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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8 (화)

"이건 전쟁이 아니라 학살이다"…이스라엘은 나치 독일에 무엇을 배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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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kimsphoto@hanmail.net)]
지중해에 맞닿은 중동 팔레스타인 가자(Gaza)는 비전투원들을 마구 죽이는 전쟁범죄가 현재진행형으로 벌어지는 곳이다. 이스라엘 군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생존의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전쟁에서 비전투원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한다는 전시국제법(jus in bello)의 기본 원칙은 내팽개쳐졌다. 하마스 '테러분자'를 소탕한다는 명분으로 이스라엘 군은 비무장 민간인들의 생명과 재산을 훼손해왔다. 이는 무력충돌 때에 민간인 보호를 규정한 제네바협약(1949)과 그 부속협정인 추가의정서(1977)을 어기는 전쟁범죄 행위다.

지난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에 와서 세월호 유가족을 만났을 때다. 누군가 교황에게 '가슴에 단 노란 리본이 정치적이니 떼는 게 좋겠다'고 하자, 교황은 이렇게 말했다. "인간적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다." 같은 맥락에서 팔레스타인을 바라보는 우리 한국인들도 '중립'을 지키기 어렵다. 20세기 전반기 일본제국주의의 만행을 잊지 않는다면, 이스라엘이 내세우는 '국가 안보' 논리보다는 생존의 벼랑 끝에서 '인간 안보'와 '평화적 생존권'을 되찾겠다는 팔레스타인의 목소리가 더 가까이 다가오기 마련이다.

'비례의 원칙' 어긴 대량 학살

어느 전쟁이든 사망자 규모를 둘러싼 또 다른 '전쟁'(통계전쟁)이 벌어지곤 한다. 이번 유혈분쟁도 예외는 아니다. 하마스(Hamas)와 이스라엘의 집계가 다르다. 2023년 10월7일 첫 희생자가 나온 이래 8개월이 다 되가는 지난 5월 말까지 사망자는 3만5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진다(이스라엘 1200명). 팔레스타인 쪽은 여성과 어린이 희생자의 70%를 넘는다고 주장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쪽 다 민간인이 얼마나 죽었는가를 둘러싼 논란은 전부터 늘 있어왔다. 관련 국제기구인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United Nations Office for the Coordination of Humanitarian Affairs, OCHA)는 희생자 숫자를 정확히 밝히는 문제로 머리가 아프다. 이름이 확인된 팔레스타인 사망자는 2만5000명이다. 이스라엘 국방부는 지금껏 하마스 무장대원 1만2000명쯤을 제거했다고 발표했다. 그렇다면 아무리 보수적으로 잡아도 나머지 사망자 1만3000명(최대 2만3000명)은 비전투원인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이라는 얘기가 된다.

지난해 10월 이래 가자지구에서 벌어져온 유혈분쟁의 희생자 규모는 지금까지의 통계 수치를 훌쩍 넘어섰다. 이스라엘 인권단체 베첼렘(B'Tselem, 이스라엘 점령지역 인권정보센터) 집계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1차 인티파다가 일어난 1987년 12월9일부터 (이번 유혈사태 직전인) 2023년 9월30일까지 33년 동안 사망자는 약 1만5000명이었다(https://www.btselem.org/statistics).

이 가운데 팔레스타인 사망자는 1만3200명, 이스라엘 사망자는 1800명이었다. 사망자 비율로 따지면, 이스라엘 사망자 1명 대 팔레스타인 사망자 7.3명(전체 희생자 가운데 팔레스타인 사망자 비율은 88%). 절대 숫자나 비율에서 팔레스타인 쪽이 훨씬 큰 희생을 치렀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이-팔 분쟁으로 팔레스타인 쪽 피해가 크게 늘어남으로써 사망자 비율은 이스라엘 1 대 팔레스타인 15로 바뀌었다.

