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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7 (목)

“한국 문학사의 전체상 회복하겠다는 결기…드디어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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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난 13일 서울 종로 설악·만해사상실천선양회 사무실에서 자신의 새 책 ‘한국현대문학비평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권영민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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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학자이자 문학비평가인 권영민 서울대 명예교수가 1천쪽짜리 방대한 ‘한국현대문학비평사’를 내놓았다. 1896년 ‘독립신문’ 창간에서 시작해 1980년대 민중문학까지 한 세기 가까운 한국 현대문학 비평사를 갈무리한 책이다. 지난 13일 그가 이사장으로 있는 서울 종로의 설악·만해사상실천선양회 사무실에서 권 교수를 만나 책을 낸 소회와 책 내용, 근황 등에 관해 들었다.





한국 현대문학의 기점 ‘독립신문’부터
1970~80년대 민족·민중문학론까지
현대문학 비평사 ‘한 세기’ 갈무리
“대학원부터 꿈꾼 ‘통합 문학사 저술’
내 공부의 시작, 이렇게 정리됐구나”





“‘이상 연구’(2019)를 마친 다음에 마지막 작업으로 비평사를 써야겠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이상 연구’가 생각보다 길어지면서 이 책도 덩달아 늦어지게 되었네요. ‘한국현대문학사 1, 2’(개정판 2020)와 ‘이상 연구’, 그리고 이 책을 저의 3대 주저(主著)로 꼽고 싶어요. 비평사 관련 자료를 모으던 1970년대 대학원 시절부터 꿈꿔 왔던 통합 문학사 저술 작업이 이것으로 마무리된 셈입니다. 이제 제가 앞으로 또 무슨 책을 내겠습니까.”



권 교수의 첫 책은 1984년에 낸 ‘한국 근대문학과 시대정신’(문예출판사)이었다. 그런데 책 속에 월북 문인들에 관한 내용이 들어 있다는 이유로 군부 정권의 보안사에 끌려가 고초를 겪고 책은 불온도서로 찍혀 시판되지도 못한 채 금서로 묶이고 말았다. 그의 안위를 걱정한 서울대 스승들의 배려로 미국 하버드대학 초청장을 받아 1985년부터 2년 동안 머무르며 미국 본토에서는 처음으로 한국문학 강의를 만들어 운영했다. 권 교수는 “당시 그 일을 겪으면서, 분단에서 비롯된 문제들을 해결하고 한국 문학사의 전체상을 회복해야겠다는 내 나름의 결기가 생겼다”며 “내 공부의 시작에서부터 문제가 됐던 것이 이렇게 정리됐구나 하는 감회가 든다”고 말했다.



한겨레

지난 13일 서울 종로 설악·만해사상실천선양회 사무실에서 자신의 새 책 ‘한국현대문학비평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권영민 서울대 명예교수.


‘한국현대문학비평사’를 쓰면서 권 교수는 기존의 비평사와 차별성을 두고자 했다.



“그동안은 문단적인 논쟁이나 문학적 사조를 정리한 것이 비평사인 것처럼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비평사에서 중요한 것은 주요 개념과 문학적 관점이 형성되는 과정을 추적하고, 비평적 방법의 수용 및 천착 과정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또 비평사가 문학사상사와 지성사의 중요한 일부인 만큼 비평과 시대정신의 관계에도 주목했어요. 마지막으로, 문학 이론과 학계의 연구 업적 역시 대폭 포함시켰습니다.”



