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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8 (화)

보호출산제를 보는 엇갈린 시선…“이 정도면” 기대, “이 정도론”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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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지난 5월 19일 밤. 김가연씨(18·가명)는 생후 2개월 아이와 단둘이 서울에서 꽤 떨어진 곳에서 기차를 탔다. 그는 청소년 부모이자 한부모다. 그날 서울역에서부터 긴급주택까지 가연씨와 동행했던 유미숙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은 “날이 어둡고 모르는 길로 가자고 하니까 가연씨 입장에선 무서웠을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아니요. 저는 그냥 감사하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다 알아보고 왔고, 아이랑 어떻게든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거든요.”

지난 5월 31일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가 운영 중인 서울 마포구 내 ‘힐링홈 금순이네’(긴급주택 및 상담공간)에서 만난 가연씨가 말했다. 그는 남자친구와 3년쯤 연애한 후 임신했다. 가연씨는 “서로 아이를 좋아해서 갖자고 했는데 막상 임신하니까 남자친구 태도가 바뀌었다”며 “남자친구 수입이 고정적이지 않았고, 한 번씩 아이를 지우자고 말해 자주 다퉜다”고 했다. 가연씨는 비혼모 지원시설에 들어갈까 고민해 상담도 했는데 당시만 해도 남자친구와 관계가 다시 풀려서 시설엔 가지 않았다.

“아이를 일찍 낳고 싶었고,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출산할지 말지 고민은 많이 안 했어요. 솔직히 남자친구가 (아이를) 지우라고 할 때 흔들리긴 했죠. 남자친구가 그런 말을 할 때 ‘이러다 내가 혼자 키우게 될 수도 있겠구나’란 생각은 했던 것 같아요.”

가연씨는 청소년 부모로 등록해 의료비(임신 1회 120만원)를 지원받아 병원을 꾸준히 다녔다. 제왕절개 수술로 출산했는데, 수술비를 마련하기가 어려웠다. 서둘러 출생신고를 하고 부모급여(월 100만원)를 받았다. 기초생활보장제 생계급여도 신청해 받았다. 이렇게 가용 가능한 자원을 찾아 출산까지는 버텼는데, 더 큰 위기가 양육 단계에서 찾아왔다.

남자친구 본가에서 생활하긴 했지만 신생아를 두고 일자리를 구할 순 없었다. 남자친구도 수입이 들쑥날쑥했다. 양가 부모로부터는 생활비나 양육비, 돌봄 도움을 전혀 받지 못했다. 남자친구와 관계가 더 나빠져 아이 생후 한 달쯤 됐을 때 헤어졌다. 갈 곳이 없어진 가연씨는 ‘같이 살자’고 손을 내민 지인들을 따라 타지로 거처를 옮겼다. 그런데 “지인들이 부모급여·생계급여를 ‘생활비로 쓰자’, ‘빌려달라’ 하면서 자꾸 돈이 빠져나갔고, 여기서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연씨는 사단법인 비투비(BtoB)가 운영하는 비혼모 지원 플랫폼인 ‘품’ 애플리케이션(앱)에서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의 긴급주택 서비스를 알게 됐다. 남자친구로부터 양육비는 받지 못하고 있다.

■‘위기임산부 상담·지원체계’ 첫 제도화

지난해 ‘수원 냉장고 영아시신 사건’과 2000명이 넘는 출생 미등록 아동 전수조사 결과 발표를 계기로 ‘출생통보제’(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와 ‘위기임신 지원 및 보호출산제’(위기임신 및 보호출산 지원과 아동 보호에 관한 특별법·이하 특별법)가 각각 국회 문턱을 넘었다. 오는 7월 19일 동시 시행된다.

출생통보제는 의료기관이 출생 사실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통해 알리고 관할 지방자치단체가 출생신고 사실을 최종 확인·보장토록 한 제도다. 그동안 부모에게만 출생신고 의무를 부여해 사각지대가 발생했던 것을 개선한 것이다. 출생신고는 아동의 안전을 보장하고 시민으로서 공적 자원을 누릴 수 있는 각종 권리의 토대가 된다. 다만 미등록 이주민 자녀는 출생통보제 대상에서 빠져 ‘태어난 즉시 이름과 국적을 가질 권리’(유엔아동권리협약 제7조)를 온전히 보장하지는 못한다.

출생통보제 시행으로 ‘병원 밖 출산’이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산모의 신원을 알리지 않고 출산하는 익명 출산제가 대책으로 제시됐다. 그러나 익명 출산이 ‘아동의 부모를 알 권리’를 침해한다며 반대 여론이 일었다. 특별법은 위기임산부에 대한 공적 상담·지원체계를 갖춰 양육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돕고, 보호출산 시엔 아동의 출생증서를 아동권리보장원이 보관해 추후 정보공개권(친생부모 동의 시)을 보장한다는 조항을 넣어 국회 문턱을 넘었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와 중앙상담기관인 아동권리보장원은 “보호출산은 최후의 보루”이며 “위기임산부에 대한 촘촘한 상담과 서비스를 통해 원가정 양육을 할 수 있게 지원하는 것이 제도의 취지”라고 설명한다.