사람 목숨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귀하기 마련인데, 현실에선 너무 차이가 난다. 이른바 정의의 전쟁(just war) 이론가들이 말하는 '비례의 원칙'(principle of proportionality, 과잉 금지의 원칙, 내가 1대 맞았다고 10대 때려선 안 된다는 원칙)은 이곳에선 찾아보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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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칸 유니스 주거지역은 이스라엘군의 잇단 포격으로 처참하게 파괴됐다. ⓒⒸNaaman Omar / APA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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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 "이스라엘은 중동의 깡패국가"

일반적으로 전쟁 연구자들이 받아들이는 '전쟁의 양적인 개념'은 '1년 동안 전쟁사망자가 양쪽 다 합쳐 1000 명'을 넘는 것이다. ('전쟁의 질적인 개념'은 19세기 초 프러시아 군인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가 말했던, '전쟁은 물리적 수단을 동원한 정치적 관계의 연장'이다. 전쟁은 곧 정치적 갈등에서 비롯된 폭력임을 뜻한다). 전쟁의 양적인 개념 잣대를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유혈분쟁에 들이대면, "이 지역은 2023년에 이어 2024년 두해 거푸 전쟁을 벌여왔다"고 말할 수 있다.

사람들은 동유럽의 발칸반도를 '세계의 화약고'라 일컬어 왔다. '20세기 화약고'가 발칸 반도였다면, '21세기 화약고'는 중동 지역이다. 지난 20여년 동안 이라크, 시리아, 예멘, 리비아 등 중동 지역 곳곳에서 전쟁의 불길이 타올랐다. 특히 팔레스타인은 끊임없이 피를 흘려왔다. 2차례에 걸친 '인티파다 intifada'('저항' 또는 '봉기', 제1차는 1987~1993년, 제2차는 2000~2005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 침공(2009년, 2014년)과 최근의 유혈사태(2023년 10월~현재)가 말해주듯, 피가 피를 부르는 유혈충돌이 이어졌다.

2023년 10월부터 팔레스타인의 지중해변 지역인 가자(Gaza)를 중심으로 벌어진 유혈사태는 21세기의 국제사회가 지혜를 모아 풀어야 할 국제정치적 과제 가운데 하나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인 하마스가 사우디-이스라엘의 외교관계 수립을 막기 위한 전략적 방편으로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했다고 알려졌으나, 뿌리를 캐보면 21세기 이스라엘의 억압과 유대인 정착촌을 확장하는 식민정책이 근본 원인으로 꼽힌다.

21세기에 식민지를 두고 있는 유일한 국가로 꼽히는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공동체를 파괴하고 평화적 생존권을 망가뜨리는 데 그치지 않았다. 걸핏하면 레바논을 비롯한 이웃 중동 국가들의 민간인 주거지와 사회기반시설을 파괴함으로써 '중동의 깡패 국가'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스라엘 뒤에는 친이스라엘 일방주의 정책을 펴온 미국이 있다. 유대인 출신의 미국 지성인인 노엄 촘스키(MIT대 명예교수, 언어학)조차 미국과 이스라엘을 싸잡아 '위험한 깡패국가들'(dangerous rogue states)로 불렀다(https://chomsky.info/20131204/).

'전쟁이 아닌, 일방적 학살'

문제는 두 가지다. 첫째는 팔레스타인 가자 지역에서의 무력충돌이 이-팔 양쪽의 군사력이 엇비슷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해마다 탱크, 전폭기 등을 포함해 최소 30억 달러 규모의 공짜 군사원조를 미국에게서 받아왔기에) 이스라엘 군사력은 하마스에 견주어 압도적이다. UFC 격투기 선수와 동네 어린이의 싸움이나 다름없기에, 전쟁 희생자는 팔레스타인 쪽이 훨씬 더 많다. '전쟁이 아니라 일방적 학살'이란 말조차 나온다.

두 번째 문제는 사망자 가운데 절대 다수가 어린이와 여성, 노인들을 포함한 팔레스타인 비무장 민간인들이라는 점이다. 비전투원 희생자가 늘어나면서 이스라엘의 강공책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이를테면 '일렉트로닉 인티파다'(https://electronicintifada.net) 편집인 모렌 머피는 "지난 6개월 동안 가자 지구에서 이스라엘은 민간인들을 '산업적 규모'로 살해했고, 병원들을 전략적 군사 목표물로, 식량을 전쟁 무기로 만들었다"고 비난했다.

