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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첨단 통신수단서 천덕꾸러기 된 비둘기, 이제는 사이보그로 개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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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20년 1월1일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의 한 가로수 밑동에 비둘기들이 모여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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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광주시의 한 근린공원입니다. 비둘기가 떼죽음을 당했어요. 전국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비둘기 독극물 살해 사건’을 조종하는 세력이 있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사이보그 비둘기를 만들어 팔 거라고 합니다.” - 제보자 PJ





“그러잖아도 같은 제보가 몇 개 와서 조사했습니다.”



엉망진창 행성조사반의 왓슨이 홈스 반장에게 말했습니다.



“사건이 일어난 곳은 광주시 서구 풍암동 근린공원입니다. 비둘기 21마리가 모이를 먹고 죽었어요. 광주보건환경연구원이 정밀 분석했더니, 카보퓨란이라는 농약 성분이 기준치 이상 검출됐다고 합니다. 누군가 고의로 죽인 거예요.”





신기술의 상징이었던 비둘기의 몰락





비둘기 혐오 범죄는 자주 있습니다. 서울 종묘공원과 한강시민공원에서 비둘기가 떼죽음을 당하더니, 서울 정릉천에서도 물에 떠서 죽은 비둘기가 발생했죠. 비둘기에 관한 뉴스는 온통 부정적인 것뿐입니다. 얼마 전에는 파키스탄이 ‘스파이 비둘기’를 국경 넘어 보내서 인도가 비둘기를 구금해 조사했다는 뉴스가 있었네요.



“왜 이렇게 비둘기를 싫어하는 거죠?”



“이제 인간에게 필요없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한때 비둘기는 인간에게 중요한 존재였어요. 비둘기의 귀소 본능을 이용해 기원전 2900년 전부터 통신 수단으로 이용했거든요. 집에서 비둘기를 기른다고 가정해 보죠. 집주인이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요. 타지에서 안부 편지를 비둘기 다리에 묶어 보내면, 비둘기는 편지를 갖고 집으로 돌아와요.



이것을 응용해 비둘기 통신소를 여럿 설치하면 비둘기를 장거리 통신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다수의 통신소와 비둘기를 통해 이어달리기처럼 소식을 전달하는 거죠.



이러한 신기술을 군대가 가만히 놔뒀을 리 없죠. 20세기 초 양차 세계대전에서 비둘기는 통신병으로 활약했어요. 군인은 통신 장비 대신 비둘기 배낭을 메고 다녔어요. 급할 때는 비둘기를 날려 보냈어요. 말하자면 이런 메시지를 들고요. “적군의 병력이 많아 불리한 형국이다. 공습을 요청한다!”



당연히 비둘기 전사는 저격병의 일차 표적이 되었어요. 적진의 하늘에 비둘기가 날아오르면, 어김없이 총성이 울렸어요. 수많은 비둘기가 추락해 죽었죠.



20세기 중반부터는 전신, 전화에 밀려 비둘기의 역할은 사라졌어요. 오히려 많은 개체수가 도시에 거주한 탓에 사람들로부터 ‘날아다니는 쥐’ 취급을 받았어요. 그래도 한국에서는 1980년대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개막식 때 멋진 비행을 선보이며 ‘평화의 상징’으로 불렸죠. 하지만, 사람들이 얼마나 기억하겠어요? 이내 사람들은 비둘기를 귀찮아했고, 2009년 환경부는 유해야생동물로 지정했어요.



“그런데, 비둘기를 어떻게 사이보그로 만든다는 거지?”



홈스의 물음에 왓슨은 그동안 조사한 것을 설명했습니다.



“비둘기가 사이보그가 된 적은 없지만, 비슷한 사례는 있습니다. 드론이 없던 시절에는 비둘기에 카메라를 달아 항공 사진을 찍었어요. 비둘기가 찍은 사진은 20세기 초중반에 꽤 인기를 끌어서, 엽서로 만들어 팔기도 했다고 해요.”