지난 5월 말 전국 16개 광역 시·도별로 지역상담기관이 지정됐다. 그간 비혼모 상담·지원을 해온 비혼모 지원시설 등 민간기관(단체)이다. 정부는 또 위기임산부 상담과 긴급 대응을 위한 전용 전화 ‘1308번’을 운영한다. 아동권리보장원은 지난 6월 11~14일 서울에서 지역상담기관 종사자, 시·도 담당 공무원 등 100여 명을 대상으로 워크숍 및 기본교육을 진행했으며 상담 매뉴얼도 배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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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부모이자 한부모인 김가연씨(가명·오른쪽)가 지난 5월 31일 서울 마포구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힐링홈 금순이네에서 ‘자립지원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지를 보고 있다. 김향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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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임산부 상담·지원체계는 어떻게

특별법에 따르면 위기임신 지원 및 보호출산제 대상자는 ‘경제적·심리적·신체적 사유 등으로 인해 출산 및 양육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임산부’다. 지역상담기관은 상담 매뉴얼에 따라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생계급여 등), 모자보건법(임산부·영유아 건강관리 등), 한부모가족지원법(생계비·교육비 지원 등), 국민건강보험법(임신바우처 등) 등에 근거해 위기임산부에 필요한 각종 지원 사항을 충분히 제공해야 한다. 정부는 위기임산부가 복지제도에 대한 ‘정보 취약층’일 가능성이 크니 접근성을 높여주면 양육을 선택하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라 기대한다.

위기임산부들이 이런 복지망에 가닿게 하는 것이 1차적 과제였던 셈이다. 그동안 위기임산부 상담은 민간이 담당해왔다. 서울시나 경기도 등 지자체별로 위기임산부 상담 ‘핫라인’ 창구를 개설했지만, 최근 몇 년 사이의 일이다.

가연씨는 “정부나 지자체에서 어떤 지원을 받으려고 하면 내야 하는 서류가 너무 많고 소득 조건이 까다로워서 신청부터 힘들더라”고 했다. “진짜 당장 급한 사람들이 엄청 많을 텐데 정부 지원들은 신청 후 (선정·지원 때까지) 몇 달씩 ‘기다려라’ 하고요. 정부가 심사 같은 기간을 좀 짧게 하면 좋을 것 같고 제가 들어간 긴급주택처럼 민간에서 그걸 좀 메워주는 것도 필요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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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의 트라이앵글 프로젝트는 ‘긴급성’에 호응한 지원책들로 구성됐다. 긴급 생계비, 긴급주택 등을 지원한다. 비투비가 2020년 서비스를 시작한 플랫폼 ‘품’은 사용자가 입력한 상황에 따라 필요한 자원을 바로 찾아볼 수 있는 맞춤 정보를 제공한다. 두 단체는 소득, 연령, 거주지 등 조건을 맞추지 못해 복지망 밖으로 ‘탈락’하는 위기임산부를 지원하고자 했다. 위기임산부 자립지원 프로그램도 병행한다.

위기임신 지원 및 보호출산제 시행에 따라 공적 지원 체계도 일부 개선된다. 여성가족부는 이 제도 시행에 맞춰 오는 7월 말부터 위기임산부 누구나 한부모가족복지시설(121곳)에 입소할 수 있도록 기준을 변경한다. 그동안엔 만 24세를 넘는 경우 소득 수준을 따져 입소 여부가 갈렸다. 향후 16개 지역상담기관에서도 위기임산부에 직업훈련, 학업 등을 지원한다.

유미숙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은 지난 5월 28일 마포구 힐링홈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위기임산부에 정보를 주는 것만으로는 안 되고, 긴급주택 입주와 같은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지원을 병행해 신뢰를 형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비혼모 지원) 시설로 들어가기보다 지역사회에 거주하고 싶어하는 위기임산부들이 있다”며 “우선 긴급주택에서 지내면서 기초생활보장 생계급여가 나올 때까지 3개월은 긴급복지지원으로 생활할 수 있게, 공백없이 지원돼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임대주택 자원을 연계해주고, 심리상담이나 직업 연계도 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2012년부터 현장에서 수백 명의 위기임산부 상담을 해온 유 사무국장은 이들에게서 “청년 빈곤”이라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현금, 주거, 식품 등 물적 지원만으로 위기를 벗어나기 어려운 경우도 많았다. 범죄에 노출·연루된 경우나 경계성 지능인 경우, 미등록 외국인 등은 복지 신청주의가 만든 사각지대에 있는 사례들이라고 한다. 그는 “개인의 사정에 따라서 부채 탕감을 비롯한 재무, 주거, 직업 교육 및 생활·양육 교육까지 여러 분야에서 전문적인 지도와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했다. 그러자면 ‘1년 이상 사례관리’가 필요할 수도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처음 제도를 시행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상담·지원 경험이 있는 기관을 지역상담기관으로 지정했다”며 “지역상담기관에서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어서 지역의 다양한 단체, 자원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해 정책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도 시행 한 달 앞으로···기대·우려 혼재

