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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7 (목)

"상법 손 보며 배임죄 폐지·이사 면책? 개혁 아닌 개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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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임죄 폐지하면 피해자 증거 수집 방법 없어…韓만 배임죄 있는 이유"

"이해상충시 경영판단원칙 적용하지 않는게 기본"…"상법 개정 차라리 말라"

편집자 주
최근 재계의 최대 이슈는 상법 개정이다. 정부는 기업 가치 제고(밸류업)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자본시장에서 요구해 온 이사의 주주충실 의무 도입을 골자로 한 상법 개정을 계획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에 재계는 '기업 경영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데 상법 개정의 배경과 영향을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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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싣는 순서
①주주 권리 정상화 시도때마다 재계 "줄소송 우려"…이번에도 판박이
②"상법 개정하며 배임죄 폐지·이사 면책? 개혁하는 척하며 개악하는 것"

재계가 이사의 주주충실 의무 도입을 골자로 한 상법 개정안에 반대 목소리를 내며 기업 가치 제고를 위해 배임죄 개정과 면책요건인 경영판단 존중 명문화 필요성을 내걸고 나섰다.

상법 개정안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던 정부가 개정 쪽으로 돌아서면서 '반대 급부'로 경영진 보호 장치를 요구하고 나선 것인데 이런 주장에 대해 정부가 화답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런 방향의 제도 개편은 "개선이 아닌 개악(改惡)"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상법 개정 반대' 재계, 오히려 "배임죄·경영판단 손 봐야" 주장


18일 관련업계 따르면 정부가 기업 가치 제고(밸류업) 프로그램 일환으로 기업 이사(사내·사외이사 포함)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를 넘어 주주로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상법 개정안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재계의 볼멘소리가 계속되고 있다.

재계는 이사의 주주충실 의무 도입을 골자로 한 상법 개정안엔 반대 목소리를 분명히 하며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서는 배임죄와 면책 요건인 경영판단 문구 등을 시급하게 손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배임죄와 관련해 현행법은 △형법상 일반 배임 △형법상 업무상 배임 △상법상 특별배임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가법)상 배임 규정을 두고 있다.

재계에서는 배임죄의 적용 범위가 넓고 법정형이 높아 기업활동에 어려움이 있다고 주장하며 이를 손봐야 한다고 오랫동안 요구해왔다.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상장기업 153개사(코스피 75개사·코스닥 78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기업의 84.9%는 배임죄 기준이 불명확하다고 답했고, 24.8%는 최근 5년간 불명확한 배임죄 기준 때문에 의사결정에 애로를 겪은 적이 있다고 밝혔다.

대한상의는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서는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 등 규제보다 자유로운 기업경영활동을 보장해주는 법제도 문화가 정착되는 것이 더 시급하다"고 주장하며 업계에서 '경영판단 존중원칙 명문화'를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은 이사의 의사결정이 선관주의(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를 따랐다면 결과적으로 문제가 되더라도 책임을 면책해주는 경영판단원칙이 있는데, 국내도 이런 면책조항을 신설해 달라는게 재계의 요구다.

정부, 재계 요구에 화답…"이럴 거면 상법 고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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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현 금감원장, 상법 개정 이슈 브리핑.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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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재계의 요구에 정부는 즉각 화답하는 모양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12일 "이사가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합리적으로 경영 판단을 한 경우 민형사적으로 면책 받을 수 있도록 '경영판단 원칙'을 명시적으로 제도화한다면 기업 경영에도 큰 제약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14일에는 "상법상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고 배임죄를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17일 대통령실도 배임죄 폐지를 전제로 상법 개정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기류를 내비쳤다.

하지만 배임죄 폐지와 경영판단 원칙 등 경영권 보호 장치 강화를 전제로 한 상법 개정은 "개선이 아닌 개악(改惡)"이라는 지적도 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박상인 교수(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재벌개혁위원장)는 "배임죄 폐지와 경영판단 손질을 전제로 하는 상법 개정은 개선이 아닌 개악"이라며 "그런 방향으로 개정할 것이라면 제도를 손보지 않는 것이 낫다"고 일갈했다.

박 교수는 "'재벌'이라는 소유·지배구조가 선진국에 없는 구조이고, 이들이 이사진을 사실상 낙점하고 있는 특성 때문에 우리나라에만 '배임죄'가 있는 것"이라며 "아울러 미국은 징벌적 배상이 있고, 주주대표 소송시 원고(피해자)가 증거를 수집할 수 있지만 국내는 검찰의 배임 수사가 이사들이 일반 주주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하는 하는 일탈을 막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배임죄 폐지 등에 연동한 상법 개정안은 '밸류업'이 아닌 '밸류다운'"이라며 "검사 출신인 대통령과 금감원장이 이를 모를리 없는데, 재계 의견에 동조하는 것을 보면 개혁하는 척하면서 개악을 하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상법 개정과 경영 판단을 연결 짓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이상훈 교수는 "미국에는 이사의 의사결정이 선관주의 의무를 따랐다면 결과적으로 회사에 손해가 발생하더라도 면책해 주는 '경영판단의 원칙'이 있다"며 "다만 이해상충이 발생시에는 경영판단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이사가 지배주주에게 유리하고 회사나 일반주주에게 손해가 될 수 있는 결정'을 하는 것은 대표적인 이해상충 발생 상황"이라며 "경영 판단의 원칙이 적용될 수 없다"고 말했다.

설 익은 경영 판단 원칙 명문화가 상법 개정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 우려도 제기된다.

와이즈포레스트 대표인 천준범 변호사(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부회장)는 "배임죄 폐지 여부보다 중요한 것이 경영판단 원칙 적용 유무"라며 "주주 충실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와 대주주, 일반주주 간 이해가 상충될 때 일부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결정을 하고도 '경영 판단 원칙'에 따른 결정이라고 주장하며 면책이 된다면 상법 개정안은 형해화(形骸化·내용은 없이 뼈대만 남는 것)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합병과 분할 같은 자본거래가 지속되고 일반주주들이 지속적으로 손해를 보는 구조가 고착화되어서 이런 이슈가 발생했을 때 이사가 회사 및 지배주주(대주주), 일반주주의 이익을 비례적으로 고려해서 의사 결정을 하도록 제도를 손 봐 달라는게 자본시장의 요구였다"며 "이런 의사 결정은 미래를 생각할 필요도 없이 당장 손해와 이익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이와 관련한 이사의 판단이 문제가 됐을 때 경영 판단을 이유로 면책이 될 수도 없고 면책 되어서도 안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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