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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심찬구의 스포츠 르네상스] 늙어가는 야구팬… KBO의 새 돌파구를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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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원래 정적이고 보수적 스포츠… 미국 MLB도 팬 노령화 고민

AI 심판, 베테랑은 투덜대지만 젊은 선수·관중 “일관성 있다, 환영“

제한 시간 투구로 속도감 높이고 OTT 중계로 2030 유혹… 반응 주목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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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4일 괴물 투수 류현진이 KT위즈와의 원정 경기에서 5이닝 7실점을 하며 패전 투수가 되었다. 미 프로야구(MLB)에서 복귀한 이후 좋은 결과를 못 내고 있던 그였지만 이날은 유독 표정이 안 좋았다. 경기 후 그는 ABS(자동 투구 판정 시스템)에 대해 “경기마다 기준이 다르고, 볼이 될 것은 스트라이크가 되고, 스트라이크가 될 것은 볼이 된다”며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KBO(한국야구위원회)는 100마이크로미터 단위의 측정치와 판정 메커니즘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며 반박했다. KBO가 24시즌 세계 최초로 도입한 인간 심판 대신 AI가 스트라이크 여부를 판정하는 ABS를 둘러싼 논란이다.

조선일보

그래픽=백형선


24시즌 KBO는 또한 경기 시간 단축을 목표로 투수가 마운드에서 제한 시간 내로 투구를 할 것을 강제하는 규정인 피치 클록(pitch clock)을 시범운영 중이다. 타자의 타석에서의 타임 횟수와 투수의 주자 견제 횟수 등도 제한된다. KBO는 2000년대 들어 평균 경기 시간이 한 번도 3시간 이내였던 적이 없다. 또 하나의 큰 변화는 OTT 매체인 티빙과의 미디어 파트너 계약이다. 새로운 형태의 플랫폼의 콘텐츠 유통 방식과 서비스 혁신에 따른 소비자 확대 기대가 크다.

새로운 시도의 배경에는 과거에 비해 위축된 야구 관심도와 팬 평균연령에 대한 고민이 있다. 2024년 3월 한국갤럽에 의하면 야구 관심도는 2013년 44% 대비 2024년 39%에 머물렀다. 주소비자는 5060남성으로 60%를 상회하는 관심도를 보여준다. 세부 지표를 보면 2030팬의 관심도는 30% 전후이고 2030여성층 관심도는 20% 초반에 불과하다. 미국도 야구팬의 노령화는 풀어야 할 숙제다. 포브스에 따르면 2020년 MLB 관중 평균연령은 59세로 NBA의 43세를 훨씬 상회한다.

조선일보

그래픽=백형선


MLB는 단조로워지는 게임 스타일, 느린 진행, 보수성 등을 젊은 팬 유입의 장애 요인으로 분석했다. ‘데이터 스포츠’를 지향하던 미국 야구는 도루나 작전 등의 승리 기여도를 확률적으로 입증 못 하자 강속구와 장타에 집중했다. 그 결과 필드 액션이 밋밋해지고 게임이 단순해졌다. 재미없는 야구가 젊은 팬들의 이탈로 이어지자 MLB는 23시즌부터 베이스 크기를 종횡 7.6㎝ 늘리면서 타자와 주자에게 유리한 조건을 조성, 도루와 안타의 가능성을 높였다. ‘이기는 상황에서의 도루 자제’라는 불문율도 버렸다.

동시에 피치 클록을 도입하면서 빠른 진행을 추구했다. 최고 흥행 구단 LA다저스는 3시간이 넘던 경기 시간을 30분가량 줄였다. 빠르고 다양한 액션은 흥행으로 이어졌다. 23시즌 MLB는 유망주 38명을 데뷔시켰고, 마이너리거 55명을 콜업하는 등 젊은 선수들의 비율이 역대급으로 커졌는데, 빠른 경기 템포와 다이내믹한 필드 액션에 능한 젊은 선수들에게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었기 때문이었다.

