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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외국인 근로자 16만명 몰려왔는데… 지원센터 예산 삭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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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가는 다문화 노동 정책

조선일보

내 차례는 언제… - 16일 인천 남동구 인천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의 모습. 상담을 받기 위해 몰려든 외국인 근로자들로 가득 차 있다. 센터 직원 수가 줄면서 상담을 받으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구동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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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후 3시 인천 남동구 인천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 교실 면적(90㎡) 남짓한 공간에 60명 넘는 외국인 노동자가 들어차 있었다. 출국 만기 보험 예상 수령액을 알아보려고 오후 1시쯤 센터를 찾았다는 필리핀인 헤이젤(33)씨는 두 시간을 기다린 끝에야 상담을 받을 수 있었다. 한국인을 고용하지 못해 ‘고용 허가제’를 통해 입국한 비전문 외국인 노동자(E-9 비자) 숫자가 지난해 16만명으로 사상 최다를 기록했지만 예산 삭감으로 대응에 어려움을 겪는 현장이었다.

네팔인 힘시커 번다리(25)씨는 “비자 변경과 일상생활과 관련한 상담이 잘 이뤄지지 않아 너무 불편하다”고 했다. 캄보디아인 금차읏(32)씨는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업주가 얘길 안 해줘서 휴가의 존재 자체를 몰랐는데, 관련 상담을 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어눌한 한국어로 본지 인터뷰에 응한 이들이 불편을 호소한 이유는 지난해 전국 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 관련 예산 71억원 전액 삭감에 따른 행정 혼선 때문이다.

정부는 최근 외국인 근로자 입국자 수가 급증하는 등 정책 환경이 급변하다 보니 2000년대부터 20년 가까이 민간 단체 등이 운영해온 센터에 대한 정부 보조금 71억원을 전액 삭감했다. 이후 일선 센터를 폐쇄, 고용노동부가 외국인 노동자 고충 상담을 맡고,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산업인력공단이 교육을 맡는 취지로 제도를 개편하려 했던 게 정부 구상이었다.

조선일보

그래픽=이진영


하지만 이후 노동 현장에서 반발이 일어났고, 정부는 다시 급히 예산을 끌어모아 민간 운영 센터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센터당 6억원이 넘었던 예산은 4억원 수준으로 줄었다. 정부는 정책 효율성을 기하겠다는 취지로 개편을 추진했다지만, 현장의 혼란은 상당했다. 센터에서 상담·교육은 물론, 일상의 애로사항까지 일원화해 외국인 노동자들의 고충을 처리하던 노하우를 무시한 결과란 지적이 나왔다.

이런 까닭에 예산과 인력이 줄어들었음에도 일선 센터 업무는 과거와 비교해 큰 차이가 없다고 한다. 김재업 인천센터장은 “직원은 13명에서 6명으로 줄었고, 6명이던 상주 통역 직원은 현재 3명에 불과하다”며 “업무량은 비슷한데 인력이 적어서 오후 8~10시까지 야근을 밥 먹듯이 한다”고 말했다. 창원과 대구는 각각 15명과 12명에서 6명이 됐고, 충남도 13명에서 6명으로 줄었다. 일선 현장에선 고용부가 상담을, 공단이 교육을 분담하겠다는 개편 취지가 전혀 구현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다.

신혜영 대구센터 운영교육팀장은 “고용부가 상담 업무를 가져갔지만, 행정 상담 수준에 그치고 있어 외국인 노동자들이 다시 지원센터를 찾아오고 있는 실정”이라며 “이 때문에 제도 개편 전과 동일하게 상담, 교육, 문화 행사, 특성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개편 전엔 외국인 노동자들이 센터에서 상담과 교육을 원스톱으로 받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두 곳을 왔다 갔다 해야 해서 힘들어한다”고도 했다.

이 와중에 민간이 운영하던 일선 센터는 임차료 추가 부담이라는 짐도 짊어졌다. 대구센터는 올해부터 1년 5500만원에 달하는 임차료를 고용부에 지불하고 있다. 고용부는 “제도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지자체가 지원센터를 운영하는 형식으로 전환됐기 때문에 국유재산법에 따라 징수를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신 팀장은 “센터 입장에서는 임차료만 없어져도 사업비를 확보할 수 있어 근로자들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데 현재 상황은 큰 압박”이라고 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외국인 근로자 교육을 맡겠다고 했지만 한국어 교육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41개 민간 직업훈련기관에 위탁을 한 것도 문제다. 창원지원센터 관계자는 “지원센터는 수준별로 12개 반이 운영되는 데 반해 직업훈련 기관은 2개 반에 불과해 수준별 학습도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기관에서 한국어 강사와 교재도 구하지 못해 지원센터에 거꾸로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고 했다.

센터를 찾는 외국인 근로자를 응대할 직원과 상주 통역가 수도 반 토막이 났다. 인천지원센터는 상담과 교육을 받으러 온 외국인 근로자가 일요일 하루에만 500명 이상이 찾지만 인력은 이전에 비해 50% 줄었다. 정부 관계자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큰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정책 효율성을 높이겠다”고 했다.

[구동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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