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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8 (화)

이슈 끊이지 않는 학교 폭력

학생인권이 교실을 무너뜨릴까?[뉴스레터 점선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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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변희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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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야 정신을 차린다” “몇 년만 참아라. 대학 가면 모든 게 용서된다” “이유 없는 체벌은 없다”

제가 학생일 때 어른들로부터 자주 들은 말입니다. 학생은 아직 인간이 아니며, 맞으면서 인간이 된다고 믿었던 시절이에요.

대학에 가고 나니 일부 지자체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기 시작했어요. 당시 교육학 수업에서 체벌에 관해 토론했는데, 찬성과 반대 인원이 정확히 반반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사범대 학생들도 체벌이 사라진 학교를 상상하기 어려워했어요. 어떤 대안적인 방식으로 학생을 지도할 수 있을지 막막하게 느꼈던 거죠.

어쩌면 우린 그 막막함 속에서 출구를 찾지 못한 채 학생인권조례의 종말을 맞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레터는 학생인권조례와 그를 둘러싼 갑론을박에 대해 다뤘습니다. 현장의 입장을 생생하게 전하는 격월간 <오늘의 교육>을 많이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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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학생인권조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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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벽면에 붙은 추모 메시지. 성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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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7월, 서울 서초구 한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던 2년 차 20대 교사가 학교에서 목숨을 끊었습니다. 이후 대전에서도 민원에 시달리던 교사가 숨지는 등 교사들의 사망 소식이 잇달아 전해졌습니다. 추모 물결이 전국에서 일어났습니다. 교사들은 거리로 나서 각 사건의 진상 규명과 대책 마련을 촉구했어요.

· 정부와 여당 관계자들은 이런 말을 남기며 ‘교권 대 학생 인권’ 대립 구도를 만들었습니다.

“최근 발생한 초등 교사의 극단적 선택은 학생인권조례가 빚은 교육 파탄의 단적인 예.” (대통령실 관계자)

“학생의 인권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우선시되면서 교사들의 교권은 땅에 떨어지고 교실 현장은 붕괴하고 있다. 교육감들과 협의해 학생인권조례를 재정비하겠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

“학생인권조례로 교사에 대한 무분별한 아동학대 고소·고발이 이뤄지고 있지만, 교사들이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


· 전국에서 학생인권조례는 폐지 수순을 밟고 있습니다. 지난 4월, 충청남도의회(24일)와 서울시의회(26일)에서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를 의결했습니다. 광주에서도 조례 폐지를 요구하는 주민 청구가 접수됐어요. 경기도교육청도 학생인권조례 개정을 추진 중입니다.

· 교사들의 반응은 엇갈립니다. “교권 보호를 위해서라도 학생인권조례를 다시 돌려놔야 한다”며 규탄하는 교사들이 있는가 하면,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두고 “많은 학생의 학습권 및 교권 보호를 위해 권리와 책임이 균형을 이루는 계기가 돼야 한다”며 환영하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 지난해 교사들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정부와 여당 관계자는 학생인권조례를 원인으로 지적했습니다. 전국에서 학생인권조례는 차례로 폐지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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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이 사람이 아니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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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서울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얼차려’를 받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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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진 시절로 다시 돌아가 보겠습니다. 2010년대까지 학교는 여전히 권위주의가 팽배한 공간이었습니다. 체벌, 두발 제한, 자율학습·종교 수업 강요 등이 만연했습니다.

2010년 7월, ‘오장풍 교사 사건’이 전국적인 분노를 일으켰습니다. “손바닥으로 한 대만 맞으면 내동댕이쳐 진다”는 뜻으로 ‘오장풍 교사’라 불린 한 교사가 초등학생의 뺨을 때리고 발로 차는 등 폭행하는 영상이 퍼진 일입니다.

이를 계기로 ‘때리지 말라’ ‘두발을 규제하지 말라’ ‘강제 야간자율학습을 멈춰라’는 등 학생들의 목소리가 힘을 받았습니다. 이전 해부터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추진해 온 경기도를 시작으로, 곳곳에서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졌습니다. 지금까지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중 6개 교육청에서 학생인권조례를 만들었고, 인천광역시는 대상을 넓혀 학교 구성원 인권증진 조례를 제정했습니다.

