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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2 (토)

헬스장 '아줌마 출입 금지'…'개저씨 출입'도 막았다면?[이승환의 노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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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천장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누군가는 아줌마 될 수밖에

[편집자주] 신조어 No cap(노캡)은 '진심이야'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캡은 '거짓말'을 뜻하는 은어여서 노캡은 '거짓말이 아니다'로도 해석될 수 있겠지요. 칼럼 이름에 걸맞게 진심을 다해 쓰겠습니다.

뉴스1

ⓒ News1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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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 '아줌마'는 '아주머니'를 낮추어 이르는 말이다. 국어사전에 이렇게 정의돼 있다. '낮춰 이른다'는 것은 상대에 대한 깔봄과 조롱, 혐오의 정서를 품고 있다는 의미다. 반면 '아저씨'는 낮춰 이르는 단어가 아니다. 국어사전은 '성인 남자를 예사롭게 이르거나 부르는 말'이라고 아저씨를 정의한다. 아줌마에 조응해 성인 남성을 의미하는 말은 조어인 '개저씨'(개+아저씨)일 것이다.

아줌마를 비하하거나 기피하려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과거에 더 했으면 더 했을 것이다. 소설가 김훈이 25년 전인 1999년 3월 24일 국민일보를 통해 보도한 칼럼에는 다음 대목이 나온다.

"'아줌마'는 이 천덕꾸러기들에 대한 사회적 호칭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얼마 전에 모 대학 학생들이 학내 분규로 강의실을 점거하고 농성을 하고 있었다. 이 학교 여자교수가 농성장에 나타나서 학생들을 만류했다. 학생들은 '아줌마는 집에 가라'고 소리쳤다. 아줌마 교수는 울며 돌아섰다."

아줌마는 펑퍼짐하고 억척스럽고 뻔뻔하고 눈치 없고 남의 말 듣지 않고 잇속을 챙기는 이미지의 총합이다. 반면 여성으로서의 매력이 심각하게 저하했거나 실종됐다고 간주된다. '너도 아줌마 다 됐구나' 같은 표현이 대표적이다. 과거보다 아줌마 혐오 정서가 덜해진 것은 외양적으로 잘 꾸미고 세련된 중년 여성이 늘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아줌마냐 아니냐를 구분하는 기준 중 하나는 여성이 겉으로 표출하는 여성성 혹은 이성적 매력이다.

그리하여 아줌마는 외로울 수밖에 없다. 젊은 성인 남성과 나이 든 중년 남성, 심지어 어린아이도 아줌마를 탐탁지 않게 여긴다. 일부 젊은 여성도 아줌마와 자신을 구별 짓는다. '아가씨'도 여성을 얕잡아 보는 단어로 인식돼 요즘 사회에서 쓰지 말아야 말로 취급된다. '아가씨'들도 '아줌마'로 불리면 기분 나빠한다. 아줌마는 마치 '제3의 성별' 취급을 받고 있다.

인천의 한 헬스장이 최근 '노아줌마존'을 선언하고, 영국 공영방송 BBC가 이를 보도하면서 한국의 아줌마들이 국제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헬스장이 붙은 안내문에는 빨간색의 커다란 글씨로 '아줌마 출입 금지'가 쓰여 있다. 헬스장 업주는 안내문에서 '아줌마와 여자 구별법'이라며 8가지 항목을 제시했다. 요컨대 △ 나이를 떠나 공짜 좋아하면 △ 어딜 가나 욕먹는데 왜 욕먹는지 본인만 모르면 △ 대중교통 이용 시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서 가면 △ 커피숍 둘이 가서 한 잔 시키고 컵 달라고 하면 △ 음식물 쓰레기 몰래 공중화장실 변기에 버리면 등이다.

업주 입장에선 진상 고객에 진저리가 날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개저씨'에 대해서도 함께 썼다면 어땠을까? 이를테면 '개저씨와 남성 구별법'으로 △ 러닝머신하면서 가스 분출 △ 남들 손으로 작동 시키는 기구를 발로 눌러 작동 △ 알려달라고도 하지 않았는데 운동법 알려주고 심지어 강요 △ 레깅스 차림 여성 쳐다보고 카톡방에 감상평 공유 △ 뇌는 텅텅 비고 몸만 근육인데 젊은 여성에게 어필되는 줄 아는 착각 등을 적어놓았으면 여성 혐오 논란이 이리 커지지 않았을 것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누가 그들을 아줌마로 만들었느냐는 점이다. 편견과 낡은 관습, 유리천장이 있는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누군가는 아줌마가 돼야 한다. 중년 남성 상사가 여성 접객원이 나오는 가라오케를 여성 직원과 함께 가는 것은 사회적으로 성 범죄를 폭로하는 2018년 '미투 운동' 전만 해도 회식 문화로 이해됐다. 지금도 없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은 아줌마의 '뻔뻔스러움'으로 표정과 정신을 무장할 수밖에 없다. 회식이나 술자리에서 웃기지도 않은 성적 농담을 받아치려면 아줌마의 강성 태도는 필수이다. 말 안 통하는 세상에서 버티려면 말 안 통하는 아줌마가 돼야 한다.

필자가 여섯 살 때 '아줌마'이던 어머니는 화장기 없는 뺨에 눈물을 흘리며 병원 문을 두드렸다. 집에서 뛰어놀던 나는 펄펄 끓는 약 탕기 안에 발을 빠뜨려 발목뼈가 드러날 정도의 심각한 화상을 입은 상태였다. 작은 병원이든 큰 병원이든 "앞으로 걷지 못할 것"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아줌마는 포기하지 않았다. 충주 교현동에 있는 거주지에서 3시간 거리인 외과병원을 찾아냈다. 어머니는 걷지 못하는 나를 들쳐업은 채 집에서 버스를 타고 터미널에 이른 다음 고속버스를 타고 역에 도착한 뒤 병원으로 향하는 순환버스를 탔다. 그렇게 매일 3시간 거리의 병원을 갔다. 화상의 흔적은 여전히 남아 있다. 다만 병원 치료가 끝난 후 35년이 지난 지금까지 걷는 데 아무 지장이 없다. 아줌마의 억척스러움이 만들어낸 '기적'이었다.

mrle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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