 가능성도

그러나 중장기적으로 작금의 주가가 지속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는 시각도 팽팽하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통상 기업가치를 구할 땐 미래 일정 기간 잉여현금흐름을 추정한 뒤 이를 할인율(R)에서 성장률 G를 뺀 값으로 나눠 구한다. 쉽게 말해, 기업이 벌어들이는 현금 혹은 이익을 투자자 요구수익률에서 계속기업으로 성장을 위해 필수 불가결한 성장률 G를 뺀 값으로 할인한 게 곧 기업가치라는 의미다.

익명을 원한 반도체 업종 애널리스트는 “미국 기준금리 5.5%에 대략 5~6%를 더한 할인율로 영구 성장률을 3%로 가정하고 향후 10년 동안 엔비디아 잉여현금흐름 성장률을 추정하면 현 시총 수준에선 연간 약 30~40% 성장률이 요구된다”며 “최근 수년간 엔비디아 현금흐름 성장률과 AI 산업의 폭발적인 성장 가능성, 금리 인하 가능성 등을 고려하면 불가능한 수치는 아니지만 역사적으로 이 정도 수준에서 잉여현금흐름이 10년 이상 성장한 기업은 사실상 전무하다”고 짚었다.

스마트폰 시대가 IT 버블 6~7년 뒤 도래한 것처럼 AI 기반 IT 기기 역시 ‘캐즘’에 빠질 수 있다. 서버가 고사양 작업을 대신해줄 수 있어 고성능 기기 수요가 줄어 고성능·고용량 D램 수요가 감소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삼성증권은 “현재 5G 무선통신은 20년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수준의 스피드를 자랑하며 AI 발전과 하드웨어 혁신이 합쳐져 서버 성능도 크게 높아졌다”며 “과거에도 비슷한 주장이 대두됐던 적 있지만 이번에는 현실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GPU를 대체할 칩이 등장할 가능성이 높아진 점도 엔비디아 주가에는 위협 요인이다. 엔비디아가 뛰어난 매출총이익률이 가능한 것에는 GPU 칩 희소성이 깔려 있다는 게 다수 전문가 시각이다. 그러나 엔비디아 GPU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손익 구조 측면에서 물음표가 던져진 데다 AI 서비스 확장으로 대체 칩 수요도 늘고 있다. 여러 시장조사기관에서는 생성형 AI 분야 신경망처리장치 NPU가 점차 GPU를 대체할 것으로 내다본다. NPU는 AI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딥러닝 알고리즘 연산에 최적화된 반도체다. 범용성은 다소 부족하지만 딥러닝 연산에 특화해 GPU보다 빠른 연산 작업이 가능하고 전력 소모를 줄여 전성비도 개선할 수 있다는 게 강점이다.

한때 혁신의 대명사로 추앙받았던 테슬라 주가가 가파른 내리막길을 걸었던 것도 결국 후발 주자 진입이 잇따른 때와 맞물린다. 내연기관 전통 강자들이 속속 뛰어들자 경쟁 강도가 심화했고 종국에는 BYD를 필두로 한 중국 기업이 촉발한 가격 경쟁으로 테슬라 고유 ‘희소성’은 상당 부분 희석됐다. 운용업계 관계자는 “테슬라 시장점유율은 떨어졌고 마진도 감소하기 시작했지만 이후 자율주행 자동차, 사이버트럭 등 각종 호재에도 불구하고 주가는 반전의 계기를 찾지 못하고 있다”며 “새롭게 등장한 카테고리일수록 희소성이 사라지는 순간 매도할 좋은 핑곗거리가 된다”고 귀띔했다.

[배준희 기자 bae.junhee@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2호 (2024.06.05~2024.06.1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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