학생인권조례는 성별·종교·나이·사회적 신분·출신 지역 등에 의해 차별받지 않을 권리, 학교폭력이나 체벌 등 폭력으로부터 안전할 권리, 두발·용모·복장 등 사생활의 자유 등을 규정했습니다. 헌법, 교육기본법, 초·중등교육법, 세계인권선언과 UN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 등에서 명시하고 있는 내용을 재확인하고, 각 교육청에서 학생 인권을 보장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차원입니다.

이거 언제까지 반대하는 거예요?


학생인권조례는 제정 시점부터 제대로 학교에 안착하지 못한 채 표류했습니다. 2012년 서울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자마자 교육과학기술부는 “조례제정권의 한계를 넘었고 학생 지도권한 등을 과도하게 침해했다”며 권한쟁의 심판을 제기했습니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해 학생의 두발과 복장, 전자기기 사용 제한 등을 각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기도 했어요. 조례보다 상위법인 시행령 조항이 조례와 충돌하게 해 조례를 무력화하기 위한 시도로 읽혔습니다. 이 조항은 2019년에야 법률에서 삭제됐습니다.

대법원은 각 학생인권조례에 법적 문제가 없다는 판단을 차례로 내렸지만, 교육감이 바뀐 지역들에서는 조례에 대한 입장을 바꾸기도 했어요. 보수 성향인 문용린 전 서울시 교육감은 학생인권조례의 하위법 성격인 서울학생인권옹호관 조례의결안을 시의회로부터 이송받고도 공포하지 않고 옹호관을 임명하지 않았습니다. 학생인권옹호관은 2014년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당선 이후에야 처음 임명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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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변희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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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와 지역이 혼선을 빚으니 제정 후 수년이 지나도 학생들이 인권조례의 존재를 모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4개 지역에서 조례가 만들어진 뒤 충청남도에서 다섯 번째 조례가 제정될 때까지 7년이라는 공백이 있었습니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차별받지 않을 권리’에서 ‘임신 또는 출산’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등 사유를 제외했고, 인천광역시는 교직원과 보호자를 포함한 학교구성원을 위한 ‘학교구성원 인권증진 조례’를 만들었습니다. 나머지 지역에서는 학생인권조례 제정 시도가 좌초됐습니다.

학생인권조례는 법적 쟁송과 정치 싸움에 휘말려 제대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동안에도 내내 교실을 붕괴시키고 교권을 추락시키는 원흉으로 지적받아 왔습니다.

왜 반대하는 거예요?


학생인권조례를 반대하는 몇 가지 논리, 독자님도 쉽게 떠올리실 수 있을 거예요.

지난 4월26일 서울시의회에서 학생인권조례 폐지 조례안을 가결하기 전 국민의힘 소속 김혜영 시의원이 한 발언을 살펴보겠습니다.

“힉생인권조례가 시행된 후 현재까지의 지난 10여 년을 돌이켜보면 학생인권조례는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 등 사회적으로 합의되지 않은 항목들을 차별받지 않을 권리에 포함시켜서 불필요한 논란을 지속적으로 양산해왔고 학생들이 특정권리를 남용하게 될 경우에 대한 견제장치도 미비하여 학생들로 하여금 권리와 책임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갖도록 유도하는 등 오늘날의 교육현장을 황폐화시키는 주범이 되었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조례 제정을 논의하던 당시부터 ‘학생은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는 내용을 포함한 조항이 “동성애와 성전환, 청소년 성행위를 조장한다”는 대형교회의 반대 운동이 거셌고,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어요. 최 의원도 성소수자 학생이 차별받지 않을 권리에 대해 “불필요한 논란을 지속적으로 양산”했다고 언급했습니다.