그는 한국 현대문학 비평의 흐름을 개화계몽시대 문학비평→식민지시대 문학비평→분단시대 문학비평의 세 단계로 구분해서 서술했다. 국어 국문에 대한 관심을 현대문학 비평의 출발을 알리는 기준으로 보아 국문 신문인 독립신문 창간을 한국 현대문학의 기점으로 삼았다. 주시경의 국어국문론과 박은식·장지연의 유교 개혁론, 한용운의 불교 유신론 역시 전통 사상의 근대적 변혁 노력으로 중요하게 다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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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선생도 지적했다시피 한국문학에서 비평의 방법과 관련한 고민이 비로소 나타난 것은 1920년대 계급문학론에서였습니다. 그러나 비평에 관해 제대로 공부한 사람이 당시에는 별로 없었죠. 저는 1930년대 김기림의 시론 작업이 방법론의 정치함이나 논의의 폭에 있어서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봅니다. 그리고 한국 비평이 독자적인 자기 담론을 만들어낸 것은 1970년대 이후 민족·민중문학론에서였습니다. 방법으로서의 리얼리즘, 관점으로서의 제3세계문학론을 표방하면서 비평의 주체적 담론화라는 성과를 냈는데, 그것이 1990년대 이후 문학 논의에서 긍정적으로 수용되지 못한 점은 아쉽습니다.”



한국 현대문학 비평사를 서술하면서 느낀 아쉬움을 묻자 “전통적 미의식과 사상을 어떻게 이어받고 넘어설 것인가 하는 고민이 근대 이후 비평가들에게 부족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독립신문에서부터 1980년대 민중문학론까지 비평 목록을 작성하고 주요 자료를 입력하면서 그것을 책의 부록으로 붙이려 했지만, 분량이 너무 많아서 일단 포기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산둥대서 ‘동아시아 연구센터’ 준비
“교수는 직장일 뿐, 내 직업은 연구자”





권 교수는 2014년 미국 캘리포니아주립 버클리대학 겸임교수로 부임하면서 자신의 연구실에 있던 서적 1만여권을 그곳 도서관에 기증했다. 그로부터 2022년 귀국할 때까지 버클리에서 한국문학을 강의하며 이 책 원고를 집필했다. 그는 일찍이 1993~1994년에도 버클리에 머물며 강의를 한 바 있다. 이런 경력 덕분에 버클리대학의 동아시아학과 누리집에는 권 교수가 ‘명예교수’(emeritus)로 소개되어 있다. 그는 1980년대에 이어 2004년에 다시 하버드대학에서 한국문학을 강의했고, 1999~2000년과 2007년에는 일본 도쿄대 대학원에 한국문화 연구과정을 만들고 특강을 했으며, 지난해 7월부터는 중국 정부 초청으로 산둥대학 ‘강석교수’(외국인 석좌교수) 신분으로 강의와 연구를 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산둥대학을 중심으로 국제 동아시아 연구센터를 만들 계획을 세우고 저를 데려갔습니다. 5년 계약의 특별한 조건입니다. 지난 1년은 한국과 중국 관계도 껄끄럽고 해서 지지부진했지만, 얼마 전 중국 총리가 한국을 방문하는 등 지금 상황은 희망적입니다. 저는 산둥대학 대학원생들과 서울대 대학원생들이 합동 워크숍을 열고 더 나아가 일본과 미국 등과도 연계해서 비슷한 프로그램을 꾸며 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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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서울 종로 설악·만해사상실천선양회 사무실에서 자신의 새 책 ‘한국현대문학비평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권영민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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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만해사상실천선양회가 주관하는 제1회 무산문화대상 시상식과 ‘한국현대문학비평사’ 출간 등을 위해 잠시 귀국했던 권 교수는 15일 산둥으로 돌아갔다. 여름방학이 시작되는 다음달 중순에 다시 귀국해서 다음 학기 개학 전인 8월 말까지 국내에 머무를 계획인 그는 “중국 생활이 불편하지 않고 매우 편안하고 재미있다”고 말했다. 서울대 국문과에서 퇴직할 때 주변에서 걱정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교수는 직장이었을 뿐 내 직업은 국문학 연구자”라는 말로 안심시켰다고 한다. 그의 직장이 서울대에서 버클리로, 다시 산둥대로 바뀌었을 뿐 국문학 교수와 연구자로서 그의 일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글·사진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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