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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4 (월)

[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오빠들 공 뺏는 재미 아세요? 이젠 축구 없인 못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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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송파구70대축구단의 ‘홍일점’ 정애자 씨(왼쪽)가 서울 송파여성축구장에서 열린 친선경기에서 상대 공격수를 막고 있다. 2012년 축구를 시작한 그는 매일 새벽 개인 훈련을 하고 주중 2회 경기를 하며 건강한 노년을 만들어 가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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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애자 씨(70)는 2012년 서울 송파구 풍납초등학교 운동장을 달리다가 축구장 밖으로 나온 공을 안으로 차주면서 축구를 접했다. 지금은 송파구70대축구단의 유일한 ‘홍일점’으로 녹색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다.

“제가 풍납동에 오래 살아서 아는 오빠들이 많았죠. 학창 시절부터 활동적이라 마라톤대회도 나가고 운동 많이 했어요. 새벽 운동을 할 때 동네 오빠들이 공을 차 달라고 하기에 자주 차줬는데, 어느 날 ‘그냥 우리랑 함께 공 차자’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에 첫날 오빠들과 패스를 주고받았는데 너무 재밌는 겁니다. 그때부터 축구에 빠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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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종구 스포츠부 차장


매일 아침 풍납동조기축구회에 나갔다. 6개월도 안 돼 날아오는 공을 잡고 착지하다 넘어져 왼쪽 팔목이 골절됐다. 그래도 깁스하고 축구를 했다. 그는 “공을 발로 가지고 놀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그 공을 내가 컨트롤하고 다시 패스하는 게 너무 재밌었다. 오빠들이 기분 나쁠지 모르지만 수비하면서 볼을 뺏을 땐 그렇게 통쾌할 수가 없다”고 했다. 정 씨의 위치는 수비수. 좌우 사이드백을 다 볼 수 있다. 최근엔 주로 왼쪽 수비를 보고 있다.

“동네 오빠들이 송파구70대축구단이 있으니 가서 차라는 겁니다. 솔직히 솔깃했지만 망설였어요. 동네 오빠들은 안면이 있었지만 다 모르는 분들이라…. 너무 낯설었어요. 진짜 창피함을 무릅쓰고 용기 내서 왔어요. 물론 오빠 몇 분도 함께 와서 그나마 다행이었죠. 지금은 다들 친동생처럼 대해 줍니다.”

5년여 전쯤부터 송파구70대축구단에서 공을 차고 있다. 나이는 올해 70대가 됐지만 오빠들이 이해해줘 일찍부터 함께 차고 있다. 생활축구는 연령대를 기반으로 운영되고 있다. 80세가 넘으면 80대축구단으로 자연스럽게 올라간다. 정 씨는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악착같이 차고 있다고 했다. 송파구70대축구단은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낮 12시부터 오후 2시까지 팀을 초청하거나, 원정 가서 경기를 한다. 정 씨는 매일 새벽 개인 훈련을 하고, 축구단 경기도 소화하고 있다.

“아무래도 제가 축구를 늦게 시작했고, 여자다 보니 기술적으로나 체력적으로 밀리죠. 그래서 노력을 더 많이 하고 있어요. 새벽엔 주로 드리블, 트래핑 등 기술 향상을 위해 노력해요. 가장 어려운 게 볼 리프팅이에요. 양발로 공을 떨어뜨리지 않고 해야 하는데 아직 잘 안 돼요. 리프팅을 잘해야 볼을 자유자재로 갖고 놀 수 있는데….”

웨이트트레이닝도 열심히 하고 있다. 매일 오후엔 헬스클럽에 간다. 집에서도 틈만 나면 근육 운동으로 힘을 키우고 있다. 팔굽혀펴기 100개를 하고 잠자리에 든다. 이러다 보니 체력에선 오빠들에게 밀리지 않는다. 25분씩 4경기 넘게 소화할 수 있다. 축구선수 출신 정환종 송파70대축구단 감독(73)은 “솔직히 웬만한 남자 선수보다 낫다. 열심히 뛴다. 기술은 아직 달리지만 체력은 전혀 밀리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정 감독은 “각종 생활체육 축구대회에 출전시키고 싶은데 여자라는 이유로 선수 등록이 되지 않는다”며 아쉬워했다.

여성 축구팀엔 왜 가지 않을까. 정 씨는 “아들하고 여기저기 알아봤는데 제가 나이가 많다고 안 받아준다”고 했다. 최근 여성 축구단이 많이 생기고 있지만 젊은 여성들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했다. 정 씨는 “여성 축구단에 가입도 못 하고, 남자 대회에도 출전할 수 없지만 남자 선수들과 어깨를 겨루며 뛰고 있어 크게 신경 쓰진 않는다”고 했다.

정 씨의 하루는 운동과 봉사활동이 대부분이다. 1995년 서울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무작정 달려가 자원봉사를 했고, 이후 대한적십자사에서 다양한 봉사활동을 했다. 지금은 적십자 희망풍차 프로그램에 참여해 열악하게 살고 있는 세대에게 빵과 생활필수품 등을 전달하고 있다. 집안 반대는 없을까. 그는 “아이들을 다 키운 뒤 15년 전쯤 남편에게 ‘이젠 내 인생 살 테니 자유를 달라’고 했다. 남편도 제가 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도와준다. 아들딸도 ‘축구선수 엄마’를 응원한다”고 했다.

“축구를 하면서 제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삶에 활력이 넘치게 됐죠. 몸이 건강해져 피곤함을 못 느껴요. 축구를 하면 잠도 잘 와요. 특별한 사정으로 축구를 못 하게 되면 온몸이 아파요. 이젠 정말 축구 없인 못 살아요.”

양종구 스포츠부 차장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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