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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길도 조용했던 '기부왕'…국보 '세한도' 기증 손창근 씨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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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노환으로 별세 사실 알려져…향년 95세

2018년 기증식 발언, 유언 아닌 유언으로 남아

뉴스1

고(故) 손창근씨(왼쪽)가 2018년 11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기증식에서 배기동 당시 박물관장과 기념 촬영하는 모습.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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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김일창 김정한 기자 = "앞으로 내 물건에 대해서 '손아무개 기증'이라고 붙여주세요. 나는 그것으로 만족하고 감사합니다."(2018년, 손창근)

국보 제180호인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등 수많은 국가유산과 재산을 기증하고도 한사코 사람들 앞에 서지 않았던 '한 사람'이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2018년 열렸던 기증식에서 했던 이 말은 그의 유언 아닌 유언으로 남게 됐다.

국립중앙박물관과 유족은 손창근 씨가 지난 11일 노환으로 별세했다고 17일 밝혔다. 향년 95세.

고인의 차남인 손성규 연세대 교수는 이날 뉴스1과 통화에서 "과묵하셨던 아버지는 돌아가실 때도 별말씀이 없으셨다"며 "2018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렸던 기증식에 아버지께서 모두의 예상을 깨고 참석하셨는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대중 앞에 선 자리였다. 이때 하신 말씀이 유언처럼 남게 됐다"고 말했다.

유족은 부고도 내지 않았다. 무엇 하려 사람들을 힘들게 하냐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다 다른 쪽을 통해 부고 사실이 알려졌는데, 손 교수는 이마저도 불편해했다.

1929년생으로 서울대 섬유공학과를 졸업한 고(故) 손창근 씨는 부친인 개성 출신 실업가 고 석포 손세기 씨(1903~1983)의 대를 이은 문화재 수집가이자 기부자였다.

손세기 씨는 1973년 서강대에 보물 '양사언 초서'와 정선, 심사정, 김홍도 등 고서화 200점을 기증하며 대학 박물관 건립 토대를 닦는 데 크게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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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근씨가 국보 제180호인 '세한도'를 기증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2020.8.20/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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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전자전(父傳子傳)이라 했던가. 손창근 씨는 2008년 국립중앙박물관에 연구 기금 명목으로 1억 원을 전달하고, 2012년에는 산림청에 경기도 용인 소재 산림을 기부했다. 2017년에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건물 및 연구기금 총 51억 원을 기부했다.

2018년에는 추사의 걸작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를 포함한 손세기·손창근 컬렉션 202건 304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기증작에는 15세기 최초의 한글 서적 '용비어천가' 초간본(1447년)과 대표적인 한국 서화가인 정선, 심사정, 김득신 등의 작품, 오재순, 장승업, 흥선대원군 등의 인장이 포함됐다.

그리고 2020년 손창근씨는 고심 끝에 세한도를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추사가 제주도 유배 시절인 59세 때 그린 '세한도'는 '한겨울 추운 날씨가 된 다음에야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알게 된다'(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는 '논어'의 구절을 모티프로 한 그림으로, 시련 속에서도 변치 않는 신의를 압축적으로 표현한 조선 최고의 문인화로 평가받는다.

손 교수는 2021년 3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한겨울 지나 봄 오듯-세한(歲寒)·평안(平安)' 특별전에서 뉴스1과 만나 "'세한도'는 집안의 가보였기에 소장한 고서화 305점 가운데 유일하고 금고에 보관했다"며 "어머님께서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세한도'도 기증하겠다고 말씀하셨을 때 '잘 결정하셨다'고 주저 없이 답하셨다"고 말했다.

손창근 씨는 공로를 인정받아 정부로부터 문화훈장 중 최고 영예인 금관문화훈장을 최초로 받았는데, 수훈 자리에 본인 대신 자녀를 참석하게 했다. 2020년 12월 문재인 당시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방문한 청와대도 주변의 끈질긴 설득 끝에 가능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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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기증관 재개관 언론공개회에서 손창근 기증 추사 김정희 '세한도'가 진열돼 있다. 2024.1.11/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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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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