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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3 (일)

조직과 신념 사이··· 직딩의 '정치 활동' 어디까지 허용될까 [World of 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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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of Work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속 분열된 미국

친팔레스타인 지지에 고용취소·해고 줄이어

"정치 휘말리기 싫다" 기업 입장 이해되지만

침묵만이 정답은 아냐···서로 합의점 고민해야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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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 직장인들이 ‘일로 만난 사이’라는 점에 서로 동의한다면 일에 방해되는 예민한 이슈는 처음부터 꺼내지 않는 편이 좋다. 그러나 우리는 정치적으로 격렬한 나라에 살고 있고, 누구에게나 물러설 수 없는 정치적 신념도 하나쯤 있을 것이다.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공간이 바로 이곳 직장이기에 내 신념을 건드리는 일과 맞닥뜨릴 확률도 그만큼 높아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런 내 정치적 신념이 내 커리어에 방해가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실제 최근 미국·유럽에서는 소셜미디어 계정에 정치적 견해를 표현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거나, 고용이 취소되거나, 심지어 해고되는 일들이 점점 더 잦아지는 중이다. 월급쟁이라면 개인의 말할 자유에 대한 조직의 간섭까지 순순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조직의 규칙을 일방적으로 따르게 하는 것이 장기적 조직 문화에도 과연 바람직할까.

“지나친 신념은 부담”…고용취소·해고하는 美기업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는 뉴욕대를 졸업 후 국제 로펌 입사를 제안받았지만 지난해 가을 결국 채용이 철회된 라이나 워크맨의 사례를 소개했다. 학생변호사협회 회장이었던 워크맨은 지난해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습 후 “이스라엘이 이 사태에 책임이 있다”는 취지의 친팔레스타인 성명을 발표했고 이를 알게 된 고용주의 반발을 샀다. 법률회사 윈스턴앤드스트로우는 “회사의 가치와 심각하게 충돌한다”며 그의 채용을 취소한 것이다. 다른 학생들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여러 로펌과 기업들은 비슷한 친팔레스타인 행보를 보인 하버드와 컬럼비아 학생 여러 명의 채용을 취소했고 지원자의 소셜미디어 게시물을 더욱 철저히 살피고 신원 조사를 강화하는 활동을 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FT는 가뜩이나 얼어붙은 취업 시장에서 고용주들의 이런 변화는 졸업생 집단에 큰 압박이 되고 있다고 봤다. 실제 전미 대학 및 고용주 협회는 올해 신규 졸업생 채용이 지난해 대비 5.8% 감소해 10년 만에 최대 낙폭을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FT는 “특히 가난한 배경을 가진 많은 학생들이 채용 자격을 잃을 우려로 시위에 참여하는 것을 피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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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견해차를 이유로 채용을 철회한 이 일련의 사건들은 조직 내 정치 활동에 대한 갈등을 다시 수면 위로 떠올렸다. 이런 갈등을 극단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바로 구글이다. 구글은 지난 4월 이스라엘 정부와의 클라우드 컴퓨팅 계약에 반대해 시위했던 28명의 직원을 해고했다. 앞서 구글은 2020년 ‘BLACK LIVES MATTER(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와 같은 인종 문제에 관해서는 공개적으로 연대 의사를 밝히는 등 다양한 의견이 오가는 개방적인 사내 문화를 자랑해온 곳이다. 또 2018년에는 “내 노동력이 대량 학살을 돕는데 쓰이는 것에 반대한다”는 직원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군사 무기용 인공지능(AI) 기술을 만들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구글은 변했다. 구글의 최고경영자(CEO) 순다르 피차이는 직원들에게 “우리는 일하고, 토론하고, 심지어 동의하지 않는 방식에도 더 집중해야 한다”며 “지금은 회사로서 한눈팔기에는 너무 중요한 순간”이라고 선언했다.



“골치 아픈 문제에 휘말리기 싫다”···기업들의 속내

기업들이 정치에 선을 긋는 이유는 어쩌면 단순하다. 굳이 골치 아픈 문제에 휘말리기 싫다는 것이다. 선명한 정치적 견해를 지닌 한 사람이 목소리를 높인다면 다른 쪽의 목소리도 커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런 일은 반드시 갈등으로 이어진다. 기업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자문을 제공하는 ‘번스타인위기관리’의 설립자인 조나단 번스타인은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인터뷰에서 “몇몇 고객사가 가자지구 전쟁부터 미국 정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슈로 이메일과 메신저로 직원들과 계속 다투고 있다”며 “기업 리더들은 대중의 반발, 그리고 이사회에 대해 매우 우려한다”고 설명했다.

