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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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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중앙선침범 사망 사고 채무라도 중과실 없었으면 파산으로 면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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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무자회생법상 비면책채권 요건 '중대한 과실' 해석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중앙선 침범'은

운전자 경과실로 인한 경우도 있어

운전 중 중앙선을 침범해 사망 사고를 일으켜서 생긴 채무라도 중앙선 침범에 운전자의 중과실이 없었다면 파산 절차에 따른 면책결정으로 책임을 면하게 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채무자회생법)은 채무자가 중대한 과실로 타인의 생명 또는 신체를 침해해 생긴 손해배상청구권을 법원의 면책 허가 결정에도 면책되지 않는 비면책채권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의 해석상 중앙선 침범 사고 중에는 경과실로 인한 경우도 있기 때문에 중앙선 침범 사고로 생긴 채권 중에도 파산 결정으로 면책되는 채권이 있다는 취지의 판결이다.

아시아경제

서울 서초동 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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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재단법인 자동차손해배상진흥원이 이모씨를 상대로 '4500여만원과 사고 피해자 및 유족들에게 보험금이 지급된 1999년 2월부터의 이자를 지급하라'며 낸 양수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남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채권이 중대한 과실로 타인의 생명 또는 신체를 침해한 불법행위로 인해 발생한 손해배상청구권에 해당해 면책의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본 원심 판단에는 채무자회생법 제566조 4호에서 규정하는 비면책채권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파기환송의 이유를 밝혔다.

이씨는 1997년 1월 2일 오전 10시경 서울 종로구 청계고가도로의 편도 3차선 중 1차로를 진행하다가 중앙선을 침범해 맞은편에서 진행하는 차량을 충격하는 사고를 냈다. 이 사고로 피해 차량에 탑승했던 피해자 3명 중 1명이 사망했고, 2명은 중상을 입었다.

1999년 2월 자동차손해배상 보장사업에 따른 보상금으로 피해자들에게 4514만원을 지급한 동부화재해상보험은 피해자들이 이씨에게 갖는 손해배상청구권을 대위행사하는 소를 냈다. 이씨는 2002년 6월 법원에 동부화재의 채권에 대한 주장을 승인하는 청구 인낙 진술을 했다. 이후 동부화재는 소멸시효 중단 및 연장을 위해 다시 소를 제기했고 2012년 9월 동부화재의 청구를 인용하는 판결이 선고돼 확정됐다.

그런데 이씨가 법원에 파산 및 면책 신청을 해 2015년 6월 면책결정이 확정됐는데, 이씨가 제출한 채권자목록에는 동부화재의 채권도 포함돼 있었다. 자동차손해배상진흥원은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에 따라 2020년 2월 동부화재로부터 이씨에 대한 채권을 양수한 뒤 2022년 6월 이씨를 상대로 양수금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제45조(권한의 위탁 등) 1항 4호는 정부가 책임보험금의 한도에서 피해를 보상한 뒤 사고 운전자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대위행사하는 업무를 자동차손해배상진흥원에 위탁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재판에서는 자동차손해배상진흥원이 양수한 양수금 채권(이씨에 대한 동부화재의 채권)이 이씨의 파산에 따른 면책결정으로 면책됐다고 봐야할 지가 쟁점이 됐다. 이씨는 파산에 따라 면책됐기 때문에 채권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 반면, 자동차손해배상진흥원은 해당 채권은 이씨의 중과실로 타인의 생명과 신체를 침해한 불법행위로 인해 발생한 채권이기 때문에 면책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채무자회생법 제566조(면책의 효력) 4호는 '채무자가 중대한 과실로 타인의 생명 또는 신체를 침해한 불법행위로 인하여 발생한 손해배상청구권'을 파산에 따른 면책 결정에도 책임이 면제되지 않는 청구권으로 정하고 있다.

1심 법원은 자동차손해배상진흥원의 손을 들어줬다. 1심 법원은 동부화재가 피해자들에게 지급한 보상금 4514만원과 동부화재의 승소 판결이 확정된 이후의 이자를 이씨가 자동차손해배상진흥원에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피고의 채무는 피고가 제한속도를 위반해 차량을 운행하다가 중앙선을 넘어 운전한 과실로 마주 오던 피해 차량을 충돌해 피해자 1명은 사망하고, 2명은 크게 다친 사건으로 발생한 채무임을 알 수 있다"라며 "사건의 경위, 과정, 피해 정도 등을 살펴보면 피고의 채무는 피고의 중대한 과실로 타인의 생명과 신체를 침해한 불법행위로 인해 발생한 손해배상 채무이므로 면책의 효력이 미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이씨는 항소했지만 2심 법원의 판단도 같았다.

재판부는 먼저 '채무자회생법상 면책채권에 해당한다'는 이씨의 본안전 항변과 관련 '중대한 과실'에 대한 대법원 판례를 원용했다.