이번 레터에서는 이 주장을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데 공을 들이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10년 넘게 이어진 이 반대 논리가 얼마나 학교의 현실과 괴리돼 있는지 짚고 넘어가려 합니다. 첫 학생인권조례가 공포된 이후 독자님은 학교가 성소수자 학생이나 임신한 학생에게 따뜻하고 열린 공간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학교가 ‘임신과 성전환, 동성애 양성소’가 될 거란 우려가 무색하게도, 학교는 성소수자 학생과 청소년 임산부에게 ‘안전한 공간’조차 되지 못했습니다.

청소년 인권 활동가 공현은 지난해 열린 청소년인권포럼에서 “학교에서 일어나는, 학생들이 체감하는 (조례로 인한) 변화는 (두발·복장 규제, 신체 폭력 관련 등) 다른 부분이 더 큰데도 사회적 담론 차원에서는 (차별금지 조항을 문제 삼는 등) 그와 어긋나는 부조화와 불균형이 발생하고 있다”며 “논란을 일으키는 보수 개신교 단체나 정치인, 정당이 학교 교육과 학생들이 학교생활에서 겪는 문제와 고통에는 정작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학생인권조례가 과도하게 학생 인권을 강조해 교권이 추락하고 교실이 붕괴됐다”는 주장도 있지요. 학생인권조례 도입 후 학교 분위기가 급변해 교사의 정당한 지도 행위까지 ‘인권침해’로 몰고 가는 풍토가 만들어졌다는 겁니다. 교사가 학생이나 보호자에게 폭력을 당하면 ‘교권이 추락해서 그렇다’는 일률적 진단이 내려지고, 다시 교권 추락의 원인으로는 학생인권조례가 소환됐습니다.

그러나 학생인권조례와 교권 침해의 상관 관계는 알려진 바 없습니다. 경기와 서울 등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던 시기 ‘교육활동 침해 신고’ 건수가 급증하기는 했지만 이내 감소했습니다. 게다가 이를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지역과 제정되지 않은 지역으로 나누어보았을 때 유의미한 차이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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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변희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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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변희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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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학생인권조례 시행 지역에서 학생인권 존중 정도가 커질수록 학생들이 교권을 존중하는 수준도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는 여러 차례 발표됐습니다. “자신의 권리를 충분히 보장받고 적극적으로 실현할 수 있다고 여기게 된 학습자일수록 타자의 지위와 권위를 존중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러나 교사들 내부에서도 교육 활동이 벽에 부딪힐 때 학생인권조례를 탓하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학생인권조례=교육하지 말라는 소리’라는 냉소도 만연하고요. 교사 사회 내외부에서 제기되는 ‘교권 침해’ 담론을 좀 더 알아보겠습니다.

애매하고 위태로운 교권


교사 사회의 위기 징후는 뚜렷합니다. 지난해 9월, 교사 중 절반 이상이 우울 증상을 겪는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앞서 교사노동조합연맹은 교사의 87%가 지난 1년 새 이직이나 사직을 고민했다는 조사결과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예전 교사들이 ‘무너지는 공교육’ 현실에 자괴감과 낭패감을 느꼈다면, 최근 교사들은 생존에 대한 위협까지 느끼고 있습니다.

이런 세태를 두고 ‘교권이 추락했다’는 표현을 흔히 씁니다. 그러나 ‘교권’의 개념이나 내용은 사람마다 다르게 정의합니다. 초등 교사인 진냥은 <오늘의 교육>에서 교권이 교육권의 줄임말인지, 교사의 권리 혹은 권한인지, 교사의 인권인지에 대한 합의도 없이 혼용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 때문에 ‘교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말 속에도 교사의 체벌권, 징계권, 지도권, 노동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혼재한다고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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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열린 교권 회복 및 보호를 위한 교육부-국가교육위원회 공동주최 토론회. 문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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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의 애매함은 인식의 답보 상태를 가져왔습니다. 산청간디고등학교에서 근무하는 박종훈 교사는 논문에서 학생인권과 교권의 관계가 반비례하는 것처럼 인식하는 경향의 배경에 “학생 인권은 조례를 통해 비교적 명확히 규정됐지만 교권은 그 정의가 명확하지 않”은 현실이 있다고 분석합니다. 교권에 대한 인식은 다양하지만 현행법은 교사에 대한 직·간접적인 폭력행위만 ‘교육활동 침해’로 간주합니다. 교원들이 자신의 권리를 충분히 보장받지 못하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는 거죠.

