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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제동원 연구자인 일본인 다케우치 야스토 씨(가운데)가 7일 광주시의회에서 ‘강제동원 조선인 남양 밀리환초 칠본섬에서의 저항과 학살’을 주제로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과 함께 기자회견하고 있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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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태평양 밀리 환초(環礁·산호초 섬이 띠 모양으로 연결된 곳)로 끌려가 총기 학살과 굶주림 등으로 숨진 조선인이 20세 청년을 포함해 총 218명이라는 일본 학자의 연구 결과가 나왔다.
7일 일제강제동원 연구자 다케우치 야스토(竹内康人·67) 씨는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주최로 광주시의회에서 열린 ‘강제동원 조선인 밀리 환초 칠본섬에서의 저항과 학살’ 기자회견에서 이런 내용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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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3월 18일 태평양 마셜제도 동남쪽 끝자락 밀리환초(環礁)에서 미해군에 의해 구조된 조선인 근로자들 모습.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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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3월 18일 태평양 마셜제도 동남쪽 끝자락 밀리환초(環礁)에서 미해군에 의해 구조된 조선인 근로자들 모습.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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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부터 밀리 환초 학살 사건을 연구해온 다케우치 씨는 “1973년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에 제공한 피징용 사망자 연명부를 일일이 수작업으로 분류한 결과 1942년부터 1945년까지 밀리 환초에서 숨진 조선인이 총 218명이라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사망자의 창씨개명 이름과 출신지, 출생연도 등을 공개하면서 최연소자는 20세, 최고령자는 53세였다고 밝혔다.
밀리 환초는 일제가 1942년 3월 비행장 건설 등을 위해 조선인 800~1000명을 데려가 강제노역시켰던 곳이다. 일본군은 보급이 끊기자 조선인을 살해해 인육을 먹었고, ‘고래고기’라고 속여 배급했다. 이를 눈치 챈 조선인들이 저항하자 기관총을 난사해 55명을 학살했다. 밀리 환초 사망자는 당시 미국 해군이 조선인을 구조하면서 촬영한 사진 등을 토대로 ‘최소 125명’ 등으로 추정됐으나 그간 정확한 숫자는 알려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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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제동원 연구자인 일본인 다케우치 야스토 씨(가운데)가 7일 광주시의회에서 ‘강제동원 조선인 남양 밀리환초 칠본섬에서의 저항과 학살’을 주제로 기자회견하고 있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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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교사 출신인 다케우치 씨는 1990년 11월 3일자 동아일보 기사를 통해 밀리 환초 사건을 알게 된 뒤 30년 넘게 이를 연구해왔다. 그는 “내년 밀리 환초 사건 80주년을 앞두고 피해를 명확하게 밝히는 진상 규명을 해야 역사가 반복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라며 “희생자의 유해봉환과 일본의 사과·배상 요구, 추모 등에 유족이 참여할 수 있도록 명단 공개를 결정했다”고 했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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