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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8 (화)

피벗 확산 기대감 커지는데…신중한 미국, 더 신중한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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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7 중 미국·일본 제외 기준금리 인하, 한국은 빠르면 4분기 가능”

“일각선 선제 조치 주장, 환율·물가·가계부채 등 고차함수 풀어야”

경향신문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지난 6월 12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뒤 연 기자회견에서 기준금리 동결 방침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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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주요 국가들이 금리를 내리면서 피벗(통화정책 전환)에 나서고 있다. 남미 신흥국부터 유럽과 캐나다 등의 선진국도 기준금리 인하에 시동을 걸었다. 고금리 장기화에 따른 경기 침체의 골이 깊어지고 있어서다. 세계 금리 방향의 키를 가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도 올해 4분기 전후로 금리 인하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끈적거리는 물가가 잡힐 것으로 예상되면서 피벗 확산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연준 정책에 영향을 많이 받는 한국은행은 기준금리 인하가 빠르면 4분기에 시작되거나, 물가 상황에 따라 내년 초에 단행될 것으로 보인다.

물가가 ‘파월의 입’ 보다 강했다

연준은 지난 6월 12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5.25∼5.50%로 동결했다. 한국(3.50%)보다 2.00%포인트 높은 수준이다. 연준 위원들은 향후 금리 수준을 예상한 점도표를 통해 올해 기준금리 인하 예상 횟수를 기존 3번에서 1번으로 줄였다.

시장은 회의에 앞서 발표된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예상보다 낮게 나온 것에 주목했다. 이날 발표된 미국의 5월 CPI는 전년 동기 대비 3.3% 올라 4월(3.4%)보다 상승률이 낮아졌다. 연준이 중시하는 주거비·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서비스 물가를 나타내는 슈퍼코어 물가상승률도 전월 대비 0.04% 하락해 2021년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연준이 서비스물가가 둔화해야 금리 인하가 가능하다고 강조해온 만큼 피벗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달성했다.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으로 미국 주식시장은 사상 최고치로 마감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연준이 이번 FOMC 회의에서 연내 1차례 금리 인하를 시사하면서도 2차례 인하 가능성도 열어놨다”고 평가했다.

시장금리로 연준의 기준금리를 전망하는 시카고상품거래소 페드워치에 따르면 연준의 9월 금리 인하 확률이 6월 11일 46.8%에서 12일 62.0%로 높아졌다. 연내 2회 내릴 확률도 절반을 넘어선 62%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물가상승률이 예상보다 빨리 둔화한다면 언제든 대응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해 시장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렸다. 다만 시점이 언제인지에 대해선 답변을 피했다.

미국보다 앞서 기준금리를 올린 한국은행은 올해 4분기 이후에나 금리 인하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여전히 피벗에 신중하다. 원·달러 환율이 1370원대를 맴도는 상황에서 금리를 내리면 상방 압력이 더 커질 수 있다. 계속되는 이스라엘-이란 사태와 오는 11월 미국 대선,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 정당의 약진 등으로 환율을 자극하는 변수가 대기 중이다. 고환율로 수입품 가격이 오르면 인플레이션이 또다시 고개를 들 수 있다.

금리 인하를 단행한 유럽에서도 미국과의 금리 격차 확대로 유로화 가치가 절하돼 물가가 다시 오를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한은이 금리 인하에 나서더라도 유럽 등의 상황을 봐가며 속도 조절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농수산물 가격이 급등하면서 소비자가 체감하는 물가 수준이 높은 것도 고민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올해 2월(3.1%)과 3월(3.1%) 3%대를 유지하다가 4월(2.9%) 석 달 만에 2%대로 내려왔다. 하지만 과일을 비롯한 농축수산물이 10.6%나 치솟는 등 2%대 안착을 확신할 수 없다.