더그아웃 사이니지(Dugout signage. 선수 대기석 광고) 도입으로 선수들의 노출 범위를 확대한 것도 눈에 띈다. 야구에서 내밀한 장소로 여겨졌던 더그아웃에 카메라를 들여와 팬들의 시선을 유도, 광고 타임에 불과했던 공수 교대 시간을 선수들의 스토리와 경기 외적인 액션이 표현되는 또 다른 콘텐츠로 만들었다. 빅리그 2년 차에 20개 브랜드와 스폰서 계약을 체결한 22년 신인왕 훌리오 로드리게스 등 젊은 스타들의 마케팅성과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야구는 전통적으로 보수적인 이미지의 스포츠다. 선수들의 포지션과 역할이 고정되어 정적인 종목이며, 다양한 이론과 불문율이 많다. 선수들의 감정 표현도 억제된다. 보복성 빈볼이나 폭력이 개재되는 벤치클리어링도 자주 발생한다. 이러한 점들이 야구의 매력으로 간주되었고, 긴 경기 시간과 이닝 간격도 광고를 수익 모델로 하는 전통 매체 특성상 상업적으로 유리한 점으로 해석되었다. 아버지 옆에 앉아 TV를 보면서 룰과 이론을 배우고 거리에서 캐치볼을 하며 야구를 체화했던 세대와는 달리 오늘날 도시 소년들은 그만한 시공간이 없어 야구 소비자가 되는 경로가 과거의 방식과 같을 수 없다.

KBO 혁신의 키워드는 공정함과 객관성, 빠른 템포와 속도감, 새로운 매체와 소통 방식 등이다. ABS 도입으로 나타난 현상은 25세 이하 투수와 타자들의 성과 향상이다. 유명 선수들에 대한 편향 판정, 심판들의 특성을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는 베테랑들이 유리할 수밖에 없는 ‘사람 변수’가 제거되자 신인급 선수들의 성과가 어느 시즌보다 두드러지게 된 것이다. 올드 팬들은 낭만이 없어졌다고 아쉬워하기도 하나 젊은 팬들은 경력, 이름값 등에서 자유로운 ‘공정한 가치 평가’에 방점을 두어 반색한다.

피치 클록 도입으로 투수와 타자, 주자 간의 수싸움은 줄었으나, 한층 개선된 속도감은 최신 미디어 환경과 팬들의 콘텐츠 소비 패턴에 적합하다. 티빙과의 파트너십으로 OTT 플랫폼에 익숙한 젊은 팬들에게 접근성이 확보되었다. 편성의 개념이 다른 플랫폼 특성상 라이브 혹은 VOD로, 또 원하는 디바이스로 시청하는 다양성이 확보되었고, 파생 콘텐츠의 2차적 생성이 용이해 콘텐츠가 새로운 방식으로 소비될 수 있다. 드라마, 영화 중심의 2030 OTT 소비자들이 야구팬으로 흡수될 것도 기대된다. 복잡한 룰과 불문율 등은 숙제다. 축구에서 세리머니는 선수들의 개성과 자기 표현을 보여주는 팬 서비스인데 야구에서는 빈볼과 벤치클리어의 사유가 된다. 코로나 시기 KBO의 ‘빠던’이 MLB 팬들에게 통쾌함을 주었던 것이 시사하는 바가 있다.

미래로의 지속을 위해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 내 눈앞에 환호하는 팬들이 먼저 보여 스스로의 시대착오나 소비자의 노령화를 인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눈앞의 우호적인 대중이 실제로는 소수일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보수적인 스포츠인 야구가 현재의 균열을 인정하고, 과감히 버리면서 미래 세대의 눈높이와 소통 방식에 맞춘 혁신을 통해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고자 변화하는 모습은 현재를 지키려고만 하기 쉬운 우리에게 좋은 시사점을 준다.

[심찬구 스포티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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