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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마스크 한장으로 24시간 돌봤는데…오세훈 취임 후 모두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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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기자(ama@pressian.com)]
한국은행이 지난 4월 발표한 돌봄서비스 보고서를 보면, 돌봄 인력 부족 규모는 지난해 38만~71만 명이었다. 이는 2042년 61만~155만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돌봄 인력난 해소를 위한 일자리 질 개선이 사회적 과제로 떠오르고 있지만,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다. 돌봄 서비스의 99%를 민간이 맡고 있기 때문이다.

상황을 타개할 거점 중 하나가 2019년 출범한 서울시사회서비스원(서사원)이었다. 서울시 산하 공공돌봄기관인 서사원은 '좋은 돌봄은 좋은 일자리에서 나온다'는 기조 아래 돌봄 노동자를 직접고용하고, 서울시 생활임금에 기초해 급여를 지급했다. 민간이 맡기를 꺼리는 돌봄 이용자를 위한 '탄탄하고 빈틈없는 서비스 제공'도 목표로 삼았다.

그런 서사원이 설립 5년 만에 폐원될 전망이다. 국민의힘이 주도하는 서울시의회는 지난 4월 26일 서사원 폐지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이어 서사원 이사회가 5월 22일 해산을 의결했고, 하루 뒤 오세훈 서울시장이 이를 승인했다. 시의 청산계획에 따라 오는 7월 31일이 되면 서사원은 문을 닫는다.

시민사회와 노동계에서는 반대 움직임이 일고 있다. 공공운수노조와 '서사원 폐지 저지와 공공돌봄 확충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지난 10일부터 서사원 사수와 돌봄 노동자 고용 보장을 목표로 서울시의회 앞에서 릴레이 단식 농성에 돌입했다. 지난 12일 오대희 공공운수노조 서사원지부 지부장을 만나 직접 경험하고 꿈꿨던 '공공 돌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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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사회서비스원 해산 결정 철회를 촉구하며 릴레이 단식 중인 오대희 공공운수노조 서울시사회서비스원지부장. ⓒ공공운수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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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직업에 자부심을 갖고 전문성을 키우며 일하고 싶었어요. 서사원은 그럴 가능성이 있는 곳이었어요. '공공 돌봄'이 뭐냐고 많이 묻는데 민간 기피 사례 대응도 있지만, 제가 보기에 중요한 건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는 거예요. 공공기관이다 보니 내가 쌓은 노하우가 나 한 명의 것으로 끝나지 않고 매뉴얼로 쌓여요. 많은 수의 노동자를 월급제로 고용하니 안정적인 일자리와 서비스 제공도 가능해요."

오 지부장은 중고령 여성 노동자가 많은 돌봄업계에서 흔치 않은 30대 남성 장애인 활동 지원사다. 대학 시절 진로를 고민하던 중 친구의 소개로 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일하며 장애인 인권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직업 선택의 계기였다.

졸업 뒤 장애인 활동 지원사로 일하면서도 "장애인들이 평등하게 사회적 권리를 누리며 함께 살아가는데 기여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보람을 느꼈다. 하지만 언제까지 "사명감과 희생"에 바탕해 "착한 사람"으로 살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돌봄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쌓은 노하우가 각자의 것으로 끝날 뿐 돌봄 서비스 전반의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는 상황도 답답했다.

공공돌봄기관이 가진 가장 큰 힘은 시스템 구축

그러던 중 서사원 설립 소식이 들려왔다. 규모가 있는 공공돌봄기관에서 정당하게 대우받으며 일하면, 직업적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현장의 경험을 모아 전문성 있는 돌봄 서비스 시스템을 만드는 일도 하고 싶었다. 그렇게 하면, 돌봄 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좋아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2019년 10월 서사원에서 일을 시작한 뒤에도 사명감을 갖고 열심히 일했다. 입사하고 얼마 되지 않아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시작했을 때의 일이다. '코로나19에 감염되면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감이 컸다. 전염병에 걸린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돌봄 공백'이 발생했다. 서사원이 이를 메꾸겠다며 자원자를 구했다. 가장 먼저 손든 이가 오 지부장이었다.

마스크 한 장 쓰고 돌봄이 필요한 중증장애인 1명과 단둘이 자가격리시설에 들어가 24시간 돌봄 노동을 했다. 발달장애인이 마스크를 잡아 뜯는 일도 있었다. 오 지부장은 업무가 끝나면, 거의 매일 보고서를 썼는데 이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노력을 바탕으로 서사원에 <감염병 및 관리> 매뉴얼이 만들어졌다. 방호장구도 제대로 지급되기 시작했다.

<치매예방 및 관리>, <욕창예방 및 관리>, <낙상예방 및 관리>, <응급상황대응지침> 등 수많은 매뉴얼이 그런 식으로 만들어졌다. 다수의 돌봄 노동자가 모여 서비스 표준화와 시스템을 고민할 수 있게 한 공공돌봄기관의 힘이었다. 오 지부장은 "매뉴얼이 현장에서 실현되는 속도나 교육 훈련 과정이 늘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정말 중요한 자료가 쌓여가고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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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사회서비스원 강서재가센터에서 만든 돌봄 서비스 매뉴얼. ⓒ공공운수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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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기피 사례 대응에서 안정적인 일자리와 서비스 제공까지

민간이 기피하는 돌봄 이용자를 위한 서비스 제공도 서사원의 중요한 기능이었다. 민간에서 2년 간 돌봄기관을 구하지 못했던 시각장애인이 서사원에서 돌봄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다. 한 노동자는 팀원들과 매일 사례관리회의를 해가며 폭력성과 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ADHD) 때문에 민간이 맡기 꺼리던 초등학생을 돌봤다. 매일 먼 거리에 있는 절을 찾아 108계단을 오르며 돌봄이 필요한 스님을 위해 일하는 노동자도 있었다.