이미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을 '전쟁범죄 국가'로 낙인찍었다. 프란체스카 알바네제 유엔 팔레스타인 인권특별보고관은 이스라엘이 집단학살(genocide)을 저질렀다고 비판하면서 '제노사이드 해부(Anatomy of a Genocide)'라는 제목을 단 보고서를 3월26일 유엔 인권이사회(UNHRC)에 제출했다. 25쪽 분량의 보고서는 '이스라엘의 대량학살 행위가 벌어지고 있음을 나타내는 기준치를 충족한다고 믿을 만한 합리적 근거가 있다'고 결론 내렸다. 이를 바탕으로 유엔 인권이사회는 열흘 뒤(4월5일) 이스라엘의 전쟁범죄 행위를 '우려'하며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판매를 중단하라는 결의안을 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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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레스타인 저항조직 하마스의 정신적 지도자 셰이크 아흐메드 야신. 2004년 이스라엘 헬기가 쏜 미사일에 죽은 그는 “유대인들이 나치에게 배운 짓을 저지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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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타냐후, 이번 전쟁의 '최대 수혜자'

그뿐 아니다. 한 달 보름 뒤인 5월20일 헤이그 국제형사재판소(ICC)가 나섰다. 카림 칸 ICC 수석검사는 팔레스타인 하마스 지도자들과 더불어 이스라엘 지도자들(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을 전쟁범죄자 목록에 올려놓고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미국이란 든든한 후견인을 믿고 있는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ICC 피고석에 서는 모습을 우리가 언젠가 볼 수 있을까. 그럴 가능성은 0%에 가깝다. 강대국 쪽에 줄을 선 지도자가 ICC에 선 전례가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팔레스타인 지역에서의 유혈분쟁은 길어야 1~2개월을 끌다가 휴전으로 포연이 가라앉는 단기전 양상을 보여 왔었다. 이번은 다르다. 이른바 '중동전문가'들조차 이토록 길게 끌면서 심각한 재앙을 낳으리라 내다보지 못했다.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지만, 가장 큰 요인은 하마스와의 휴전안을 거듭 거부해온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고집스런 군사적 강공책이다.

네타냐후 총리에겐 개인비리와 맞물려 이스라엘 안에서도 비판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전쟁이 이어지는 한, (뇌물 등 혐의로 검찰에 기소된 상태인) 네타냐후를 몰아내긴 어려운 일이다. 전쟁을 '국가 안보'가 아닌 '개인 안보' 차원에서 이용하고 있다는 비판과 아울러 '이번 유혈사태의 최대 수혜자'라는 지적이 그래서 나온다. 개인비리 혐의로 정치적 위기에 몰렸던 네타냐후를 살려낸 것이 이번 전쟁이기 때문이다. '네타냐후를 살려낸 구원투수는 하마스'라는 말도 들린다.

이스라엘 국가테러에 맞선 '테러의 균형'

필자는 지금껏 20차례 가까이 중동을 다녀오면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그 과정에서 주요 인물들을 만나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이스라엘 총리를 3차례 지낸 시몬 페레스(1923-2016),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야세르 아라파트(1929-2004), 팔레스타인 하마스의 창립자이자 '정신적 지도자'로 추앙받던 셰이크 아흐메드 야신(1936-2004)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생각을 들어봤다.

이스라엘 정치군사 지도자들의 태도는 팔레스타인과의 유혈충돌을 거듭 할수록 완강해졌다. 이스라엘 외무장관 시절인 1993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길을 열어준) 오슬로 평화협정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던 시몬 페레스도 그러했다. 2000년 필자와의 예루살렘 현지 인터뷰에선 "동예루살렘의 영유권을 비롯한 중요 논의사항은 협의를 통해 풀어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스라엘 대통령(2007-2014) 시절의 그는 "동예루살렘은 나눌 수 없는 이스라엘의 도시"라는 완고한 자세로 돌아섰다. 지난날 그에게 노벨평화상을 안겨준 오슬로 평화협정문은 이미 휴지통에 내버려진 듯한 모습이었다.

이스라엘의 강경책에 맞서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저항의지도 굳어졌다. 특히 가자지구를 '해방구'로 삼은 하마스의 존재감은 아무리 강력한 군사력을 지닌 이스라엘로서도 부담스럽다. 하마스의 투쟁을 이스라엘은 '테러 행위'라 몰아붙여왔다. 하마스의 논리는 다르다.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위한 하마스의 투쟁을 '테러'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이스라엘의 '국가 테러'에 맞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른바 '테러의 균형론'이다.

