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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7 (목)

이슈 미술의 세계

"용산에 박수근 표지석 세웠으면" 아들 박성남씨의 소원,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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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지난 13일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 본사로 찾아온 화가 박수근의 아들 박성남 옹. 현재 강원도 양구에 거주 중이다. 양구엔 박수근 미술관이 있다. 김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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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서울 종로구 창신동. 집 마루에 앉은 다섯살 박성남 군은 좀이 쑤셨지만 꼼짝 않고 앉아 있어야 했다. 아버지인 화가 박수근(1914~1965)이 자기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문 밖에선 "성남아 놀~자"라는 동무의 외침이 들렸다고 한다. 그렇게 6시간을 그린 초상화 속, 박수근 화백의 아들 성남 군의 표정은 살짝 뾰로통하다. 아버지 박 화백이 아들의 초상화를 그리는 데엔 나름의 이유가 있었으니, 당시 6ㆍ25 전쟁통에 아들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에 아찔했던 때가 있어서였다.

이제 76세가 된 박성남 옹은 지난 13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중앙일보로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가 그린 건 한국의 모든 아들이었다. 전쟁의 와중에 헤어지고 다시 못 만나는 가족이 얼마나 많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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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 화가가 그린 아들 박성남의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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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출신인 박 화백은 전쟁 발발 후 서울에 먼저 와있었고, 부인 김복순 여사와 당시 네 살이었던 성남 군은 탱크가 지나간 자리를 따라 서울로 향했다고 한다. 곡절 끝 서울에 당도한 부인과 아들을 만난 박수근은 아들의 초상화를 그렸다. 박성남 옹은 인터뷰에서 "당시엔 답답했지만 이제 생각하면 내 마음까지 그리려고 그리 공을 들이신 것 같다고 이제는 깨닫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51세로 작고한) 아버지보다 이제 내가 나이가 훨씬 많아졌다"며 "아들로서 아버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하다 용기를 내어 신문사를 찾아왔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소원은 서울 용산에 박수근을 기리는 표지석을 하나 세우는 것이다. 왜 용산일까. 그는 "아버지의 작품활동에서 가장 중요했던 전시가 하나 있다"며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이어 "(무명 시절) 아버지가 힘드셨던 시절, 용산 미군 기지의 도서관에서 개인전을 하셨던 게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고, 우리 가족의 생계에도 큰 역할을 했다"며 "용산 전시에 대한 평론도 있고 하니 문화체육관광부와 용산구청 등 정부 관계자분들이 표지석에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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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창신동 시절. 화가 박수근과 김복순 여사, 딸 박인순. 이 마루에서 박수근 화백은 그림을 그리고 하모니카를 불곤 했다고 아들 박성남 옹은 회고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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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 작가는 미국과의 인연도 깊었다. 한국 미술계에 관심이 컸던 마거릿 밀러 등과의 교류를 통해 샌프란시스코에서 전시를 한 적도 있다. 그가 생계를 위해 미8군 PX에서 초상 화가로도 일했던 시절은 박완서 작가의 등단작 『나목(裸木)』 에도 등장했다. 소설 중 화가인 옥희도는 박수근이 모델이다.

박완서 작가는 박수근 화가와 미군의 일화를 다수의 에세이에 남겼다. 1985년 쓴 『초상화 그리던 시절의 박수근』엔 "그때 전쟁의 불안과 가난에 찌든 우리가 밖에서 보기에 (미8군) PX야말로 별세계"였다는 문장이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2021년 열었던 박수근 화가 전시에서 미군 시대가 중요히 다뤄지기도 했다. 미군 기지에 표지석이라도 남기고 싶은 박성남 옹의 마음이 가늠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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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의 '빨래터.' 그가 아내 김복순 여사를 만나 한 눈에 반한 곳이 빨래터였다고 한다. 사진 서울옥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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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 컬렉션에도 포함되고 그림 한 점에 수십억 원을 호가하지만, 박완서 작가의 글에 따르면 당시 박수근은 초상화 한 점에 6달러를 받았다고 한다.

박성남 옹 본인도 화가로도 활동했지만, 그는 본인보다는 아버지를 빛내는 데 힘을 쏟고 있다. 그는 "어린 시절 하모니카를 부시던 아버지, 조용하고 고독하지만 그림과 가족에 집중하는 삶을 사셨던 아버지는 우리 한국의 소박함과 진정성을 담아내려 하셨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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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이름을 빛내는 데서 삶의 보람을 찾는다는 아들 박성남 옹. 김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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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버지가 내게 주신 이름은 '남자로서 성공하라'는 뜻의 성남(成男)이었지만, 흙 토 변을 붙인 재 성(城)자로 바꿨다"며 "아버지 이름을 빛내는 토양이 되는 재와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어 "용산 표지석은 아버지라는 불꽃을 영원히 피우고 싶은 내 마음의 재와 같다"고 덧붙였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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