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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정부 “대왕고래 탐사시추 성공률 20%, 업계표준 공식 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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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노르웨이의 석유·가스 시추업체 시드릴의 시추선 웨스트카펠라. 삼성중공업이 만들었다. 이 시추선은 오는 12월 동해 유전·가스전 후보지에 대한 탐사시추를 진행할 예정이다. 삼성중공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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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동해 유전·가스전 후보지 개발과 관련한 최대 쟁점은 정부가 제시한 ‘탐사시추 성공률 20%’다. 구멍을 5개 뚫어 바닷물 아래 땅 속을 들여다보면 구멍 1개에서 석유·가스를 발견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후 채산성(採算性)이 맞는다면 상업 생산으로 이어지게 된다.

탐사시추 성공률 ‘20%’라는 숫자는 어떻게 나왔을까. 17일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업계에서 표준으로 통용되는 ‘지코스(GCOS, Geological Chance Of Success)’ 공식을 활용해 계산했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한국에 앞서 심해 유전·가스전 개발에 성공한 가이아나에서 탐사시추를 할 때와 같은 지코스 공식을 썼다.

쉽게 설명하면 석유·가스를 발견할 수 있는 필수 조건 4가지를 놓고, 이 4가지를 전부 충족할 확률을 구하는 구조다. 조건 4가지는 ▶석유·가스를 생성하는 암석인 근원암(source rock) ▶저장하는 암석 저류암(reservoir rock) ▶빠져나가지 못 하게 하는 암석 덮개암(seal rock) ▶빠져나가지 못 하게 하는 지층 구조인 트랩(trap)이다.

정부는 조건 각각이 충족될 확률을 모두 70%(10분의 7)가량인 것으로 봤다. 그럼 4가지 조건이 동시에 만족될 확률은 ‘10분의 7’을 4번 곱한 값으로 대략 20%가 나온다는 이야기다. 석유공사도, 석유공사에 자문을 한 미국 석유·가스 개발 컨설팅 업체 액트지오도 20% 수준을 제시했다. 이와 관련해 비토르 아브레우 액트지오 대표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가이아나 석유 개발 때 썼던 것과 같은 공식을 그대로 적용해 20%가 나왔다”고 설명한 바 있다. 21세기 최대 심해 유전·가스전 개발로 평가되는 가이아나 프로젝트 때 성공률은 16% 정도였다. 정부가 이번 프로젝트를 강하게 밀어붙이는 배경이다.

중앙일보

김영희 디자이너



현재 유전·가스전 후보지는 ‘대왕고래’ 등 총 7개다. 오는 12월 가장 유망해 보이는 후보지를 대상으로 첫 탐사시추를 진행하고 바로 석유·가스가 발견된다면 두 번째 탐사시추 성공률은 20%보다 올라갈 여지가 있다. 반대로 첫 탐사시추에서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 하면 두 번째 성공률은 더 내려갈 수 있다. 정부는 최소 5차례 탐사시추를 해보겠다는 방침이다.

앞서 정부는 이번 유전·가스전 후보지 7곳을 포함한 6-1광구·8광구 내에서 3차례 탐사시추를 진행했다가 실패한 적 있다. 당시 성공률은 10%가량이었다. 정부는 실패를 통해 확보한 자료와 추가 간접조사로 얻은 자료 등을 종합해 분석해 보니 이번 탐사시추 성공률이 약 20%로 올랐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3번 실패한 걸 왜 또 파려고 하느냐”라고 반발하지만, 정부는 “3번 실패를 통해 개발 성공 확률을 더 높였으니 좀 더 노력해보자”는 시각이다. 호주 석유·가스 기업 우드사이드가 석유공사와 공동으로 6-1광구·8광구 개발을 추진하다 떠난 데 대해선 “기업 내부 인수합병(M&A) 문제가 사업 철수의 주요 배경”이라고 선을 그었다.

