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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이슈 애니메이션 월드

칭찬 인색한 미야자키의 “잘했다”… 못 잊을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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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편 ‘북극백화점의 안내원’ 개봉 앞둔 이타즈 감독 인터뷰

일본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주인공 마히토는 정체불명 왜가리를 잡으려고 대나무 화살을 만든다. 이 장면의 원화는 이타즈 요시미(44) 감독이 그렸다. 미야자키 감독의 ‘바람이 분다’(2013)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그대들’에도 참여한 이타즈 감독은 대나무 화살 덕분에 잊지 못할 순간을 갖게 됐다. 자신의 장편 데뷔작인 ‘북극백화점의 안내원’(19일 개봉)을 들고 방한한 그는 16일 본지 인터뷰에서 “미야자키 감독이 화살 그림을 보시더니 제 자리로 직접 찾아오셔서 ‘너무 잘했다’고 칭찬해주셨다”고 했다. ‘직접 찾아오셔서’라고 말하는 그의 얼굴이 순간 환해졌다. 그는 “원체 칭찬이 없는 분이라 말할 수 없이 기뻤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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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개봉하는 애니메이션 '북극백화점의 안내원'은 동물 고객을 기쁘게 하기 위해 어떤 일이든 해결하려는 수습 사원이 주인공이다. 삶의 난관을 헤쳐가며 자신의 본모습을 찾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미디어캐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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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애니는 본질을 드러내는 감각”

이타즈 감독은 18세에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 들어갔다. 집단만 강조하는 학교 분위기를 견디기 힘들었다. 스튜디오에 가보니 애니메이션이야말로 집단 작업이 중요했다. 이타즈 감독은 “거부했던 가치를 체화하는 과정에서 창작과 기술의 한계를 극복하는 애니메이터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이타즈 감독은 일본 ‘3콤마 애니메이션’의 미학 정신을 잇는 대표 주자로 꼽힌다. ‘3콤마 애니’는 ‘리미티드 애니’라고도 불리는 일 애니 고유의 작업 방식이다. 미국 디즈니 애니는 초당 24컷으로, 동작이 유려하고 부드럽다. 반면 ‘3콤마 애니’는 초당 8컷만 쓴다. 불필요한 움직임을 최대한 생략하고 간결한 조형미를 드러낸다. 데즈카 오사무의 ‘철완 아톰’(1963)에서 시작해 미야자키를 거치며 일 애니의 차별화된 미학으로 자리 잡았다.

이타즈 감독은 “곁에서 지켜본 미야자키 감독은 본질을 간파하는 천재”라며 “어떻게 그릴지를 고민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포착해서 보여줄지를 연구한다”고 했다. 또 “그분 작품을 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그의 감각에 끌려가며 작업하게 된다”며 “본질을 꿰뚫는 감각은 나이가 든다고 쇠퇴하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日 애니, 여성 제작진 늘며 다양한 시각 담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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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위해 깜짝 선물을 사러 북극백화점을 찾은 바다밍크 고객.


19일 개봉하는 그의 장편 데뷔작 ‘북극백화점의 안내원’도 3콤마 애니의 간결한 미학을 핵심으로 한다. ‘북극백화점’은 같은 날 개봉하는 외화 중 예매율 1위에 오르며 애니 팬들의 높은 관심을 입증했다. 이타즈 감독은 “그림도 간결, 움직임도 간결, 이야기도 간결하되 두 번째 봤을 때는 다른 느낌으로 음미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말했다.

‘북극백화점’에서 수습 직원 아키노는 진상을 부리거나 민폐를 끼치는 고객에게 최고의 행복을 선사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시끌벅적 로비에서 화려한 날개를 펼치며 애정 행각을 벌이는 공작 커플, 서로에게 깜짝 선물을 주려고 몰래 찾아온 바다밍크 부녀, 프러포즈를 앞두고 고민에 빠진 일본늑대 등 인간 군상을 반영한 동물 고객이 어디선가 만나본 듯 친근하다.

‘북극백화점'의 작화와 캐릭터는 격변기를 지나는 애니 산업의 단면을 보여준다. 가장 큰 변화는 여성 애니메이터가 크게 늘었다는 점이다. 여성 제작진의 합류는 ‘북극백화점’의 치마 길이도 바꿨다. 이타즈 감독은 “여주인공이 절대 성적인 대상으로 보이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으로 무릎 아래 단정한 길이의 치마를 입혔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일 애니 제작진은 남성이 많았기 때문에 내용도 남성 시선에 치우쳤고, 일본 사람끼리만 좋아할 부분도 많았다”며 “최근에는 위아래 질서를 강조하기보다 평등한 관점에서, 일본 국민뿐 아니라 글로벌 관객이 폭넓게 즐길 콘텐츠가 대세”라고 말했다.

끝부분엔 한국 팬을 위한 선물이 들어 있다. 카리브해 몽크물범이 화사한 분홍 한복을 골라 입고 거울 앞에 선 장면이다. 감독은 “저의 이전 단편인 ‘피그테일’ 때부터 성원해주신 한국 팬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담았다”고 했다. 그는 “수습 사원 아키노가 벽에 부딪히며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깨닫는 과정은 제가 애니메이터로 성장한 과정과 겹친다”며 “‘누군가 기뻐해주는 것이 저의 기쁨'이라는 애니 속 대사처럼 팬들의 기쁨을 위해 계속 작업하겠다”고 말했다.

☞이타즈 요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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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즈 요시미 감독은 18세에 고교를 자퇴하고 갤럽 스튜디오에 들어가 애니메이션을 배웠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바람이 분다’와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국내 극장가에서 흥행 중인 ‘하이큐!! 쓰레기장의 결전’ 등에 참여했다.

[신정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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