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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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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군 무용론으로 번지는 ‘얼차려 사망’...사건 본질은[마감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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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기훈련 내부 규정 유명무실화

상급자 감정 따라 얼차려가 문제

여경무용론과 유사하게 젠더갈등 가중

혐의 아닌 성별 매몰...사건 본질 흐려

편집자주편집자주 - ‘마감후’는 지면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뒷이야기를 온라인을 통해 밀도 있게 전달합니다. 모두가 기억하는 결과인 속보, 스트레이트, 단신 기사에서 벗어나, 그간의 스토리, 쟁점과 토론 지점, 찬반양론 등을 다양한 시각물과 함께 보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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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훈련병이 군기훈련(얼차려)를 받다가 사망한 사건이 젠더갈등으로 첨예하게 비화되고 있다. 사건의 본질은 군 규정을 위반한 상급자의 갑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갑질 상급자가 ‘여성’이었다는 사실이 부각되면서 급기야 여군무용론으로까지 번지고 있는 것이다.

“여군은 병사 지휘를 못 하게 해야 한다” “여군이 완전군장은 해봤겠나” “여자가 중대장인 게 문제”라는 식의 주장이 남성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확전되고 있다. 정치권도 합세했다. 이기인 개혁신당 최고위원은 피의자의 실명을 공개했고, 전여옥 전 의원은 ‘극단적 페미니스트로 인해 벌어진 일’이라고 주장했다. 린치(사적 제재)와 여론재판 식의 신상털기도 확산되는 모양새다.

혐의 아닌 성별 매몰...'군기 문화' 해결에 도움되나

전문가들은 피의자인 여군 중대장의 혐의를 철저히 수사해 일벌백계해야한다는 데 공감하면서도, ‘혐의’가 아닌 ‘성별’에 집중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한다. 고성균 전 육군훈련소장이 지난달 31일 “성별과는 관계없이 ‘규정위반’과 ‘안일한 태도 탓’에 빚어진 일”이라고 언급했듯, ‘가혹행위에 가까운 군기훈련(얼차려)’이 자행되는 군 내부 문화가 사안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윤김지영 창원대 철학과 교수는 본지와 통화에서 “군대 체제의 수직성과 억압성으로 인해 발생한 군 규정 위반사건으로 봐야 하는데, 중대장의 성별이 ‘여성’이었다는 이유로 마치 예외적이거나 특수한 사건으로 오도되는 것은 문제”라고 했다. 윤 교수는 특히 “남초집단에 여성 리더십 전체를 공격하는 프레임으로 봐서는, 오히려 그 동안 군 지휘체계 맥락 안에서 묵과돼온 폭력의 문제를 지워버릴 수 있다”고 봤다.

훈련병 사망 사건이 젠더 관점에서만 조명될 경우 사건의 핵심 원인인 ‘유명무실한 군기훈련 규정’ 문제가 가려지고, 때아닌 ‘여군 무용론 및 여군 폐지론’으로 사건의 중심이 옮겨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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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기훈련 내부 규정 유명무실화...상급자 감정 따라 얼차려가 문제

실제 군인복무기본법 등 군 내부 규정은 “1일 군기훈련은 2시간 이내로 실시하되, 1시간 초과 시 중간 휴식시간을 부여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육군 규정 120 병영생활규정에도 명령권자와 조건, 절차, 방법 등이 자세히 명시돼 있다. 해당 중대장은 이같은 군 규정을 무시하고 사망훈련병을 대상으로 업무상 과실치사를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은 “이미 군 규정에 얼차려에 대해서 세부적으로 규정이 돼 있다. (상급자의) 감정과 기분에 따라 얼차려가 집행이 되는 군 내부 환경으로 인해 생긴 문제”라고 했다. 김 국장은 특히 “(이번 일을 계기로) 신체에 고통을 주는 방식의 군기훈련이 과연 유지가 되어야 하나. 부대 내에 봉사활동이나 작업에 차출되는 방식으로 패널티를 주는 방안도 있어, 이같은 얼차려 방식에 대한 제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여경무용론과 유사한 여혐논란으로 비화...젠더갈등만 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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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관련없는 자료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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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서는 이번 이슈가 ‘여경 무용론’과 유사하다고 언급한다. 실제 지난 2019년 이른바 ‘대림동 사건’ 뒤 편집된 동영상 등을 근거로 한 ‘여경무용론’은 남초 커뮤니티의 단골 ‘여성혐오’ 소재가 되어왔다. ‘대림동 사건’은 서울 구로구의 한 식당에서 여성 경찰관이 주취자를 제압하지 못해 시민이 수갑을 채웠다는 낭설이 짧은 동영상을 근거로 남초 커뮤니티 등에 퍼졌다. 여경의 현장 대응에도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지만, 이후에도 ‘여경이 물리적 힘이 약해 현장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식의 소문이 떠돌았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여경무용론도 경찰의 초동대응 시스템 관점에서 봐야 할 사안이었는데 잠복돼 있던 젠더갈등과 맞물려 여혐논란으로 번졌다”면서 “이번 이슈도 ‘여성이 상급자고 피교육생은 남성’이라는 사실 자체가 젠더갈등 이슈를 증폭시킨 요인이 있었던 것인인데, 이같은 젠더갈등에 편승하는 것은 사건의 본질을 막고 대응책을 논의하기보다 왜곡된 젠더혐오를 가중시키는 방향으로 갈 우려 있다”고 밝혔다.

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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