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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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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향민의 도시 속초…아바이마을서 한국판 디아스포라 축제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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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6일 2024 실향민문화축제…고향떠난 74년 애환·추억 한자리

이병선 시장 "9년째 지역·세대 한계 넘어 대중과 소통 화합 노력"

(속초=연합뉴스) 이상학 기자 = 강원 속초시의 실향민문화축제를 앞두고 70년 넘게 이어진 실향민의 삶과 애환에 관심이 쏠린다.

연합뉴스

속초 아바이마을 전경
[속초시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속초시가 올해 9회째 여는 실향민문화축제는 한국전쟁 때 남쪽으로 피난을 내려왔다가 고향으로 가지 못한 실향민을 위한 행사다.

'실향민의 도시'라는 정체성을 알리고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문화를 계승하기 위해 2016년부터 열리고 있다.

속초뿐 아니라 전국 각지에 정착한 실향민이 모이는 한국판 '디아스포라 축제'다.

디아스포라(diaspora)는 팔레스타인을 떠나 세계 곳곳에서 흩어져 살아야 했던 유대인을 지칭했지만 이후 의미가 확장돼 고국 또는 고향을 떠나 다른 지역에서 살아가는 집단을 가리키는 말이다.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살아온 실향민의 삶은 기구하고 애절하다.

이들은 6·25 한국전쟁 7개월 후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세가 역전된 1951년 '1·4후퇴' 당시 남쪽으로 내려온 피난민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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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아바이마을 일대 모습
[속초시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부산까지 피난 갔던 실향민은 종전으로 북으로 가는 길이 막히자 상당수가 정착했고, 일부 피난민은 고향에 한발이라도 더 가까이 가겠다며 38선 이북 수복지구인 속초에 집단으로 정착했다.

실향민들이 임시로 터를 잡은 곳은 현재 '아바이마을'로 더 잘 알려진 속초 청호동 일대다.

청호동은 실향민이 정착 당시만 해도 호수(청초호)와 바다가 만나는 곳에 형성된 휑한 사구(沙丘)였다.

나라 땅인 데다 사람이 살지 않아 피난민들의 움막촌이 하나둘 자연스레 들어섰다.

피난민 중 상당수는 어선을 이용해 북한을 탈출, 고기잡이로 생계를 잇고 고향으로 돌아갈 때도 배를 대기 쉬운 이곳에 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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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명태 손질하는 모습
[속초시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속초시 중심으로 바다와 잇닿은 청초호는 1930년대 일제가 인근 철광석을 일본으로 수탈하기 위해 개발했던 항구다.

이곳에는 함경도 바닷가 마을 사람들이 많이 자리를 잡았다.

북으로 갈 날을 그리며 고향 사람들끼리 주로 모인 탓에 고향 마을의 이름을 딴 신포마을, 영흥마을, 단천마을, 이원마을 등으로 집단촌이 형성됐다.

남한에 '작은 함경도'가 생긴 것이다.

1918년 일제강점기 지도에는 이곳이 '반부평'(半扶坪)으로 나온다.

땅의 반이 호수에 떠 있는 것 같다고 하여 '반부들'이라고 했다는 설이다.

청호동이란 명칭은 조선시대 속초지역의 경치를 대표하는 '소야 팔경'(所野八景) 중 청초호의 물이 맑아 '청호마경'(靑湖磨鏡)이라 한 것에서 따온 것으로 전해진다.

1954년 속초읍에서 발간한 '속초읍세일람'에 따르면 당시 속초읍의 인구는 총 2만510명이었고, 이중 원주민이 9천345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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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갯배
[속초시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당시 '철수민'이라고 불렸던 실향민의 인구는 1만1천여명으로 속초 인구의 절반 이상(54%)을 차지했다.

그만큼 속초에서의 역할과 비중이 커졌다.

실향민들의 고향인 함경도 동해안은 우리나라 최대 어장으로 특히 명태잡이와 가공산업이 발달한 곳이다.

몸만 내려온 실향민들은 억척으로 고기를 잡고 명태, 오징어를 손질해 살림을 꾸렸다.

이들의 속초 정착은 지역 자본과 실향민의 선박, 조업 기술 등이 어우러져 속초를 수산업 도시로 키웠다.

실제 1959년 속초의 어획고는 부산에 이어 전국 2위를 차지할 정도로 호황을 누리기도 했다.

전쟁 전 양양군에 속했던 속초읍은 실향민들의 '임시 정착'으로 지역사가 커지면서 1963년 속초시로 승격한다.

실향 70여년, 1세대는 거의 세상을 떠나 현재는 10여명 안팎에 불과하다.

이제 2, 3, 4세대들이 아버지, 할아버지의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실향민들의 문화를 이으며 살고 있다.

대표 실향민촌인 아바이마을 사람들은 고향에서 즐겨 먹던 아바이 순대와 명태순대, 식해(젓갈) 등 고향 음식들을 만들어 먹으면서 그리움을 잠시나마 달랬다.

이는 속초의 대표 먹거리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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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 관광상품인 갯배 체험 모습
[속초시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함경도 정월 대보름 민속행사인 북청사자놀이는 2, 3세대들에 의해 속초사자놀이(강원도무형문화재)로 전승되고 있다.

속초시는 14일부터 3일간 이북의 고향을 떠나 피난 온 실향민의 애환을 위로하고 그들의 문화를 계승하기 위한 실향민문화축제를 연다.

올해 9회째를 맞아 '고향의 노래, 속초의 음식, 속초의 바람'이 주제이다.

축제 기간 전국 실향민노래자랑, 전국 이북·속초 사투리 경연대회, 실향민문화 체험투어 등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이 축제는 2016년 '전국이북실향민문화축제'로 개최된 이후 '실향민문화'를 주제로 한 전국 유일한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이병선 속초시장은 13일 "실향민문화축제는 분단의 비극으로 고향을 떠나 낯선 땅에서 뿌리를 내리고 꿋꿋하게 살아가신 실향민들의 숭고한 희생과 끈기를 되돌아보고, 나눔과 화합의 가치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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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향민 문화축제 포스터
[속초시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그는 이어 "전국 유일한 실향민 문화축제를 통해 삶과 애환을 그리는 동시에 세대와 지역적 한계를 뛰어넘어 실향민 3, 4세대뿐 아니라 일반 대중과 공감하는 소통의 한마당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ha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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