2004년 3월 새벽기도를 마치고 모스크(이슬람사원)에서 나오던 야신은 이스라엘 아파치 헬기가 쏜 미사일에 맞아 숨졌다. 코피 아난 당시 유엔 사무총장은 "이스라엘의 행위는 국제법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평화적 해결방안을 찾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난했지만,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이스라엘을 감쌌다.

야신 "유대인은 나치에게 배운 짓을 저지른다"

야신이 죽기 전인 2001년 5월과 2002년 5월, 필자는 가자지구 그의 집에서 두 차례 인터뷰를 했었다. 야신은 15살 때 철봉을 하다가 허리를 다쳤다. 이스라엘 감옥에서 8년(1989-1997) 동안 옥고를 치르면서 건강이 악화돼 손과 하반신이 마비됐다. 휠체어에 앉은 그는 "살고 죽는 것은 우리 인간의 의지라기보다는 알라(신)의 뜻에 달려 있다"고 목쉰 소리였지만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역사적으로 보면, 영국이 유대인들을 우리 땅으로 몰아준 게 잘못이고, 지금은 미국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유대인은 나치 학살의 희생자들이지만, 지금 이곳에서 그들이 나치에게 배운 짓을 그대로 저지르고 있다. 대대로 살던 사람들을 쫓아내 난민으로 만들고, 다시 총으로, 대포로, F-16으로 죽이는 것은 국가 테러에 다름 아니다. 그들이 우리의 저항운동을 테러라 부른다면 일종의 '테러 균형'이 이루어지는 셈이다"(김재명, <눈물의 땅 팔레스타인>, 미지북스, 2019년 개정증보판, 292-293쪽).

야신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덧붙였다. "한국도 한때 일본의 식민지였다고 알고 있다. 그 시절 일본에 저항했던 운동가를 당신들은 테러리스트라고 부르는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하마스의 주요전술로 알려진 '자살 폭탄테러'라는 용어가 잘못됐고 '순교'(殉敎) 행위라 주장했다. 야신이 이스라엘 헬기 공격으로 사망하자, UN과 EU를 비롯한 국제사회에서는 이스라엘의 행위를 비난했다. 이스라엘은 '테러 왕초'를 제거했을 뿐이라고 우겼다(2004년 5월말, 야신이 죽은 2개월 뒤 가자지구 야신의 집에 가보니, 미사일에 맞아 불에 타 그슬린 야신의 휠체어가 눈길을 끌었다).

하마스의 시각에선 대이스라엘 투쟁이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위한 민족해방투쟁이다. 하지만 서구의 언론은 팔레스타인의 무장 투쟁을 '테러'(terror)라 몰아붙였고, 이스라엘 탱크가 민간인을 죽이면 '실수'(error)라며 감싸곤 했다. 영어 알파벳 't'가 들어가느냐 빠지느냐에 따라 평가는 180도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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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 철조망. 홀로코스트 유대인 희생자 600만 명 가운데 100만 명이 이곳에서 죽었다고 알려진다. ⓒ김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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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평화의 가장 큰 걸림돌

지구촌 평화와 인권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은 팔레스타인 지역 사람들의 '평화적 생존권'이다. 많은 사람들이 집을 잃고 다시 난민이 됐다. 잠자리도 불편하고 먹거리도 부족하다. 팔레스타인은 1948년 이래 오랫동안 이스라엘의 정치군사적 공세로 고통 받아왔다. 이들이 고전적인 의미에서 '민족 자결'을 외쳐도 이스라엘은 (최대 동맹국 미국의 뒷심을 믿고) 못 들은 체 해왔다.

미 바이든 행정부는 이번 유혈사태 동안에 3차에 걸쳐 유엔 안보리의 휴전안을 막으면서 무기 원조를 이어갔다. 따라서 이스라엘군의 학살을 부추겼다는 지적을 받는다. 지난 트럼프 행정부처럼 예루살렘에다 미 대사관을 옮기는 등 노골적으로, 또한 지금의 바이든 행정부처럼 네타냐후 총리의 강공책에 끌려가며 친이스라엘 정책을 편다면, 중동 평화를 가져오기 어렵다.