그는 교원을 보호할 장치가 충분히 마련되어 있지 않다고도 지적합니다. 교총에 접수된 ‘교권 침해 상담’을 보면 학부모에 의한 교권 침해(48.4%)가 절반에 달합니다. 그다음은 동료 교직원(24.1%)이고요. 학생에 의한 교권 침해(14.4%)는 징계라도 가능하지만 학부모나 교직원에 의한 교권 침해에는 마땅히 대응할 수단이 없습니다. 박종훈은 이런 이유 때문에 교사 등 사회가 신장하는 학생 인권과 대비해 교권은 갈수록 축소된다는 인상을 받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범 교육평론가도 비슷한 지적을 합니다. 그는 “수업방해행위를 하는 학생을 교실 밖으로 내보낼 수도 없고, 폭력을 휘두르는 학생을 막기 위해 완력을 사용하기도 어렵다. 교사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긴급행동권과 같은 ‘구체적’ 권리 조항들인데, 이것이 공백으로 남겨져 있었다. 그러니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교권이 침해되었다’는 착시현상이 나타났다”고 썼습니다.

이 평론가는 학생인권조례를 소비자보호법에 비유하며 교사를 보호할 다른 구체적 방법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백화점에서 고객을 상대로 짝퉁을 팔고 현금 결제를 강요하는 등 온갖 부당행위를 한다고 가정해 보자. 이를 바로잡으려 소비자보호법을 제정했고, 이로 인해 소비자의 권익이 보호되었다. 그런데 차츰 소비자 중에 판매사원에게 갑질을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렇다면 이들의 갑질은 소비자보호법 때문인가? 소비자보호법이 너무 강해 갑질이 일어났으니 소비자보호법을 없애거나 약화시켜야 하는가? 이는 명백하게 논리적 오류다. 소비자보호법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보호법을 제정하고 효력을 높이는 것이 올바른 해법이다. 이를테면 근로기준법이나 산업안전보건법이 필요한 것이다.


덮어놓고 ‘교권을 강화하자’고 말할 것이 아니라 바로 세워야 할 교권은 무엇인지, 어떤 구체적인 방식으로 이를 보호할 것인지 터놓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교사, 학생, 보호자 등 학교 구성원의 목소리가 가장 존중돼야 하고요.

 권위주의가 만연한 시절 만들어진 학생인권조례는 제대로 학교에 안착하지 못했음에도 ‘교실 붕괴’ ‘교권 추락’의 원흉으로 지목받았습니다. 학생인권과 교권을 대립 관계로 여기는 이런 시선은 제대로 정의되지 않은 ‘교권’에서 비롯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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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도 틀렸고 지금도 틀렸다


서울 서초구와 종로구에서, 대전에서, 경기 의정부와 용인에서 교사들이 스러진 배경에는 ‘지속적인 민원’이 있었습니다. 서초구 교사는 사망 직전 학부모 민원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학교에 두 차례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종로구에서 일한 기간제 교사도 민원과 학부모 폭언에 노출됐습니다. 대전에서 숨진 초등학교 교사도, 의정부에서 사망한 교사도 민원에 수년간 시달린 것으로 확인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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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목숨을 끊은 서울 서초구 한 초등학교 교사를 추모하는 꽃다발과 메모지. 권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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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신고가 학교를 뒤덮고 있습니다. 고등학교보다는 중학교에서, 중학교보다는 초등학교에서 더 심각합니다. 학생이 어릴수록 교과목 지도보다는 생활 지도가 학교 교육에서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에요. 초등학교 저학년 학습에서는 줄 서기, 정리 정돈, 급식 지도 등 아동의 생활 습관 형성을 돕는 것이 교사의 역할인데요, 교사의 엄한 태도에서 아동이 느끼는 속상함이 ‘정서적 학대’로 연결될까 교사들은 우려합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2022년 내놓은 설문조사에 따르면 교사 10명 중 9명은 ‘나도 아동 학대로 의심받아 신고당할 수 있다’고 느꼈습니다. 실제로 아동학대 신고를 받았거나 동료 교사의 사례를 본 적이 있는 비율도 61.7%에 달했습니다. 교사들은 아동학대 신고 때문에 정당한 훈육이 어렵다고 호소합니다. 아동학대로 신고 받은 교사 중 유죄로 확정된 사례는 1.5%에 불과했지만, 신고에 대한 공포는 교사가 꼭 필요하다고 느끼는 교육활동까지 주저하게 만들었습니다.

