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 못 받나”… 환자들 텅빈 대기실서 분통
소속병원 4곳 교수 55% 동참
외래환자 평소보다 50% 줄어
분당 소화기내과 80%가 참여
尹 “비상대책에 만전을” 당부
정부, 공정거래위에 의협 신고
“환자 불안, 정부 압박 도구로 사용”
환자·의료단체 “당장 철회” 촉구
18일 의협 ‘전국 의사 총궐기대회’
연세의대·서울아산병원도 “동참”
정부 “진료 거부 불법… 엄정 대응”
서울대병원 무기한 휴진 번복에
전공의 “교수들에 기대한게 잘못”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들이 무기한 집단휴진을 시작한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만난 김성희(53)씨는 80세 아버지의 손을 꼭 붙잡고 이렇게 말하며 분통을 터뜨렸다. 김씨는 직장암에 걸린 아버지의 외래 진료를 위해 경북 포항에서 오전 5시 기차를 타고 머나먼 ‘상경’에 나섰다. 오전 3시에 일어나 고된 일정을 소화한 김씨는 “생명이 왔다 갔다 하는데 이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면서도 “아직 외래가 밀리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뿐”이라고 말했다.
막막한 환자들 서울대병원 교수들이 전공의 사태 해결 등을 요구하며 무기한 휴진을 시작한 17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에서 한 환자가 휠체어를 탄 채 지나가고 있다.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이번주 수술실 가동률은 전공의 집단이탈 이전 대비 33.5%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됐다. 최상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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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병원 교수들은 전공의 사태 해결을 요구하며 이날 무기한 휴진을 시작했다. 서울의대·서울대병원 비상대책위원회는 서울대병원과 분당서울대병원 등 소속 병원 4곳에서 환자 진료를 하는 전체 교수 970명 중 532명(54.8%)이 휴진에 동참한다고 밝혔다.
휴진의 여파는 병원 곳곳에서 확인됐다. 서울대병원 외래 진료 첫 방문 환자들을 위한 접수창구 대기석 곳곳은 텅 빈 자리로 남아 있었다. 창구 안내 봉사자는 “환자 수가 평소보다 50%는 줄었다”며 “집단휴진 영향인 것 같다”고 했다. 한 청소노동자도 “여기서 일한 지 3년이 다 돼 가는데, 평일에 이렇게 사람 없는 건 처음 본다”고 했다. 재활의학과·정형외과 등에서 진료를 보는 교수는 한두 명뿐이었다.
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 뇌신경센터는 이날 오전과 오후를 통틀어 환자를 받은 교수가 7명에 그쳤다. 병원 외래진료 일정표에 따르면 이날 센터의 진료 교수는 원래 14명으로, 절반이 진료에서 손을 놓은 셈이다. 평소라면 북적였을 진료실도 절반 이상 비어 있었다. 오후 1시 센터에서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는 20명이었는데, 할당되는 환자가 늘면서 교수 한 명에게 환자 7명이 몰렸다. 소화기내과도 교수 9명 중 2명만이 진료를 진행했는데, 모두 오후에만 환자를 봤다.
서울대병원 교수들이 전공의 사태 해결 등을 요구하며 무기한 휴진에 들어간 17일 서울대학교병원이 한산하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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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부인과는 눈에 띄게 환자 수가 줄었다. 진료실 앞에 대기하는 환자가 한 명도 없었다. 이날 유방암 치료 후 정기검진을 위해 병원을 찾았다는 한 환자는 “평소엔 지연 대기 문자를 받는 게 일상적이었는데, 의자가 전부 비어 있는 모습을 보니 어색하다”고 했다.
서울대병원 수술 대기실에서 만난 김모씨는 “난소암이 재발한 동생의 수술이 방금 끝났다”며 “당장 수술이 잘 끝났다는 안도감보단 앞으로의 항암 치료가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김씨는 “집단휴진 영향으로 혹여 치료가 미뤄질까 걱정된다”며 “암 환자에게 불안과 스트레스가 제일 안 좋다는데, 일부러 동생 앞에선 뉴스도 잘 안 튼다”고 했다. 서울대병원 노조 등에 따르면 하루 1800명가량인 암병원 진료예약이 이날 200~300명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불면증 치료를 위해 분당서울대병원 정신의학과를 찾은 박모(60)씨는 “한눈에 봐도 환자가 줄었더라”며 “의사 선생님들이 지금 급한 환자는 받고 계실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휴진이) 길어지고, 정말 아파도 치료를 못 받는 사람이 나오기 시작하면 그땐 모두의 마음이 돌이킬 수 없이 다칠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렇게 되기 전에 이 상황이 빨리 마무리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병원 밖 환자들도 휴진에 나선 서울의대 교수들을 향해 “환자의 불안과 피해를 정부를 압박하는 도구로 쓰고 있다”고 비난하고, 대한의사협회(의협)와 서울의대·서울대병원 비대위의 휴진 철회를 촉구했다.
