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경정'했지만 'SK주식도 재산분할 대상' 판단 유지
노태우 기여·주식 취득 원천·매각 뒤 사용처 등 다양한 쟁점 판단
취재진 질문 듣는 최태원 회장 |
(서울=연합뉴스) 이대희 기자 = 최태원(63) SK그룹 회장과 노소영(63)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 항소심 재판부가 판결문을 경정(수정)한 것과 관련해 18일 이례적으로 장문의 설명자료까지 배포하며 상세한 설명에 나섰다.
최 회장이 직접 기자회견에까지 등장해 수정된 부분이 '치명적 오류'라며 여론전에 나서자 논란이 확산하지 않도록 진화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재판부는 해당 오류는 'SK 주식이 분할 대상이 맞다'는 결론으로 이어진 면밀한 쟁점 판단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라며 최 회장 측의 주장을 일축했다.
◇ 최태원 측 판결문 오류 주장에 재판부 이례적 설명자료로 반박
서울고법 가사2부(김시철 김옥곤 이동현 부장판사)는 이날 '17일자 판결경정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A4용지 4쪽 분량의 설명자료를 내고 '치명적 오류'라는 최 회장 측의 전날 기자회견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재판부가 판결 경정에 이어 이를 설명하는 문건을 언론에 배포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재판부는 "원고와 피고가 혼인한 1988년부터 올해 4월 16일까지 최 회장 부친(최종현 선대회장)에서 최 회장까지 이어지는 경영활동에 관한 '중간 단계'의 사실관계에 관한 계산 오류를 수정한 것"이라며 "이는 재산 분할 기준 시점인 올해 4월 16일 SK 주식 가격인 16만원이나 구체적인 재산 분할 비율 등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선대회장 사망 무렵인 1998년 SK 주식 주당 가치를 100원으로 판결문에 썼다가, 최 회장 측의 지적에 따라 1천원으로 전날 경정했다.
원 판결문에는 선대회장의 재임 기간인 1994∼1998년 주식 주당 가치가 8원에서 100원으로 12.5배 올랐고, 최 회장이 경영자가 된 1998∼2009년에는 3만5천650원으로 355배 올랐다고 적시돼 있었는데 이를 바로잡은 것이다.
최 회장 측은 이같은 경정에 따라 최 회장의 기여도가 선대회장보다 줄어들며, SK 주식이 분할 대상이라 할지라도 분할 액수는 1조3천808억원보다는 훨씬 적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정에 따라 해당 기간 선대회장과 최 회장의 기여도는 125배와 35.6배로 역전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궁극적으로는 판결문의 결론이 뒤바뀔 정도의 오류가 아니라는 입장을 이날 설명자료에서 자세히 밝혔다.
재판부가 2009년 주가를 제시했던 것은 당시가 주식 상장이라는 사건이 있던 때로, 이는 '중간 단계'일 뿐이라고 규정하며 최 회장 측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두 사람의 기여도 판단을 위한 주가의 마지막 기준점은 2009년이 아닌 재산분할 기준 시점인 올해 4월 16일(16만원)이 돼야 하고, 그에 따른 기여도는 선대회장과 최 회장이 각각 126배와 160배가 되기에 역전되지 않는다고도 강조했다.
이혼소송 2심 공판 마친 노소영 관장 |
◇ 항소심, 4가지 쟁점 판단으로 "SK 주식은 특유재산 아냐" 판단
무엇보다 항소심 재판부가 오류 수정이 전체 판결문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단언한 것은 이미 판결문에서 왜 SK 주식이 분할 대상이 되느냐를 심도 있게 논증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재판부는 일단 SK 주식이 1994년 최종현 선대회장으로부터 증여받은 2억8천만원을 통해 취득했으므로 부부 공동의 재산이 아니라는 최 회장의 주장에 대해 "돈의 동일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원천은 부부의 공동 재산이라고 판단했다.
돈을 증여받은 시점(5월)과 주식을 매입한 시점(11월)도 다르고, 액수도 일부 차이가 난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고 지적했다.
1994년 11월 21일 최 회장이 주식 매입대금을 현금으로 출금해 '불상의 계좌'로 이체한 뒤 11㎞ 떨어진 다른 지점에서 자기앞수표로 입금한 시차가 7분에 불과한 점도 석연치 않다고 봤다.
5만원권이 없었던 당시 은행원이 1만원권 2만8천여장을 기계로 세고 100만원 단위로 묶는 작업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다.
재판부는 노태우 전 대통령 등 노 관장 측이 SK그룹 성장에 기여한 점도 주식이 분할 대상에 해당하는 근거라고 봤다.
김옥숙 여사가 보관해온 1991년 약속어음과 메모를 토대로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으로 추정되는 300억원이 최종현 회장 쪽으로 흘러 들어갔으며, 최 전 회장의 원 자산과 합쳐져 당시 선경(SK)그룹의 종잣돈이 됐다고 판단했다.
약속어음이 오히려 노 전 대통령의 퇴임 후 활동비를 주겠다는 약속이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이미 수천억원에 달하는 비자금을 확보한 노 전 대통령이 이를 받았다는 것이 납득하기 어렵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와 더불어 노 전 대통령의 '뒷배'가 있어 SK그룹 성장에 무형적 기여가 있다고도 재판부는 봤다.
선대회장은 1998년 사망하기까지 출처가 불분명한 돈으로 기업을 인수하는 등 모험적이고 위험한 경영활동을 했는데, 노 전 대통령이 사돈이므로 '적어도 불이익은 받지 않을 것'이라는 주관적 인식에 더해 '실제로 별다른 불이익이 없었다'는 객관적 상황이 함께 작용했다고 판단했다.
즉, 대통령과의 사돈 관계를 경영의 보호막 내지 방패막으로 인식해 성공적인 경영활동과 성과를 이뤄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SK 주식은 그룹의 경영권 행사를 위해 사용됐을 뿐이고, 그 가치 증가는 대한민국 경제가 전반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SK 임직원이 이룬 성과"라는 최 회장의 주장도 배척했다.
최 회장은 주식을 담보로 잡아 돈을 빌리거나 세 차례 매각해 돈을 융통했는데, 자신의 빚 상환이나 투자, 양도소득세 납부 등에 사용하는 등 경영권 행사 외에도 개인적 용도로 사용했다는 점이 근거가 됐다.
최 회장은 자신이 스스로 회사를 일으켜 세운 '자수성가형' 사업가가 아니라 선대회장으로부터 경영권을 승계받은 '승계상속형' 사업가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주식 가치 상승에 기여한 부분이 없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런 최 회장의 주장은 임의적 구분으로 봐야 한다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구분대로면 승계상속형이라 볼 수 있는 삼성그룹 이건희 전 회장과 이재용 회장이 무보수 경영을 한 점 등을 재판부는 예로 들었다. 배당금이나 소유 주식의 가치 상승을 통해 경영활동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예시라는 것이다.
재판부는 이 쟁점을 판단하는 과정에서 최 회장 부자의 기여분 계산에 오류를 범했는데, 어차피 전체 주식 보유 기간 중 노 관장 측의 기여가 넉넉히 인정되므로 최 회장 부자가 어느 정도로 기여했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부수적인 요인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이런 판단에 더해 동거인인 김희영 티앤씨재단 이사장 측에 대한 경제적 이익 제공, 8천835억원 규모의 투자 실패, 노 관장의 양육 전담과 아트센터 나비 관장 재직 등을 두루 고려할 때 재산 분할 비율을 최 회장 65%, 노 관장 35%로 결정한 데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 재판부의 논지다.
서울고법 전경 |
2vs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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