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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조용헌 살롱] [1449] 주대환 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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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지난 2009년 3월 27일 서울 종묘 앞 공원에서 열린 ‘월남 이상재 선생 82주기 추모회’ /조선일보 DB


“어디에서 만날까요?” “종묘 앞에서 보죠. 월남(月南) 이상재(李商在·1850~1927) 선생 동상 앞에서 만나죠.” “왜 이상재 선생 동상 앞입니까?” “당대의 어른이었습니다. 아들 같은 세대들을 보호하고 잘 이끌었고, 미래 대한민국이 나아갈 방향의 초석을 닦아 놓은 인물입니다. 이승만은 그가 키운 아들이라고 봐도 됩니다.” 이를테면 이승만, 안창호, 이동휘(임정 국무총리)가 모두 월남 선생이 후원한 세대들이라는 것이다. 그 손자 세대에 조봉암, 박헌영이 해당된다.

특히 이승만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다. ‘도꼬다이’ 기질의 이승만에 대해서 여러 가지 안 좋은 이야기가 나오면 ‘그래도 이승만 정도 인물이 흔치 않다. 봐줘야 한다’고 주변의 불만들을 다독거린 게 월남이라고 한다. 이승만이 프린스턴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을 때 바로 귀국을 시켜 이승만이 전국을 돌며 순회 강연을 하도록 계획을 짠 것도 월남이다. 이 전국 순회 강연이 이승만의 대중적 인지도를 높여 스타로 떠오르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나의 20대를 지배했던 관심사를 유대교의 지파에 비교하면 에세네파(Essenes)였다. 전국의 바위 봉우리와 암굴, 그리고 도사들을 찾아다니며 산신령과의 접신(接神)이 인생 성공하는 것이라고 여겼으니까 말이다. 나에게 월남 선생 동상 앞에서 만나자고 하는 주대환(70) 선생. 그는 사회운동 한다고 4차례나 감옥을 들락거린 ‘열심당(Zealot)’으로 살았지만 이제 그 상처가 발효되어 삶의 경륜으로 승화된 삶이다.

서로 노선이 달랐던 열심당과 에세네가 만나도 교집합은 있다. 동시대에 같이 사니까 말이다. 한세상 살면서 흘리는 피, 땀, 눈물은 열심당도 흘리고 에세네도 흘린다. 접신파도 생각대로 접신이 안 되고 실패해서 많은 좌절감과 눈물을 흘리기 마련이다. 전공이었던 ‘접신’과 ‘혁명’이라는 주제를 떠나서 서로 교감할 수 있는 주제는 어른이었다.

꼰대와 어른의 차이는 무엇인가? 들을 이야기가 없고 피곤하면 꼰대이고, 도움이 되는 지침을 줄 수 있으면 어른이다. 주대환이 10년 전쯤 ‘좌파논어’라는 책을 내면서 나에게 했던 말이 기억난다. ‘공자는 실패한 좌파 정당의 리더였다. 공자가 흔들릴 때마다 그 곁을 떠나지 않고 지킨 사람이 안연이다’ ‘한국이 이만큼 온 것은 조봉암의 토지개혁 덕택이고, 조봉암을 보증 서줬던 게 재벌이었던 인촌 김성수였다’. 1948년을 대한민국 시작으로 보면 이제 76년이다. 이제 76년의 한국 역사를 자랑스럽게 써내야 한다는 게 월남 동상 앞에서 그가 나에게 한 말이다.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컨텐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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