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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AI시대 중요해진 '해저케이블'…전선업계 첫 기술유출 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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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전선·대한전선 공장 건설

모두 맡은 종합건축사사무소

해저 케이블 기술 유출 혐의

최근 AI 수혜로 경쟁 격화

지금껏 사례 없어 자료 전무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해온 ‘기술 유출’이 이젠 전방위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간 기술 유출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던 전선에서 처음으로 기술 유출 분쟁이 발생했다. 이를 접한 경찰은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다. 업계는 경찰의 수사 결과와 그에 따라 미칠 파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17일 전선업계 등에 따르면 경기남부경찰청 산업기술안보수사대는 LS전선과 대한전선의 공장 건설에 잇달아 참여한 A건축사사무소를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등 혐의로 입건해 수사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이 사무소는 2008~2023년 LS전선의 고전압해저케이블(HVDC) 공장의 건축 설계를 담당해오다 LS전선의 경쟁사인 대한전선의 해저케이블 1공장 건설을 맡았다. 공장은 완공돼 지난 3일 문을 열었다. 경찰은 이 사무소가 LS전선 공장의 건축을 설계할 때 확보한 해저 케이블 관련 기술들을 대한전선의 공장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유출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아시아경제

‘경쟁 심화’ 전선도 이제 위험지대

아시아경제가 취재한 바로는 전선에서 기술 유출과 관련된 분쟁이 발생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국가정보원이 집계한 분야별 기술 유출 현황, 전국 각급 법원들의 판례들을 찾아봤지만, 전선에서 기술이 유출돼 문제가 됐던 사건은 아직 없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전선은 주로 기술의 특허권, 사업 추진 과정에서 발생한 손해에 대한 구상권을 청구하는 소송이 많았다.

향후 경찰의 수사 과정과 결과에 따라 이제 전선도 기술 유출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이 확인될 것으로 보인다.

전선은 반도체, 조선 등에 비해 ‘기술 유출’과는 거리가 멀다는 인식이 있었지만, 최근 인공지능(AI) 시대의 개막으로 전력 소모가 큰 신기술들이 등장하고 선진국들의 전력 인프라도 노후화되는 등 수혜를 입을 만한 여건들이 잇달아 조성되면서 경쟁이 격해졌다. 이에 따라 경쟁기업 간 기술이 유출될 여지도 커졌다.

이 사건의 배경으로도 기술이 고도화되고 경쟁이 심화된 최근 업계 분위기가 지목된다. 이 사건은 경쟁사들의 HVDC 공장 건축 설계를 한 곳이 맞게 되면서 촉발됐다. 겉으로 보기엔, 건물에 화장실, 방을 몇 개 만들지 등을 정하는 건축 설계가 어떻게 기술을 유출할 수 있는 건지 의문이 들 수 있지만, 실상은 다르다. 전선은 공장 설계에 있어서도 해당 기업의 기술이 집약돼 있다는 것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HVDC의 경우, 길게 만들면 최장 80㎞까지 만들 수 있는데 이것을 감아서 보관하고, 육지까지 운반하는 과정 하나하나가 기술"이라며 "공장 설계 때 이에 맞춰서 진행되다 보면 해당 기술들이 노출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또한 사건의 이면에는 LS전선과 대한전선 간의 경쟁 구도도 한몫했다는 분석도 있다. 해저케이블 분야에서 LS전선이 먼저 진출했고 대한전선은 후발주자였다. 대한전선을 경계해온 LS전선의 상황이 이번 사건에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해저케이블은 최근 청정에너지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전선업계가 반드시 선점해야 하는 분야로 주목받고 있다. 해저케이블을 통해 해상 풍력, 조류 발전을 통해 확보한 청정에너지를 육지로 운반할 수 있기 때문이다. LS전선이 먼저 이 분야에 힘을 주기 시작했고 대한전선은 조금 더 뒤에 시장에 진입했다. 이 과정에서 2022년 12월부터 충남 당진시에 해저케이블 1공장을 처음으로 짓게 됐고 이 설계를 A건축사사무소에 맡기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아시아경제

자료출처=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실(국정원 '국가핵심기술 해외 유출 현황'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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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황 자료 전무 "대비 필요"

앞으로 전선에서도 기술 유출 사례는 계속 발생할 것으로 보이지만, 관련 기관들은 적절히 대응할 수 있을지 불투명해 보인다. 기술 유출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유수의 기관들은 전선의 기술 유출에 관련된 자료를 거의 갖고 있지 않다. 한국산업기술보호협회는 전선의 기술 유출 사례 등을 확인할 수 있는지 묻는 아시아경제의 문의에 "아직 전선과 관련된 자료는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전선의 기술 유출은 상대적으로 해외보다는 국내에서 많이 발생할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반도체 등에서 해외 기술 유출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기술이 밖으로 나갈 문턱이 높아졌고 관련 제도들도 비교적 잘 시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선은 2019년 산업통상자원부가 LS전선과 대한전선에서 보유한 500㎸ 이상 초고압 전력케이블 시스템을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해 유출 통로를 원천 봉쇄한 바 있다. 당시 대한전선이 중국 등 해외매각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대한전선이 가진 초고압 전력케이블 기술이 전선 시장의 후발주자인 중국에 넘어갈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면서 정부가 조치했다.

김형민 기자 khm19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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