학교 안에서 발생한 크고 작은 갈등은 너나 할 것 없이 법원으로 가고 있습니다. 학생 사이 갈등은 ‘학교폭력’, 교사와 학생 사이 갈등은 ‘아동학대’로 불리는 ‘교육의 사법화’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소한 갈등까지 학교 밖 법원에서 판가름 나는 일이 반복되면서 학교 공동체는 벌집처럼 들쑤셔졌습니다.

교사들은 보호자의 위협에 1차 충격을 받지만, 학교에도 기댈 수 없다는 사실에 다시 절망합니다. 주변 교사의 무관심, 관리자의 미온적인 태도가 교사를 고립시킵니다. 정성국 교총 회장은 “학부모와의 상담·민원을 담임이 모두 감당하는 구조에서 교사들은 ‘우리 반 문제는 내가 해결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하지만 일부 학부모는 불리해지면 태도가 돌변해 협박이나 괴롭힘을 가하는 일들이 무수히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학생과 보호자는 교사 홀로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이들은 ‘문제 학생’ ‘진상 학부모’ 등으로 불리며 기피 대상이 됩니다. 이들이 있는 학년은 기피 학년이 되고요. 이들을 대하는 업무는 특히 학교의 약한 고리에게 떠맡겨집니다.

<오늘의 교육> 76호에서 정은경 교사는 “기피 학년과 기피 업무가 신규·저경력 교사나 전입 교사에게 떠밀려 온다. 이렇게 약한 고리로 밀려온 업무는 끝내 노동자를 죽음에 잠기게 했다. 동료 노동자가 업무 폭탄으로 힘들어해도, 불안정한 일자리로 생계를 걱정해도, 악성 민원 전화에 상처를 받아도, 폐암으로 죽어 가도 당장 나의 생존이 우선일 뿐이다. 학교 공동체는 없다”고 말합니다.

작년에 담임이 여러 번 바뀐 고학년 교실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학생들 대다수는 수업을 듣지 않았고, 반 1/3에 달하는 학생들이 성적인 농담을 일삼으며 낄낄대는 상황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래서 학교 관리자에게 처음으로 어렵게 도움을 요청하였지만 관리자분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했다. 주변 교사들은 나를 위로한답시고 ‘이래서 애들을 때릴 수 있어야 하는데’라고도 했고, ‘선생님이 너무 착해서 애들을 못 잡아서 그렇다’라고도 했다.


같은 호에 실린 기간제 교사인 현유림 교사의 경험은 기피 업무가 교사에게 어떻게 전가되는지, 문제 상황에서 관리자가 얼마나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지, 고립된 교사에게 손쉽게 하는 조언 속에 ‘학생 인권’이 조소의 대상이 되는지를 보여줍니다.

교권이 ‘땅에 떨어지기 전’에도 어떤 교사들은 위기에 내몰렸습니다.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지기 이전인 2009년 7월자 기사를 보실까요.

서울 한 고등학교에서 학년 학생이 시간제 음악교사로 일하는 교사의 어깨에 손을 올리면서 “누나 사귀자”라고 말했고, 이에 당황한 교사가 자리를 피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아이들은 “한 번 더! 한 번 더!”라고 소리쳤다. 학생이 다시 한번 교사에게 다가가 장난을 쳤고, 교사는 강하게 제지했다. 이 장면을 다른 학생이 휴대전화에 담았다. 교사가 삭제하라고 요구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40여 초의 짧은 동영상은 ‘선생님 꼬시기’라는 제목으로 인터넷을 통해 퍼졌다.