군사 목적의 항공 정찰에도 비둘기 사진사가 투입됐죠. 제1차 세계대전에 카메라를 매고 있는 비둘기 사진은 아주 유명하죠. 지금은 다큐멘터리 촬영 목적으로 매와 독수리 같은 새에 ‘크리터캠’이라는 카메라를 달기도 해요. 왓슨이 계속 설명했어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비슷한 실험을 한다고 합니다. 비둘기에 카메라 대신 대기오염 측정장치를 단다는 거예요.”



한겨레

비둘기가 프랑크푸르트를 찍은 사진(날개가 함께 찍혔다)과 사진기를 단 비둘기(오른쪽). 출처 위키미디어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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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가 배낭을 멘 까닭





캘리포니아주립대학 어바인 캠퍼스의 젊은 여교수 베아트리즈 다 코스타(Beatriz da Costa)가 이 실험을 이끌고 있었어요. 조사반이 그의 연구실을 방문했을 때, 그는 비둘기에 매달 대기오염 측정장치를 점검하고 있었죠.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그가 펄쩍 뛰었습니다.



“사이보그 비둘기라니요? 우리는 인간과 비둘기와 새로운 관계를 만들려고 하는 거예요.”



비둘기가 맬 배낭에는 인공위성위치추적장치(GPS), 인공위성이동통신시스템(GSM)과 대기오염 측정장치가 장착되어 있었어요. 무게는 약 20g. 코스타 교수는 무게를 줄이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고, 배낭이 비둘기 몸무게의 10분의 1 이하여서 비둘기에는 나쁜 영향을 주지는 않을 거라고 했어요. 그가 말을 이었습니다.



“인간과 비둘기가 함께하는 ‘종간(inter-species)’ 시민과학 프로젝트예요. 비둘기를 기르는 사람들, 예술가, 과학자 그리고 시민이 비둘기와 함께 공부하고 연습해 대기 환경을 감시하는 거죠. 비둘기가 실시간으로 전송하는 오염 정보를 시민들이 인터넷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어요.”



“왜 비둘기죠? 대기오염 측정장치가 없는 것도 아니고.”



“이곳 남부 캘리포니아는 미국에서 가장 오염이 심한 10곳 중 하나입니다. 대기오염 측정장치는 사람과 동식물의 왕래가 잦은 지역보다는 거기서 떨어진 높은 곳에 설치돼 있습니다. 많지도 않고요. 하지만 비둘기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죠. 우리가 마시는 공기와 가장 가까운 상태를 측정할 수 있는 거예요.”



“어떻게 비둘기와 인간의 새로운 관계를 만든다는 거죠?”



“우리는 인간과 비인간 그리고 과학과 기술이 얽힌 테크노사이언스의 세계를 삽니다. 이 세계에서 인간과 동물이 어떻게 긍정적인 일을 함께할 수 있을지를 실험해보고 싶었어요. 도시인들은 비둘기를 더럽고 걸리적거리는 존재로 생각해요. 그런데, 비둘기가 대기오염 정보를 수집해준다면요? 인간과 비둘기 간에 다른 관계가 형성되는 겁니다. 아마도 인간은 비둘기를 다른 존재로 받아들일 거예요.”



이 프로젝트의 이름은 ‘피전블로그’(Pigeonblog)입니다. 비둘기가 블로그를 쓴다는 거예요. 한 달 동안 세 차례 날리고 끝나는 한시적 프로젝트였습니다. (물론 비둘기는 귀소 본능이 있기 때문에 보호자 집으로 돌아옵니다) 코스타 교수의 이력을 보니, 과학자라기 보다는 예술가에 가까웠어요. 과학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과학-예술 프로젝트’로 보였습니다.





대기오염 측정은 동물학대?





코스타 교수 연구실에서 나오는데, 건물 앞에 ‘비둘기 학대 중단하라’는 피켓을 든 사람들이 있었어요. 미국의 동물권 단체 ‘동물을 윤리적으로 대하려는 사람들’(PETA)이었죠. 확성기를 든 사람이 말했습니다.



“이미 도시 곳곳의 첨단 장치가 대기오염을 문제없이 측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동물을 위험에 빠뜨립니까?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말도 안 되는 동물학대입니다!”



*6월24일에 이어집니다.



*본문의 과학적 사실은 실제 논문과 보고서를 인용했습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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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종영 환경저널리스트·기후변화와동물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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