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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7 (목)

"훨씬 시원" 쿨링포그 서초엔 20개…같은 서울, 이 동네는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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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에서 주민 전수용(66)씨와 조명순(71)씨가 쿨링포그(안개형 냉방장치)를 쐬며 "시원하다"고 말했다. 장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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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덥지만 없는 것보다는 훨 낫지요. "

낮 최고기온이 30도까지 오른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 골목에서 전수용(66)씨와 조명순(71·여)씨가 집 앞 슈퍼 처마 끝에서 나오는 하얀 안개를 쐬며 “아 시원하다~”라고 연신 말했다. 물을 안개처럼 뿜어 주변 온도를 낮춰주는 ‘쿨링포그’다. 잠시 분사가 멈췄다가 3분쯤 후 다시 시작되자 전씨는 “또 나온다. 또 나온다”라며 조씨가 타고 있는 휠체어를 물안개 가까이로 가져갔다.

전씨는 “집에 에어컨도 없고 선풍기도 전기세가 많이 나와서 잘 안 트는데 이거(쿨링포그) 없으면 더워서 안 된다”며 “어떨 때는 집집마다 골목으로 나와서 일렬로 쭉 서 있기도 하다”고 말했다.

쿨링포그는 집에 냉방장치가 없거나 불가피하게 야외 생활을 해야 하는 시민들에게 ‘거리의 에어컨’이다. 고압 호스와 특수 노즐을 이용해 빗방울의 약 1000만분의 1 크기로 수돗물을 미세하게 분사한다. 분사된 물이 기화되면서 공기를 냉각시키는 원리로, 주변 온도를 3~5도 정도 내리는 효과가 있다. 몸에 닿아도 젖지 않고, 가까이에서 물안개를 쐬면 에어컨과 비슷한 정도의 시원함이 느껴진다. 올여름 ‘역대급 폭염’이 예고되자 서울시도 폭염 상황관리 태스크포스(TF)를 구축하고 쿨링포그를 비롯한 폭염 저감시설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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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오후 서울시청 앞에서 한 시민이 까치발을 들고 쿨링포그를 맞으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 사진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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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마포도 뜨거운데…강남 집중된 폭염 저감시설



중앙일보가 기상청 지역별상세관측자료(AWS)를 통해 서울 자치구별 지난주(10~16일) 최고 기온(오후 3시 기준) 평균을 분석해보니, 강남과 노원이 31.5도로 가장 더웠다. 이어 마포(31.4도), 광진(31.2도), 동대문(31.0도), 송파(31.0도)도 비슷하게 더웠다. 반면 각각 관악산과 북한산이 인접한 관악(28.6도), 은평(29.1도), 성북(29.3도), 도봉(29.8도), 강북(29.8도)은 비교적 시원했다. 중구도 29.7도로 낮은 편이었다. 이를 기준으로 강남과 관악의 온도 차는 2.9도까지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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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옥 기자


그런데 쿨링포그 숫자는 비교적 시원한 서초가 20개로 가장 많았다. 서울에서 가장 뜨거운 강남은 7개로 서초에 비해 적은 수준이었지만, 두번째로 가장 많았다. 강남과 함께 최고 기온이 가장 높았던 노원은 4개에 불과했다. 역시 비슷하게 더웠던 마포·동대문·송파는 쿨링포그가 한 개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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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옥 기자


횡단보도 앞에 설치된 무더위 그늘막도 자치구마다 편차가 컸다. 송파(268개), 강남(239개), 서초 (232개) 등 소위 ‘강남 3구’로 불리는 지역은 200개가 넘었지만, 나머지 자치구는 평균 100개 수준이었다. 가장 적게 설치된 종로는 57개로 송파보다 5배가량 적었다. 최고 기온이 높은 마포도 71개, 이어 서대문 78개, 강북 79개 등 저감시설 격차에 따른 이른바 ‘폭염 디바이드’가 나타나고 있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지역적인 특성 또는 자치구 자체 예산, 단체장의 의지에 따라 차이가 날 수 있다”며 “필요할 경우 서울시 예산을 지원해 시설을 확대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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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낮 최고기온이 30도를 기록하는 등 불볕더위가 계속된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네거리 횡단보도에서 시민들이 그늘막 아래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사진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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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당 최대 3억…“효율·형평성 고려해야”



서울시는 쿨링포그와 무더위 그늘막 외에도 스마트쉼터(버스 정류장 근처에 설치된 실내 대기 공간), 쿨링로드(지하수를 활용해 도로면에 물을 분사하는 장치) 등 폭염 저감시설을 확대하고 있다. 저감시설 설치 비용은 개당 쿨링포그 800만~3억원, 고정형그늘막 200만~700만원, 스마트형 그늘막 800만~1000만원, 쿨링로드 평균 3억 7000만원, 스마트쉼터 8000만~1억원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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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원 기자



높은 설치 및 유지 비용을 고려하면 저감시설을 더 효율적으로 배치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학술저널 『서울도시연구』에 등재된 효율성·형평성을 고려한 폭염취약지도 구성 - 폭염 저감시설로서의 쿨링포그 최적 입지 도출을 중심으로(심혜영 외)에 따르면 ▶서울에서 가장 기온이 높으면서 ▶하천이나 녹지가 주변에 없고 ▶보행자가 많으며(효율성) ▶노인·장애인 등 폭염취약집단이 많이 밀집해(형평성) 폭염 위험 정도가 가장 높은 곳은 서울역 버스종합환승센터다. 이외에도 강북구청 근처, 강남역 근처, 홍대입구역 부근을 쿨링포그의 최적지로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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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대구 동대구역 앞 버스정류장에 쿨링포그가 가동 중이다.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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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현재 서울 시내에 설치된 82개의 쿨링포그 중 41개는 공원 등 녹지에 밀집해 있었다. 서울역 버스종합환승센터가 있는 중구에 설치된 쿨링포그 7개도 대다수 공원에만 몰린 상황이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아무래도 도로는 공원보다 공간 및 비용상의 제약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올해부터 서울역 인근 희망지원센터 외벽 26m에 쿨링포그를 운영하는 등 최대한 많은 서울 시민이 이용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당 논문 공동 저자인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환경대학원장)는 “공원 등 산림이 있는 곳은 이미 증산작용으로 온도 저감 효과가 있어 제한된 예산으로는 열섬 효과가 높은 도심에 저감시설을 설치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또 “앞으로 폭염은 극단적인 기상현상 가운데 발생 확률이 99% 이상으로 가장 높은 심각한 상황”이라며 “단열이 안 돼 집 밖에서 지내는 폭염 취약 계층이 많은 상황에서 실외 도시 인프라를 확충하는 장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장서윤 기자 jang.seo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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