기사는 2006년 청주에서 한 초등학교 교사가 급식지도를 못한다는 이유로 학부모가 사표를 요구한 일, 2008년 서울 강서구에서 초등학생 2명이 자신들을 혼내는 교사를 욕설과 함께 폭행한 일, 학생들이 교사 치마 속을 촬영해 동영상을 인터넷에 유포한 일 등을 언급하고 있어요. 교사를 향한 폭력은 학생인권조례 이전부터 빈번했습니다.

학생인권조례가 처음 제정되고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변하지 않은 게 있다면 학교가 약자를 보호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 아닐까요? 이전에는 문제가 발생하면 ‘쉬쉬’하고 덮기만 했다면 이제는 방관하는 태도로 바뀌었다는 게 변화라면 변화일 수 있겠습니다. 예전에도 지금도 학교마다, 교실마다 드러나는 약자를 우리는 돕지 않거나 못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어딘가에선 학생이, 어딘가에선 교사가 홀로 분투하다 학교를 떠났습니다.

학교에 시급한 것은 무엇일까요.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전세란 교사(<오늘의 교육> 72호)는 교사에게 그 무엇보다 먼저 ‘학교가 함께 있다’는 느낌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가 불쑥불쑥 분에 못 이겨 돌발 행동을 하는 학생을 대한 경험에서 문제 해결의 작은 실마리를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우연히 만난 교장은 시들어 가는 내 모습을 보고 교장, 교감이 담임, 보호자와 함께 자리를 마련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하였다. 마뜩잖게 제안을 수락한 보호자는 따뜻한 차와 함께 부드럽게 아이에 대해 묻는 교장의 이끎에 천천히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와 아빠의 서로 다른 교육관 사이에서 아이가 느끼는 압박감과 혼란, 병원에서 어떤 검사들을 하였고 아이가 어떤 진단을 받아 무슨 약을 복용하고 있는지를 처음으로 알려 주셨다. 그제야 하루하루를 무사히 넘기는 데만 급급해 보이지 않았던 아이의 입체적인 시간과 마음이 상상되기 시작했다. 그날 보호자는 아이가 익숙한 공간인 가정과 불안한 요소들이 많은 학교에서의 모습이 달라 자신도 잘 몰랐다며, 아이가 교실에서 위험한 행동을 할 때 교무실로 잠시 분리하는 등의 방법을 함께 정했다.

그날의 경험은 내게 귀했다. 나는 아이의 삶을 좀 더 총체적으로 들여다보게 되었고, 아이의 행동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마냥 불안하지 않았다. 만약 그 시간이 없이 아이의 공격적인 행동이 더 악화되었다면? 그 상황에서 내가 아이를 말리기 위해 더 센 조치를 취했다면? 아마 나도 아동학대 신고 혹은 교실에서의 사고를 트라우마로 삼고 있는 교사가 됐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아찔하다.


교실의 위기를 해소하는 방법은 각자도생하듯 ‘개인 대 개인’ ‘학생 대 교사’로 대립하는 것이 아닌, 모든 학교 구성원이 교실에서 일어난 문제를 함께 책임지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학생인권조례와 상관 없이, 학교는 제정 이전에도 이후에도 교내 약자를 보호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교실의 위기는 각자도생이 아닌 교육 공동체 회복에서 극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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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교사들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정부와 여당 관계자는 학생인권조례를 원인으로 지적했습니다. 전국에서 학생인권조례는 차례로 폐지되고 있습니다.

권위주의가 만연한 시절 만들어진 학생인권조례는 제대로 학교에 안착하지 못했음에도 ‘교실 붕괴’ ‘교권 추락’의 원흉으로 지목받았습니다. 학생인권과 교권을 대립 관계로 여기는 이런 시선은 제대로 정의되지 않은 ‘교권’에서 비롯했습니다.

학생인권조례와 상관없이, 학교는 제정 이전에도 이후에도 교내 약자를 보호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교실의 위기는 각자도생이 아닌 교육 공동체 회복에서 극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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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민 기자 5k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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