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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4 (월)

[오늘과 내일/장택동]직권남용죄 ‘합헌’ 결정… 그래도 남발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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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장택동 논설위원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등으로 구속 기소하고…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을 직권남용죄 등으로 구속 기소하며 ….” 2017년 3월 6일 ‘국정농단’ 특검의 수사 결과 발표에서는 ‘직권남용’이라는 용어가 여러 차례 반복됐다. 이후 검찰이 박근혜 전 대통령,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 등을 기소할 때도 직권남용 혐의가 포함됐다. 이어진 ‘사법농단’ 수사에서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비롯해 고위 판사 14명이 직권남용 등 혐의로 줄줄이 기소됐다.

법조계에서는 사문화되다시피 했던 직권남용죄가 이를 계기로 공무원 범죄의 대표 격으로 떠올랐다고 평가한다. 직권남용 혐의로 검찰에 접수된 인원이 2016년에는 4000명대였다가 2017년 9000명을 넘어섰고, 2000년대 초반까지 연 10명 안팎이던 기소 인원 역시 2018년 53명으로 늘었다. 직권남용죄가 종이호랑이가 아니라는 점이 널리 알려지면서 고소·고발이 폭증했고, 검찰도 적극 적용한 결과로 보인다.

우병우가 낸 헌법소원 기각한 헌재

이는 ‘직권남용죄의 남용’이라는 논란을 불러왔다. 직권남용죄를 구성하는 ‘직권’, ‘남용’, ‘의무 없는 일’ 같은 요소들의 의미가 추상적이어서 검찰이 직권남용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를 수 있고 위헌 소지도 있다는 게 비판의 뼈대다. 실제로 직권남용 혐의가 대거 적용됐던 사건에서 무죄 판결이 쏟아진 경우가 종종 있다.

사법농단에서는 양 전 대법원장을 비롯해 11명이 무죄가 확정됐거나 1·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국정농단에서도 직권남용 혐의가 적용된 사건 중 약 30%는 무죄 선고가 나왔다는 분석이 있다. 이를 놓고 ‘직권남용죄가 전 정부의 고위공직자나 정책적 판단을 처벌하는 데 이용될 수 있다’고 우려했던 권성 전 헌법재판관의 의견이 회자되기도 했다.

하지만 우병우 전 수석이 ‘직권남용죄는 죄형법정주의상 명확성 원칙에 위배된다’는 이유에서 낸 헌법소원에서 헌재는 최근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법 조항의 의미가 다소 광범위하다는 이유만으로 명확성 원칙을 어겼다고 볼 수는 없고, 입법 취지와 판례 등을 통해 합리적으로 해석할 수 있으면 된다는 취지다. 2006년에도 헌재는 비슷한 이유로 합헌이라고 판단했다.

자의적 해석 최소화할 방안은 필요

우 전 수석은 ‘비선 실세’ 최순실 씨의 비위를 알고도 감찰을 소홀히 한 혐의, 공무원 인사에 부당 개입한 혐의, 국가정보원을 동원해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 등을 사찰했다는 혐의 등 18개 혐의로 기소됐다. 우 전 수석은 재판 과정에서 다른 혐의들은 모두 피해 갔지만 직권을 남용해 이 전 특별감찰관을 사찰한 혐의만은 인정돼 징역형이 선고됐다. 직권남용죄가 필요한 이유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일 것이다.

법리 측면에서도 헌재가 거듭 합헌으로 결정한 만큼 직권남용죄 존치를 둘러싼 논란은 일단락됐다고 봐야 한다. 남은 과제는 자의적 해석의 여지를 최소화해 남발을 막는 것이다. 학계에서는 직권남용죄의 요건을 보다 세분화하고, 직권남용과 혼용되기 쉬운 ‘지위 남용’을 별도로 규정함으로써 혼선을 줄이는 방안 등을 제시한다.

이와 별개로 검찰은 필요 최소한의 범위에서만 직권남용 혐의로 적용하고, 법원은 보다 일관성 있는 판결을 통해 처벌의 예측 가능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이는 직권남용 우려 때문에 ‘적극 행정’이 위축되는 것을 막는 길이기도 하다. 국가의 형벌권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행사돼야 한다는 형사사법의 기본 원칙은 직권남용죄에도 엄격하게 적용돼야 한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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