주춤했던 가계대출도 다시 늘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 5월 가계대출은 주택 거래 증가와 함께 6조원가량 불었다. 지난해 10월(6조7000억원) 이후 7개월 만에 가장 큰 증가량이다. 한은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1%에서 2.5%로 올려잡으면서, 금리 인하의 명분을 제시하기도 애매한 상황이다. 이런 불안 요소를 고려하면 내달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다시 현 수준(3.50%)에서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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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5월 23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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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지난 6월 12일 한은 창립 74주년 기념식에서 “물가가 목표 수준으로 수렴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는 인내심을 갖고 현재의 통화 긴축 기조를 충분히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고물가 시기의 마지막 구간(라스트 마일)에서 성급히 금리를 낮췄다가 물가 안정기 진입 자체가 흔들릴 위험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 총재는 이날 ‘천천히 서둘러라(Festina Lente)’라는 아우구스투스 로마 황제의 원칙을 거론하며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에서 마지막 구간에 접어든 지금, 상충관계를 고려한 섬세하고 균형 있는 판단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섣부른 통화 완화 기조로의 선회 이후 인플레이션이 재차 불안해져 다시 금리를 인상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그때 감수해야 할 정책 비용은 훨씬 클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이후 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왔던 주요국들은 최근 통화정책을 ‘긴축’에서 ‘완화’로 전환하고 있다. 경기가 더 악화하기 전 선제 금리 인하에 나선 것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지난 6월 6일 기준금리를 연 4.50%에서 연 4.25%로 인하했다. 독일, 프랑스 등 유로화를 사용하는 유로존 20개국에 적용된다. 금리 인상을 시작한 2022년 7월 이후 1년 11개월 만의 방향 전환이다. 이로 인해 미국(기준금리 5.25∼5.50%)과 금리 차는 1.00∼1.25%포인트로 확대됐다.

유로존의 전년 대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22년 연말 10%를 넘겼다가 지난해 10월부터 2%대에 머물면서 목표치인 2.0%에 근접했다. 유럽은 변동금리 비중이 높고, 가계 자산 중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율이 커 고금리에 따른 타격이 크다. 통화정책이 소비 심리에 미치는 시차를 고려할 때 먼저 금리 인하에 나서야 하반기 경기 반등을 기대할 수 있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다만 ECB는 올해 물가상승률과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모두 상향 조정해 추가 금리 인하까지는 다소 오래 걸릴 수 있음을 예고했다. 블룸버그통신은 “금리 인하에 따른 통화 약세가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지만 유로존은 더 급한 불을 꺼야 하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전날에는 캐나다 중앙은행인 캐나다은행이 기준금리를 기존 5.00%에서 4.75%로 인하했다. 주요 7개국(G7) 중 캐나다가 처음이다. 앞서 스위스와 스웨덴도 각각 지난 3월과 5월에 금리를 내렸다. 금리를 내리면 자본이 빠져나갈 위험이 큰 멕시코 등의 신흥국도 저성장 탈피를 위해 공격적 금리 인하에 나섰다. 영국은 올해 7월 총선이 끝난 후 금리를 내릴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몸살을 앓고 있는 중국도 올해 2월 인민은행이 경기 부양을 위해 기준금리 격인 대출우대금리(LPR)를 연 4.20%에서 3.95%로 0.25%포인트 내렸다. 금리를 인상해야 하는 일본은 적절한 시기를 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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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I 금리인하 군불, 내수 활성화는 미지수

일각에선 한국도 선제 금리 인하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내수 경기가 악화하는 가운데 자영업자와 중·소상공인의 폐업이 늘고 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군불을 때고 있다. KDI는 지난 6월 11일 발표한 ‘경제동향’에서 “최근 우리 경제는 높은 수출 증가세에 따라 경기가 다소 개선되고 있으나 내수는 회복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며 “가계와 개인사업자 대출 연체율이 지속 상승하는 등 고금리 기조가 내수 부진의 주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KDI는 지난 5월에도 보고서를 통해 선제적 금리 인하를 주장했다. 고금리가 장기화할 경우 경기회복 불씨가 꺼질 수 있어 미국 금리 인하와 관계없이 내려야 한다고 본다. 관가 안팎에서는 유럽 등에서 금리 피벗이 확산하자, KDI가 재정 여력이 부족한 기획재정부를 대신해 금리 인하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금리 인하 시기에 대해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평가가 엇갈린다. 경기침체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 금융 부실 문제가 더 심각해지기 전 선제적으로 먼저 인하를 단행해야 한다는 주장에 환율 상승 우려 속 섣부른 금리 인하가 내수 회복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맞선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 등의 다른 국가에 비해 한국은 금리 인상 시기에 충분히 금리를 올리지 않아 (금리를 내리면)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며 “금리를 내린다고 해도 영끌해 집을 산 이들이 소비를 늘릴 가능성이 없어 실질적인 내수 진작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시장에서는 시장금리에 이미 한 차례 기준금리 인하(0.25%포인트) 기대가 반영돼 하반기 대출·예금 금리 하락 폭이 미미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영끌족’과 자영업자 등 대출 부담이 큰 금융 소비자들이 연내에도 고금리 긴축에서 쉽게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의미다. 최근 한 달 사이 ECB 기준금리 인하 기대 등으로 시장금리가 약세를 보이면서 주요 시중은행의 대출 금리도 대체로 떨어졌다.

김은성 기자 k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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