의료 노조는 불법 휴진 비판 한국노총 전국의료산업노동조합연맹 조합원들이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의사 집단 휴진 철회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재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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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환자단체연합회(환단연)는 입장문에서 “서울의대 비대위가 목적 달성을 위해 무기한 전체 휴진이라는 선택을 꼭 했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며 “정부를 압박하는 도구가 환자의 불안과 피해라면 그 어떤 이유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전공의 9000여명이 4개월 이상 의료현장을 이탈한 상황에서 의대 교수마저 무기한 전체 휴진에 돌입하면 의료공백으로 인한 환자 불안과 피해는 더욱 커질 것이며 환자 안전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주장했다.
종교계도 호소문을 발표하며 정부와 의료계의 대화를 촉구했다. 한국교회총연합은 이날 “의료계의 집단휴진은 어떤 이유로도 국민들이 납득하기 어렵다. 휴진 결의를 속히 철회해 달라”고 밝혔고, 한국천주교주교회의도 “집단휴진 때문에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비롯한 기본권이 더 심각한 상해를 입는다면, 이는 정부와 의사단체 모두의 책임이고 탓”이라고 강조했다. 대한불교조계종도 “집단 휴업이라는 극한적인 방편은 생명 윤리적으로 옳지 않다”며 “더 이상의 의료 공백은 없어야 한다”고 했다.
교수들은 의료정책 비판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가 17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융합관에서 휴진 집회를 열고 의료정책을 비판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최상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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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대·서울대병원의 무기한 휴진이 이날 시작된 가운데 의협은 18일 오후 2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에서 ‘전국 의사 총궐기대회’를 열고, 전국 3만6000여 개원의 등을 포함한 집단휴진에 나선다. 연세의대 교수들은 27일부터 무기한 휴진하고, 서울아산병원 교수들은 다음달 4일부터 일주일간 휴진한 뒤 정부 정책 변화에 따라 연장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정부는 의료계 집단휴진에 강경 대응할 방침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한덕수 국무총리와 주례회동에서 “의료계 불법 진료 거부에 대한 비상 대책에 만전을 기하기 바란다”고 당부했다고 대통령실이 전했다. 의료계 집단휴진을 ‘불법 진료 거부’로 간주한 것이다.
경찰은 보건당국의 고발이 있으면 즉시 수사에 착수할 방침이다. 조지호 서울경찰청장은 이날 “보건당국이 현장실사할 때 요청이 오면 협조해 도와주는 역할을 하겠다”며 “복지부가 관련 법률에 따라 고발하면 경찰이 수사를 맡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경찰청 공공범죄수사대에서 수사 중인 ‘의협 전현직 임원 고발 사건’과 관련해선 “대체로 확인할 건 확인했다”며 “임현택 의협 회장을 얼마 전 소환했는데 1시간도 안 돼서 조사를 거부하고 귀가했다. 조만간 추가 소환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17일 서울시내 한 종합병원에서 의료진들이 이동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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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들은 이날 환자 진료 대신 집회와 심포지엄을 열고 정부를 향해 △전공의 행정처분 완전취소 △현장 의견 반영 가능한 상설 의·정 협의체 △2025년도 의대 정원 재조정을 요구했다.
전공의들은 서울의대 교수들이 휴진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한 전공의는 의사 커뮤니티에 “휴진한다면서 서울대병원에 온 환자들 진료를 다 봐주고 있다”며 “처음부터 (휴진한다는 말을) 믿지 말았어야 한다. 교수들에게 기대를 한 게 잘못”이라고 비꼬았다.
방재승 서울의대 비대위 투쟁위원장이 “정부가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고, 전공의와 의대생이 복귀하지 않으면 교수들은 휴진을 철회하고 환자 곁으로 돌아가겠다”고 한 발언에 대해 한 의대생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원래 씹수(욕설+교수)들이 하던 대로 한 것”이라고 했다.
이예림·윤솔·이정우·조희연·백준무 기자, 이강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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