결국 중동평화의 길목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유착이다. 미 국제개발처(USAID) 자료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1946-2022년 사이에 무려 3179억 달러의 원조를 받는 최대 미 원조 수혜국이다. 미-이스라엘 공공문제위원회(AIPAC)를 비롯한 유대인 압력단체의 파워와 정치헌금, 공화당-민주당 차이 없는 미 정치권과 언론의 분위기를 떠올리면, 미국의 친이스라엘 흐름이 하루아침에 바뀌길 바라기란 어려운 일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평화를 가져오는 해법은 큰 틀에서 '두 국가 해법'(two-state solution)을 가리킨다. 이스라엘은 땅을 바라는 팔레스타인에게 땅을 나눠주고, 이스라엘은 평화를 되찾는다는 이른바 '땅과 평화의 교환' 원칙이다. 이른바 '오슬로 평화협정'(1993)을 맺을 때 합의했던 원칙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스라엘 강경파들이 그들의 신 야훼(여호아)가 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더러운 아랍놈들'(팔레스타인)과 나눠 갖지 않겠다는 고집이다. 지금의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도 바로 그런 완고한 생각을 지녔다. 이에 맞선 하마스의 투쟁은 곧 땅과 생존권을 되찾기 위한 극한적인 저항이다.

나치 홀로코스트가 남긴 교훈

2024년에도 멈추지 않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민간인 학살은 생각이 깊은 유대계 지식인들마저 분노하게 만들었다. 홀로코스트 연구자인 라즈 세갈(미 스톡턴대, 역사학)은 '대량학살의 교과서 같은 사례'(A Textbook Case of Genocide)이란 제목을 단 글에서 가자 지구에서의 폭력을 합리화하는 것을 '홀로코스트의 교훈에 대한 수치스러운 오용'이라 비판했다(https://jewishcurrents.org/a-textbook-case-of-genocide).

1948년 지구상에 없던 나라가 '이스라엘'이란 이름으로 중동 한복판에 들어선 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지난 80년 가까이 엄청난 고통과 설움을 겪어왔다. 일본 제국주의자들로부터 35년 동안 가혹한 억압과 착취를 겪었던 우리 한국인들의 DNA는 팔레스타인의 분노와 아픔을 다른 어떤 나라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 지난날 침략전쟁을 벌이던 일본인들이라면 이해하기 더딘 대목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자주 들었던 질문이 있다. "유대인들은 나치 히틀러 정권의 독일에게 그토록 엄청난 희생을 치르면서 도대체 어떤 역사적 교훈을 배웠는가?" 하는 질문이다. 힘이 지배하는 세상이니 힘을 키워야 한다는 교훈이라고? 틀린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한 차원 높은 교훈은 어떤 것일까. 힘이 있다고 약소민족을 억누르는 것은 사악한 범죄이므로, 이웃과 타협하며 더불어, 함께 살아가야 참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교훈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지금 가자에서 저질러지는 이스라엘의 전쟁범죄 행태를 보면, 그런 교훈과는 거리가 멀다.

인권 말하지만 '유대인만의 인권'

이스라엘은 물론 독일, 폴란드, 미국에는 '홀로코스트 뮤지엄'(Holocaust Museum)이란 이름의 전시관들이 곳곳에 있다. 추모관, 기념관 등등 이름은 조금씩 다르지만 내용은 같다. 유대인이 어떻게 잡혀가고 어디서 얼마만큼 끔찍한 박해를 받았는가를 보여주는 공간들이다. 피해 당사자인 유대인이 아니더라도, 그런 전시관들을 돌아보면 마음이 무겁고 슬퍼진다. 그리고 유대인들의 고난을 보면서 희생자들의 넋을 빌기 마련이다.

이스라엘 예루살렘 헤르츨 언덕에는 아주 잘 만들어진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관이 있다. 야드 바셈(Yad Vashem) 국립기념관이다. 몇 해 전에 그곳 입구에 들어서자말자 놀랐다. 입장료만 비싸고 전시물은 허전한 다른 곳들과는 격이 달랐다. 현대적인 건축 기법에 조명과 사운드, 시청각적인 효과들을 더해 볼거리가 엄청 잘 정리돼 있다.

