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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이슈 인공지능 시대가 열린다

AI가 복제한 77세 정치학자, 말투까지 따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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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하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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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하영선 교수입니다. 여러분께 국제정치 관련 깊이 있는 지식을 제공하길 기대합니다.”

지난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아시아연구원. 대형 스크린에 띄워진 인공지능(AI) 챗봇은 자신을 하영선(77·외교학 전공)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라고 소개했다. 하 교수의 희수연(喜壽宴)을 맞아 그의 제자들은 생성형 AI 모델 ‘GPT-4o’(포오) 기반으로 제작한 AI를 선물로 준비했다. 동아시아 국제정세 분야 석학인 하 교수가 펴낸 단행본 13권, 140여 편의 논문, 기고문 등을 전부 학습한 ‘하영선 AI’다.

참석자들이 ‘북핵에 대한 입장이 뭔가’라는 질문에 하영선 AI는 “생존권, 발전권, 통합억제 시스템 등 세 가지 차원으로 구분한 뒤 답변하겠다”며 하나씩 설명한 뒤 “북한의 핵 보유 비용을 극대화해 자발적으로 포기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 교수의 평소 지론과 일치하는 답변이었다. 추론을 요구하는 질문에도 막힘이 없었다. ‘하 교수 학문에서 중요한 개념이 뭔가’라고 묻자, “국제 정치의 다차원성을 설명하는 ‘복합세계정치’와 ‘늑대거미 모델’이 핵심”이라고 답했다. 하 교수의 저작물을 2000년 이전과 이후로 나누고 AI에 각각 따로 학습시켜 젊은 하 교수와 노년의 하 교수가 AI로 대리 토론하는 것도 가능했다. 나이가 들며 조금씩 바뀌었던 가치관의 차이를 AI가 잡아냈다는 의미다. 하 교수의 목소리가 담긴 동영상을 학습한 AI도 있었다. 음색이나 “음…” 하면서 뒤를 내리는 말 습관까지 현실의 하 교수와 유사했다.

이날 자신의 AI를 본 하 교수는 “북한 문제는 90% (내 견해와) 비슷한 것 같고, 미·중 관계는 60~70% 정도다. 어떻게 묻는지에 따라 답변 수준이 다르니 질문하는 실력이 중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AI를 학습시킨 하 교수의 서울대 외교학부 제자 공훈의 고도화사회이니셔티브 대표도 “같은 내용이라도 입력 순서, 자료의 구조화 여부에 따라 AI 성능 격차가 크다”며 “특정인의 저작물에만 기반해 답을 하고 다른 자료는 섞이지 않도록 하는 게 쉽지 않았다”고 했다. 하영선 AI 아이디어는 배영자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냈다. 하 교수가 “(원로교수들이 받는) 초상화 같은 아날로그 선물은 준비하지 말라”고 했고 미래 지향적인 뭔가를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배 교수는 “AI가 지식인과 대중 사이에 접점이 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철웅 기자 kim.chulwo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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