정부가 예산을 들여 위기임산부 상담·지원체계를 구축해가는 것은 국가 책임성을 강화하는 일이다. ‘출생통보제 도입에 따른 보호출산 제도 운영 방안 연구’(2023)의 책임연구자인 변수정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기자와 주고받은 e메일에서 “‘낙태법’ 위헌 판정 이후 대체입법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또한 한국 문화·정서상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임신했을 때 임신 중지, 입양, 양육 등 어느 선택 하나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위기임산부에 대한 공적 지원보다는 민간 상담·지원이 더 많이 이뤄지는 현실”이라고 했다. 변 연구위원은 “지금은 공적 영역에서 위기임산부 상담·지원이 부족하지만 보호출산제 운영을 하면서 지역상담기관을 설치하기 때문에 앞으로는 나아지고 현재 부족한 위기임산부 지원 내용도 보완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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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미숙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이 지난 5월 28일 서울 마포구 ‘힐링홈 금순이네’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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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출산’이 가능해지면서 “익명 출산을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기저에는 “한국은 한부모가 아이를 양육하기 어려운 사회”, “비혼모에 대한 편견이 강한 사회”라는 인식과 현실이 자리한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연구관이 지난 5월 22일 국회 토론회에서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한부모가족 아동빈곤율이 가장 낮은 덴마크에서는 2021년 기준 일반가족 아동과 한부모가족 아동의 빈곤율 격차는 6.1%포인트다. 한국은 그 격차가 37.7%포인트에 달한다.

유소라씨(22·가명)는 4년 전 출산해 아이를 홀로 양육하고 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오래 사귄 남자친구와의 사이에서 아이가 생겼고, 둘은 아이를 출산해 같이 책임지기로 했다. 소라씨는 임신 말기에 비혼모 지원시설에 들어가 출산했으며 남자친구와는 1년여 후 헤어졌다. 지난 6월 7일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가 지원한 긴급주택에서 만난 소라씨는 “남자친구 집에서 반대가 심했는데 남자친구는 자기 부모와의 갈등이 커지는 것을 잘 못 버텼고, 그러면서 저도 점차 지쳤던 것 같다”며 “남자친구가 헤어진 후 양육비를 3개월 보냈고, 그 이후로는 아예 연락되지 않는다”고 했다.

소라씨는 출산 후 소라씨가 어릴 때 재혼해 별도로 가정을 꾸린 엄마와 같이 생활하게 됐다. 소라씨는 스스로 등록금을 벌어 대학을 졸업했다. 양육과 학업과 경제활동을 동시에 하던 시절 “아등바등 살았다”고 그는 말했다. 취직은 했지만 야간 당직이 돌아오는 일을 하면서 아이를 키우기는 쉽지 않았다. 소라씨는 “엄마에게 아이 돌봄을 전적으로 맡기기 어려웠고, 회사에도 눈치가 보였다”며 “하루는 회사에 아이 때문에 하루 결근하겠다고 말했다가 선임으로부터 엄청 혼이 나기도 했다”고 말했다. 결국 “아이를 잘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 일을 그만뒀다.

“제가 정말 독립이 급할 때 주민센터에 전화했더니 ‘도와줄 게 없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긴급주택 같은 지원이 제가 살던 곳엔 없어서 결국 (전남에서) 서울까지 오게 된 거죠. 아무런 연고는 없지만 그래도 아이와 함께 살 공간이 있어서 좋아요.”

그는 지난 4월부터 긴급주택에 입주해 당장 주거비는 아꼈지만 기초생활보장 생계급여와 아동수당 등을 받아 빠듯하게 생활한다. 아이는 어린이집에 다니는데, 정부 지원 보육료 외에도 차량비 등 부대 비용이 든다. 게다가 지난 4년간 독립을 위해 집을 구할 때마다 조금씩 대출을 받는 바람에 빚도 수백만원 있다. 그는 “올여름 빚을 다 갚을 것 같다”며 “그 후엔 일자리도 알아보고 사회생활도 다시 시작해보려 한다”고 했다. 다만 직장을 구해도 아이가 아프거나 긴급한 일이 생길 때 맡길 곳이 없는 것이 걱정이다. 소라씨는 “‘365열린어린이집’(서울시 운영)이 예약제인데 대기가 많아서 이용하기 어렵다던데, 저처럼 아이 맡길 곳이 없는 한부모들을 위한 보육서비스가 더 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허민숙 연구관은 지난 6월 10일 통화에서 “양육을 원하지 않는 여성에게 아이를 양육하도록 하는 것이 여성과 아이 모두에게 과연 이로운가 질문할 수 있고, 아동의 태생에 대해 알권리를 제한하는 제도를 만드는 것에 대한 비판도 나올 수 있다”며 “이 논쟁은 계속될 것이라고 본다”고 했다. 그는 “다만 이 제도가 한부모가족 지원체계를 강화하는 역할을 하도록 우리 사회가 매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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