이용자의 상황에 따라 비용을 더 받지 않고 추가 인력을 보내는 일도 서사원에서는 가능했다. 오 지부장은 "거동이 어려운 중증와상 환자를 한 명이 돌보기는 어렵다"며 "이런 경우 서사원은 2명의 노동자가 팀을 이뤄 이용자를 돌보게 했다"고 말했다. 오세훈 서울시에서 중단됐지만, 이용자가 의료 조치를 받아야 할 때 즉각적 논의를 거쳐 방문 간호사를 지원하는 돌봄-의료 통합 서비스도 제공됐다.

넓은 인력 풀에 따른 안정적 서비스 제공도 서사원의 장점이었다. 보통 빠듯한 인력으로 운영되는 민간돌봄기관에서는 돌봄 노동자가 사정이 생겨 일을 못할 때 대체인력을 보내기도, 이용자와 노동자가 서로 맞지 않을 때 대안을 찾기도 쉽지 않다. 오 지부장은 "서사원은 이용자의 돌봄을 개인이 아닌 기관이 책임졌다"며 "노동자가 휴가를 쓰면 다른 사람을 보내고, 이용자와 맞지 않으면 담당자를 바꾸는 식으로 대처할 수 있었다"고 했다.

돌봄 노동자에게도 서사원은 민간돌봄기관보다 나은 곳이었다. 서울시에 따르면, 서사원 돌봄 노동자와 같은 시간 일하는 민간 돌봄 노동자의 지난해 평균 월급은 145만 원이다. 이마저도 이용자의 변심에 따라 끊길 수 있는 돈이다. 서사원 노동자들은 서울시 생활임금에 기초해 지난해 평균 233만 원의 월급을 받으며 고용불안 없이 일할 수 있었다.

오세훈 취임 뒤 위기를 맞은 서울의 공공돌봄

'좋은 돌봄, 좋은 일자리'라는 기조로 운영되던 서사원의 위기는 2021년 4월 오세훈 서울시장 취임 뒤 시작됐다. 공세의 주요 키워드는 '방만 경영'이었다. 오 지부장은 "서사원 돌봄 노동자들은 필요하면 108계단을 오르고, 민간에서 기피하는 이용자를 돌보기 위해 수도 없이 회의를 해가며 일했다. 그런 사례가 시로 가면 어떻게 되는 줄 아나? 그냥 1건이 된다"며 "오로지 효율성 이야기만 했다"고 답답해했다.

실제 서울시는 서사원 전일제 요양보호사의 직접 서비스 제공 시간이 4.3시간이라는 점을 문제 삼았다. 코로나19 팬데민 기간의 일이라는 점도, 민간돌봄기관보다 긴 서사원의 회의·교육·이동시간도 중요하게 고려되지 않았다. 200만 원 대의 임금과 연 평균 7일가량의 병가 사용,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로 정해진 노동시간도 문제가 됐다. 인력 충원이 되지 않고 예산이 깎여나가기 시작했다. 보건복지부의 경영 평가 등급도 2021년 S등급에서 2022년 A등급으로 떨어졌다.

노동자들은 서사원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2023년 8월 전일제 요양보호사의 직접 서비스 제공 시간은 5.8시간까지 늘었다. 병가 사용 일수도 2022년 평균 4.93일로 줄었다. 24시간 운영에 대해서도 노조는 동의 의사를 밝히고 교대제 등 구체적 방안을 논의하자고 했다. 중증치매·와상·정신질환 등 민간 기피 돌봄에 집중하고 기존의 센터를 축소하겠다는 내용 등을 담은 서사원 기관 차원의 혁신안도 지난해 5월 발표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노동시간 삭감을 통한 '임금체계 개편'에 노조가 동의하지 않았고, 혁신안에도 관련 내용이 담기지 않았다며 불만을 표했다. 돌봄 노동자에게 200만 원 대의 임금은 높으니 삭감을 받아들이라는 격이었다. 이후 별다른 논의 진전 없이 시 차원의 서사원 해산 수순이 진행됐다. 오 지부장은 "자부심을 갖고 사회적으로 필요한 일을 하며 살고 싶다는 희망을 갖고 서사원에 왔는데 그게 참 쉽지가 않다"고 허탈해했다.

오 지부장은 앞으로도 서사원을 지키기 위한 싸움을 이어가려 한다. 자신과 조합원들의 일자리를 지키려는 것이기도 하지만, 갈수록 성장하는 돌봄시장이 이윤 논리를 중심에 두고 운영되는 현실이 지속되는 것도 두렵다. 민간 금융사 등 거대기업의 돌봄시장 진출이 늘고 있다는 점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그런 미래는 돌봄 노동자는 물론 돌봄을 받는 시민 모두에게 불행할지 모른다.

[최용락 기자(ama@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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