지난날 사진 자료도 풍부하고,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생생한 증언과 표정이 비디오 화면을 메운다. 이쪽 공간에서 저쪽으로 넘어가면 또 다른 볼거리가 관람객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안에서 사진을 못 찍도록 엄격하게 막아서는 바람에 유감스럽게도 그곳 사진이 없다). 서너 시간 동안 보고난 뒤 출구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지켜봤다. 대체로 얼굴들이 불그스레 상기돼 있었다. 눈가가 촉촉한 사람도 보였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한 유대인 젊은이에게 다가가 물어봤다. 전시관에서 배운 역사의 가르침이 있다면 그것이 뭐냐고. "우리 유대인들이 저토록 고난을 겪은 만큼, 앞으로 저런 상황이 다신 오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걸 느꼈다"고 했다. 인권은? 하고 물으니, "인권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다"는 얘기도 했다.

인권 질문은 '낚싯밥' 같은 것이었다. 곧바로 "그렇다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인권은 어떻게 보느냐?"고 물었다. 그의 얼굴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휙 돌아서 가버렸다. 그가 말하는 인권은 '유대인만의 인권'이었던 셈이다. 내 민족이 겪었던 지난날의 고통을 떠올리면서 나와 다른 민족, 타자의 고통을 생각하는 최소한의 배려는 찾아보기 어렵다.

'피해자 기억'만 강조하는 '가해자'

지난날 대량학살(홀로코스트)를 겪었던 유대인들은 오늘날 더 이상 피억압자가 아니다. 오히려 피해자들을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전쟁범죄자이자 가해자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지니게 됐다. 이스라엘은 1948년 이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지구촌의 최대 난민집단으로 만들었다(최근에 나온 유엔난민기구UNHCR 보고서 <Global Trends Report 2023>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난민은 600만). 뿐만 아니라 땅을 되찾고자 하는 민족주의적 열망을 탱크와 공습으로 뭉개왔다. 그러면서 '중동판 홀로코스트'를 자아냈다.

'약자를 힘으로만 뭉개면 평화는 없고, 더불어 살아가려는 노력만이 평화를 일궈낼 수 있다'는 것이 히틀러가 남긴 단순 명쾌한 교훈이라 여겨진다. 나치 독일의 폭력은 20세기 중반에 벌어졌던 '국가테러'였다. 이로 말미암아 유대인들은 600만이 죽었다 주장한다. 이스라엘은 21세기에 '중동판 국가테러'이자 '중동판 홀로코스트'를 저지르는 '가해자'이면서 지난날 히틀러가 남겼던 역사의 교훈을 제대로 되새기지 않는다. 오로지 '피해자 기억'만 강조할 뿐이다.

이런 답답한 상황을 바탕에 깔고 앞으로 4개월 동안 나치 독일의 전쟁범죄와 홀로코스트를 둘러싼 여러 관심사항들을 다뤄보려 한다(16회 분량 예정). 이를테면, △독일의 평범한 시민들은 왜 히틀러를 지지했을까, 패전 뒤엔 생각이 바뀌었을까. △괴테의 문학전집을 읽고 베토벤의 음악을 즐겨 듣던 독일인들이 민간인 학살에 망설임은 없었을까. △유대인들은 왜 유럽의 백인들로부터 미움을 받아 왔는가. △유대인 600만 명이 죽었다는데, 혹시 부풀려진 것은 아닐까.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들은 무슨 근거로 '유대인 학살은 없었다'는 주장을 펴는 것일까.

△1960년 아르헨티나에서 납치돼 예루살렘 재판 뒤 처형된 아돌프 아이히만은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표현대로)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악역을 충실히 해냈던 평범한 독일장교였나. △이른바 '홀로코스트 산업'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가짜 홀로코스트 생존자'는 어떻게 이득을 챙겼나. △과거사 문제를 둘러싸고 일본과 여전히 껄끄러운 동아시아에 견주어 독일 이웃나라 프랑스, 폴란드와의 역사 화해(교과서 포함)는 잘 이뤄졌나 등이다.

유대인 지식인들은 나치의 야만적 광기를 어떤 눈길로 바라봤을까. 뜬금없는 남의 나라 이야기가 되지 않도록, 되도록이면 우리가 두 발을 딛고 사는 한반도와 일본 문제에 연결시켜 독자들과 함께 생각해보고자 한다.(계속)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kimsphot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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