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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1 (금)

[데스크 시각] 고물가 나라, 치킨 서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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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투데이

“가격 인상이 장난도 아니고 이게 대체 뭔가요?”

국내 최대 치킨 프랜차이즈 브랜드 BBQ가 유례없이 두 번이나 가격 인상 ‘시점’을 연기하자, 소비자들은 “장난하냐”는 반응 일색이다.

BBQ 운영사인 제너시스BBQ(BBQ)는 애초 5월 23일부터 대표 메뉴인 '황금올리브치킨' 등 일부 메뉴의 판매가격을 6.3% 인상하겠다고 같은 달 21일 예고했다. 이번 가격 조정은 2022년 5월 이후 약 2년 만의 가격 인상으로, 전체 메뉴 110개 가운데 23개 메뉴가 대상이다. 당시 BBQ는 “원·부재료 가격 상승, 최저임금과 임차료 및 각종 부가적인 비용의 급격한 상승으로, 가맹점(BBQ 패밀리)이 벼랑 끝에 내몰렸다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조치”라고 설명했다.

그러다 가격 인상 발표 다음 날인 22일 BBQ는 가격 인상 시점이 촉박하다는 소비자 반응 등을 이유로, 가격 인상 시점을 8일 유예하겠다고 5월 31일 인상을 공표했다. 그런데 정작 31일이 되자, 당일부터 적용 예정이던 가격 조정 정책의 시행 시점을 또다시 6월 4일로 유예한다고 했다. BBQ는 이번엔 “가격 인상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부연하며 “가맹점주의 감내와 결단에 감사드린다”고 했다.

통상 업체 측이 부득이하게 가격 인상 시점을 연기하더라도, 최소 1분기(3개월) 또는 6개월의 유예를 두고 미루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이번 경우는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째 연기한 것도 이례적인데, 처음엔 연기 시점을 8일 늦췄다가 두 번째는 4일 추가로 찔끔찔끔 미뤘으니, 그 이유가 대체 무엇인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BBQ가 이처럼 이해 못 할 ‘촌극’을 벌인 이유는 금세 드러났다. 고물가를 잡으려는 정부의 압박 때문이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니, 농림축산식품부가 결정타를 때렸다. 농식품부는 BBQ 측에 소비자 입장을 고려해 가격 인상 시점을 연기해달라고 요청했고 소비자단체도 가격 인상에 반대한다는 여론까지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세에 몰린 BBQ는 결국 유례없이 두 번의 가격 인상 '시점 연기'를 하고 만 것이다.

정부의 압박으로 인해 롯데웰푸드도 가격 인상 시점을 한 달 연기하는 일이 있었다. 애초 롯데웰푸드는 초콜릿 원료인 코코아 값의 세계적인 가격 폭등으로 인해 가나초콜릿 등 17종의 제품 가격을 5월 1일부터 올린다고 했었다. 하지만 이 회사 역시 정부의 눈치를 보다가 한 달 인상 시점을 미뤘다.

이와 같은 일련의 가격 인상 유예 상황은 윤석열 정부 들어 11년 만에 부활한 ‘공무원 전담 관리제’에 기인한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열고 “각 부처 차관이 소관 품목 물가 안정은 스스로 책임진다는 각오로 철저히 살피겠다”고 공언했다. 이에 따라 각 부처 차관이 ‘물가안정책임관’ 역할을 맡고, 서민 물가와 직결되는 가공식품의 담당 공무원을 지정하는 전담 관리제를 도입했다. 이를 두고 2012년 1월 이명박 정부가 전담 공무원을 지정한 ‘물가관리 책임 실명제’와 닮은꼴이란 지적이 바로 나왔다. 이른바 ‘빵 과장’ ‘라면 사무관’ ‘치킨 서기관’이 부활한 셈이다.

정부로선 안 오른 게 없이 다 오른 고물가를 잡기 위해 어떻게든 성과를 내고 싶었을 것이다. 오죽하면 가격 인상 시점을 며칠이라도 미루자며, 업체 측에 ‘요청인 듯 요청 아닌 압박’을 한 치킨 서기관의 고충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소비자 대부분의 반응은 “쌍팔년도식 보여주기 행정”이란 돌팔매뿐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근본적인 가격 인상 요인이 되는 원재료 수급 문제 등을 해소하거나, 코로나19 때처럼 소상공인 지원책을 마련하는 것이 실질적인 물가관리 해법이라고 입을 모은다. 마냥 ‘두더지 잡기’식으로 가격 인상 업체만 때려 누른다고 해서, 결국엔 오르고 말 가격이 안 오를 리 없다. 며칠이나마 인상 시점을 미룬다고 해서 고마워할 소비자도 더는 없다.

똑똑한 대한민국 소비자들은 이미 충분히 학습한 경험이 있다. 앞서 이명박 정부는 임기 내내 52개 집중관리 생필품 리스트를 만들어, 소위 ‘MB물가’로 묶어 관리했었다. 물가관리 책임 실명제 도입 이후 물가 상승이 조금 주춤해지긴 했다. 하지만 전담공무원을 둔 실제적 효과란 분석보다는 당시 국내 실물경기가 예상보다 빠르게 침체했기 때문이란 해석이 더 설득력이 있다. 고물가 나라에 근무하는 치킨 서기관은 오늘도 치킨 프랜차이즈업체에 “가격 인상 더는 안 됩니다”라는 공허한 엄포를 놓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에게 약 1년여 전, 윤석열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한 말을 되돌려 주고 싶다. “자유시장 원리는 글로벌 스탠더드로서, 이를 무시하면 우리 경제의 미래는 없습니다.”

[이투데이/석유선 기자 (heystone@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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