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탐사시추 계획을 발표할 때 제시된 추정 매장량(최대 140억배럴, 삼성전자 시가총액 5배 가치)은 탐사시추 경과에 따라 위로든 아래로든 크게 달라질 수 있다. 탐사시추 전 단계인 물리탐사를 통해 추측된 수치인 탓이다. 물리탐사는 사람 몸에 엑스선 검사나 초음파 검사를 하는 것과 비슷한데 조직검사처럼 직접 땅을 파보는 탐사시추보다 정확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 설명을 믿는다면 이번 프로젝트는 충분히 시도할 만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그러나 신뢰성 논란이 뜨겁다. 그 중심에는 액트지오의 아브레우 대표가 서 있다. 액트지오가 사실상 1인 기업이고 세금 체납 전력 등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사실은 기술 전문성과는 직접 관련성이 떨어진다는 게 정부의 항변이다.

아브레우 대표는 2016년부터 2017년까지 미국 퇴적지질학회(SEPM) 회장을 맡았고, 심해 유전·가스전 개발 관련 이론(순차층서학)을 창시한 피터 베일의 후임으로 미국 라이스대에서 강연 중이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자원개발 대기업의 한 임원은 “왜 대통령이 이 시점에 발표했는지가 논란이 될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아브레우 박사가 심해지역 탐사에 있어서는 세계적인 권위자라는 사실은 분명하다”라고 전했다.

글로벌 석유·가스 기업인 엑슨모빌에서 근무하는 등 실무 경험도 보유하고 있다. 아브레우 대표는 “엑슨모빌에서 기술직 중 가장 높은 부사장급 임원을 지냈다”고 강조했다. 왜 엑슨모빌을 나와 작은 기업을 차렸는지에 대해선 “내 사업을 해보겠다는 꿈을 찾아 나온 것”이라며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엑슨모빌에 감사하는 마음”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전문가라고 그 말을 다 믿을 만한 건 아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 “액트지오의 자문 내용을 다시 공개 검증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앞서 최남호 산업부 2차관은 지난 10일 브리핑을 통해 “어느 광구도 심해 탐사와 관련된 조사 자체를 복수의 기관에 맡기는 경우는 없다”며 “데이터 자체는 저희가 가지고 있는 기초자산이기 때문에 그걸 또 개방해 다시 검증을 맡기는 건 (기밀이 누출될) 리스크가 크다”고 말했다. 그런데 논란이 커지자 산업부는 교차검증을 해보는 것도 선택지에 놓고 검토에 들어갔으나, 다른 국내·외 프로젝트에서 선례가 없어 난처해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산 심의권을 쥐고 있는 국회에선 의석수가 가장 많은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투명한 사업 관련 정보공개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 안보 관점에서나 해외 투자 유치 전략 측면에서 정보 공개에 한계가 있다. 이에 산업부는 대안으로 대왕고래 등에 대한 물리탐사 결과 데이터 등을 국회에서 열람하도록 할지 저울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사업 계획 발표 시점이 다소 빨랐다는 비판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석유·가스 개발 업계 관계자는 “적어도 구체적인 매장량이 확인되는 탐사시추 완료 이후 발표를 했다면 각종 논란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탐사시추 이후 크게 바뀔 수도 있는 추정 매장량을 미리 발표한 것에 대해서도 아쉬움이 남는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편 안덕근 산업부 장관은 이날(1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들을 만나 “(대왕고래) 개발 전략회의를 오는 21일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회의에는 석유공사 경영진과 민간 전문가들이 함께해 해외 투자 유치 전략을 중점적으로 논의할 예정이다.

해외 자본을 들여오면 탐사시추 등에 필요한 비용을 해결해 사업 추진에 따른 갈등을 줄일 수 있다. 국내 기업만으론 기술력 측면에서도 독자 개발은 무리라는 판단이다. 반면 해외 자본을 언제, 어떻게, 얼마만큼 규모로 들여오느냐에 따라 국부 유출 우려가 나올 수도 있어 절충점을 찾는 게 중요하다. 일단 조만간 석유공사를 통해 투자 의향이 있는 해외 업체들을 위해 로드쇼를 진행한다는 게 안 장관 방침이다.

투자 유치에 앞선 선행 작업도 필요하다. 안 장관은 “우리나라 관련 제도가 대규모 자원이 있을 것으로 상정하고 만든 게 아니어서 지금 있는 제도대로 만약 개발하면 해외 투자로 들어오는 기업에 일방적 혜택이 커질 수 있는 문제도 있다”며 “조속히 국내 제도를 합리적으로 개편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세종=김민중 기자 kim.minjo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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