앞서 대법원은 채무자회생법 제566조 4호에서 규정한 '중대한 과실'에 대해 "채무자가 어떠한 행위를 함에 있어서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다면 생명 또는 신체 침해의 결과가 발생하리라는 것을 쉽게 예견할 수 있음에도 그러한 행위를 만연히 계속하거나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어떠한 행위를 했더라면 생명 또는 신체 침해의 결과를 쉽게 회피할 수 있음에도 그러한 행위를 하지 않는 등 일반인에게 요구되는 주의의무에 현저히 위반하는 것을 말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사고는 청계고가도로의 가변차로에서 상당한 속도로 피고 차량을 운전하다가 1차로로 진입하는 다른 차량을 발견하고 핸들을 과대 조작해 중앙선을 침범한 피고의 과실로 발생한 점 ▲이 사건 사고로 인해 피해자 1명은 사망하고, 피해자 2명은 각 중상을 입은 점 ▲이 사건 사고의 경위, 이 사건 사고 지점, 피고 차량과 피해 차량의 충돌 부위 등을 종합해 보면, 원고가 양수한 이 사건 채권은 피고의 중대한 과실로 타인의 생명과 신체를 침해한 불법행위로 인해 발생한 손해배상채권에 해당한다고 봄이 타당한 점 등을 근거로 들며 "이 사건 면책결정의 확정에도 불구하고 그에 관한 피고의 책임이 면제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자동차손해배상진흥원의 청구를 인용할지에 대한 본안 판단과 관련 비록 동부화재가 이씨를 상대로 낸 채권자대위 소송에서 동부화재가 승소한 판결이 확정된 이후 자동차손해배상진흥원이 채권을 양수했지만, 채권의 시효중단을 위해 이 사건 소를 제기한 만큼 이씨가 4514만원과 이자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관련법의 해석상 중앙선 침범 사고라고 해서 무조건 운전자의 중과실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개별 사안마다 중과실에 의한 사고인지, 경과실에 의한 사고인지 살펴봐야 한다고 봤다.

먼저 재판부는 "채무자에게 채무자회생법 제566조 4호에서 규정한 '중대한 과실'이 있는지 여부는 주의의무 위반으로 타인의 생명 또는 신체를 침해한 사고가 발생한 경위, 주의의무 위반의 원인 및 내용 등과 같이 주의의무 위반 당시의 구체적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전제했다.

또 재판부는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제3조 2항 단서는 중과실이 아닌 경과실로 중앙선을 침범하는 경우도 있음을 예정하고 있으므로, 채무자가 위 조항 단서 2호에서 정한 중앙선 침범 사고를 일으켰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채무자회생법 제566조 4호에서 규정하는 중대한 과실이 존재한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제3조(처벌의 특례) 1항은 '차의 운전자가 교통사고로 인하여 형법 제268조의 죄를 범한 경우에는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정하고 있다.

형법 제268조(업무상과실·중과실 치사상)는 '업무상과실 또는 중대한 과실로 사람을 사망이나 상해에 이르게 한 자는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규정이다.

그리고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제3조 2항 본문은 '차의 교통으로 제1항의 죄 중 업무상과실치상죄 또는 중과실치상죄와 도로교통법 제151조의 죄를 범한 운전자에 대하여는 피해자의 명시적인 의사에 반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고 정했다.

도로교통법 제151조(벌칙)는 '차 또는 노면전차의 운전자가 업무상 필요한 주의를 게을리하거나 중대한 과실로 다른 사람의 건조물이나 그 밖의 재물을 손괴한 경우에는 2년 이하의 금고나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규정이다.

즉 운전자가 업무상과실이나 중과실로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건조물, 기타 재물을 손괴해도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기소할 수 없도록 정한 규정이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제3조 2항이다. 교통사고로 인해 전과자가 양산되는 폐해를 막기 위한 규정이다.

그리고 제3조 2항 단서는 그에 대한 예외로 업무상과실치상죄 또는 중과실치상죄를 범한 뒤 피해자를 구호하는 조치를 하지 않고 도주하거나, 피해자를 다른 장소로 옮겨 유기한 뒤 도주하거나, 음주측정 요구에 따르지 않은 경우와 함께 중앙선을 침범해 사고를 일으킨 경우(제3조 2항 단서 2호)를 피해자가 반대해도 기소할 수 있는 예외적인 경우로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이 같은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의 구조를 살펴볼 때,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제3조 2항 단서 2호의 '중앙선 침범 사고' 규정은 중과실이 아닌 경과실로 중앙선을 침범하는 경우도 있음을 예정하고 있는 규정이라고 해석했다.

즉 모든 중앙선 침범 사고가 운전자의 중과실이 있는 사고라면 굳이 따로 중앙선을 침범해 사고를 낸 경우를 예외 조항에 넣을 필요가 없었겠지만, 중앙선 침범 사고라고 해도 중과실치상죄가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이처럼 예외 조항을 따로 둔 것이라는 해석이다.

그리고 재판부는 이번 사건의 운전자 이씨에게 사고 당시 중대한 과실이 있었다고 봐야 할지를 살폈다.

재판부는 "피고는 고가도로 1차로를 주행하던 중 차로에 다른 차량이 진입하는 것을 발견하고 충돌을 피하려다가 중앙선을 침범했다"라며 "이와 같이 피고는 다른 사고의 발생을 피하려는 과정에서 중앙선을 침범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또 재판부는 "피고는 이 사건 사고 당시 제한속도를 현저히 초과해 주행하지 않았고, 그밖에 다른 주의의무를 위반했다고 볼 만한 사정을 찾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마지막으로 재판부는 "피해자들 중 1명이 사망했고, 2명이 중상을 입었다는 사정은 '타인의 생명 또는 신체 침해의 중한 정도'에 관한 것으로서 채무자에게 중대한 과실이 있는지를 판단하는 직접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고 밝혔다.

즉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12대 중과실'에 해당하는 '중앙선 침범'의 경우라도 운전자의 경과실로 인한 중앙선 침범의 경우가 있기 때문에, 채무자회생법 제566조 4호가 규정한 비면책채권의 요건인 '중대한 과실'에 해당하는지는 개별 사안마다 따져 살펴봐야 하고, 이번 사건의 경우 중과실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이씨의 파산에 따른 면책결정으로 채무가 소멸했다고 봐야 한다는 게 대법원의 결론이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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