시위의 내용에 따라 직접적인 불쾌감을 느끼는 직원들이 나올 수 있다는 점도 위험 요소다. 직장 내 친팔레스타인 시위가 활개를 치는데 회사가 그대로 둔다면 정통 유대교 신자인 직원들은 모욕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구글의 CEO 순다르 치파이도 시위를 한 직원들을 신속하게 해고한 이유에 대해 “동료에게 방해가 되거나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게 하는 방식으로 행동하거나 회사를 개인적인 플랫폼으로 이용하려는 시도를 내버려둘 수 없다”고 설명했다. 직장 내 갈등을 방지하는 건 생산성에도 중요하다. BBC에 따르면 베이스캠프라는 협업툴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는 37Signals는 2021년 직원들에 정치 토론을 자제하자는 정책을 세웠고 3년 간 이어오고 있다. 이 결정은 한때 직원의 3분의 1이 관두는 등 문제를 낳기도 했지만 제이슨 프리드 CEO는 “그때도 옳은 결정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올바른 결정”이라고 말한다. 그는 “지금 우리는 주제에서 벗어난 대화는 하지 않고 프로젝트 관리 소프트웨어 구축이라는 본연의 업무에만 집중하고 있다. 우리는 정치 때문에 멈추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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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한 이유는 역시 수익일 것이다. 특정 정치적 스탠스를 취하는 게 기업 이미지와 수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여러 사건들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실제 지난해 안호이저-부시 인베브는 ‘버드라이트’의 마케팅 프로모션 모델로 트랜스젠더 인플루언서를 고용해 LGBT와 관련된 정치적 메시지를 보내다가 격렬한 불매 운동에 시달렸고 매출도 급락했다. 최근 스타벅스의 한 노조 지부가 가자지구를 둘러싼 철조망을 불도저로 뚫는 이미지를 트윗하자 스타벅스 본사가 즉각 이 노조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는데, 이들 기업의 전례를 밟지 않기 위해서일 것이다. 스타벅스는 노조가 스타벅스의 브랜드로 사람들에게 잘못된 이미지를 심어주고 있다는 점에 강하게 반발했다.



정치에 침묵하는 것만이 정답일까.

정치는 빼고 일만 하자는 취지는 좋다. 하지만 정치와 사회 이슈에 계속 침묵하는 것이 언제나 정답일 수는 없다. 이른바 MZ로 불리는 젊은 인재들의 경우 ‘올바른 일’을 위해 더 나은 조건의 일자리를 포기하는 일이 결코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일례로 기후 행동과 같은 영역을 보자. 딜로이트가 44개국 약 2만 3000명의 MZ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최근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젊은 직원의 약 20%가 환경 문제 때문에 직업이나 업종을 바꿨다고 답했다. 또 70% 이상이 구직 시 친환경 자격 증명과 회사 정책이 중요하다고 응답했으며, 회사가 지구 온난화에 관해 조치를 취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다는 20대 근로자가 전체의 54%를 차지했다. FT의 칼럼니스트 필라타 클락은 “기업이 기후 행동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며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필요한 젊은 인력을 고용하고 유지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질 수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정치가 우리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옥스포드대 사이드비즈니스스쿨의 부연구원 메간 라이츠는 FT에 “(정치 이슈로 해고가 되는) 이런 일들은 직장 내 우선 순위와 문화를 둘러싼 세대 간 긴장을 보여주는 것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관리자와 리더들은 많은 (정치적) 문제를 업무 외적인 영역으로 보지만 젊은 세대는 업무의 시작과 끝에 관해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며 “젊은 세대는 직장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기를 기대하며 우리도 지금까지 그들에게 직장에서 그럴 수 있다고 말해왔다”고 설명했다. 테소 부교수 역시 BBC에 “정치는 점점 더 정치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며 “개인의 의견은 직장에도 파급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으로서는 우수 인재를 유치하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조직 내 정치적 대화와 압력까지 잘 관리를 해야 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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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직원들 역시 개인의 신념을 이유로 직장 내 불필요한 갈등을 초래할 정치 논쟁은 삼가는 편이 아무래도 바람직하다. 특히 정당 정치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고 이 주제의 토론은 서로의 기분을 손쉽게 망칠 수 있다. 실제 지난해 9월 발표된 퓨리서치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 정치를 한 단어로 설명해 달라’는 질문에 79%의 응답자가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했고 단 2%만이 긍정적인 단어를 썼다. ‘분열을 초래하는(divisive·8%)’, ‘부패한(corrupt·6%)’ 등의 단어가 가장 많이 나왔고 나머지 상위 15위도 ‘지저분하다(messy)’, ‘망가진(broken)’ 등 부정적 단어만이 가득했다.

만약 결코 물러설 수 없는 개인의 신념이 있다 하더라도 조금 더 배려 있는 표현 방식을 취할 필요도 있다. 최근 캠퍼스 시위로 몸살을 앓았던 UC버클리의 전 총장 캐롤 T 크리스트가 뉴욕타임스(NYT)와 진행한 인터뷰에 귀 기울여 보는 것도 좋겠다. 크리스트 교수는 학생들의 시위를 존중한다면서도 “언론의 자유는 절대적인 것이지만, 말할 권리가 있다고 해서 그 말이 옳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모두는 자신이 처한 상황과 관련해 발언할 때 검열을 한다”며 “커뮤니티를 소중히 여긴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불필요하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견해를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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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우리는 하루의 많은 시간을 직장에서 보내고 ‘일의 기쁨과 실망’ 속에서 몸부림치곤 합니다. 그리고 이는 옆 나라와 옆의 옆 나라 직장인도 매한가지일 겁니다. 먹고 살기 위해선 결코 피할 수 없는 ‘일 하는 삶’에 대해 세계의 직장인들은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요. 앞으로 매주 토요일 ‘The World of Work’를 통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글로벌 미생들의 관심사를 다뤄보겠습니다.



김경미 기자 km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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