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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7 (목)

“2024년 북-러 조약은 윤석열 정부 한-미 동맹의 ‘거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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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오른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9일 평양에서 정상회담 뒤 서명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로씨야련방 사이의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을 들고 악수를 하고 있다. 평양/타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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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19일 평양에서 서명한 북-러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조약’(2024년 조약)은 한반도 유사시 러시아의 군사 개입을 가능하게 할 ‘제도적 통로’다. 동시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서방과 전면전으로 확대될 경우 북한의 군사적 지원·개입을 가능하게 할 통로이기도 하다.



전문과 23개조로 이뤄진 이 조약에는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이 북-러 관계를 군사동맹을 포함한 ‘가치·포괄·전략 동맹’으로 발전시키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문제는 이 조약으로 인해 1990년 9월30일 한-소 수교 뒤 남·북·러 3각 관계와 동북아 안보 균형에 중대 변화가 불가피해졌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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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잖은 전문가들은 한반도 유사시 러시아의 군사 개입이 가능해진 대목에 주목해 ‘2024년 조약’을 냉전기인 1961년 조-소 동맹 조약의 ‘자동개입’ 조항 복원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아무런 단서 없이 “지체 없이 모든 수단으로써 군사적 원조 제공”을 명시한 ‘1961년 조약’과 달리 2024년 조약엔 3조와 4조에 ‘2중의 완충장치’가 달려 있다. 군사 개입의 근거라는 점에선 유사하지만, ‘자동개입’의 맥락에선 질적 차이가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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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2024년 조약’은 4조에서 “무력침공을 받아 전쟁 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지체 없이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고 밝히고 있다. 다만 “유엔 헌장 51조와 북한·러시아 법에 준하여”라는 전제조건이 붙었다. 1961년 조약의 자동개입 조항과 다른 점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도 “자동군사개입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엔 헌장 51조’는 “무력공격”을 받은 유엔 회원국은 “개별적 또는 집단적 자위의 고유한 권리”(개별적·집단적 자위권)를 행사할 수 있다는 조항이다. 다만 회원국은 자위권 조치를 “안보리에 즉시 보고”해야 하고 “안보리는 국제평화와 안전의 유지 또는 회복에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조치를 언제든지 취한다”는 단서가 달려 있다. 회원국의 자위권 행사를 유엔 안보리가 사후 조정할 권한을 명시한 것이다. ‘유엔 헌장 51조’에 따른 자위권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북대서양조약’ 5조(집단안보 원칙)와 미-일 안전보장조약 5조 등에 명시되는 등 국제법이 인정하는 권리다.



“북-러 법에 준하여”라는 문구도 한-미 상호방위조약 3조의 “각자의 헌법상의 수속에 따라”, 북대서양조약 11조의 “각국의 헌법적 절차에 따라 이행” 등과 같은 맥락이다. 군사적 자동개입을 가로막거나 회피하려는 국제법·국내법적 안전장치다. 문제는 북-러가 자위권 행사를 명분으로 빈발하는 군사 충돌을 막으려는 ‘제어장치’의 정신을 얼마나 진지하게 지키려 하느냐다.



2024년 조약의 4조가 ‘전시’ 대비 조항이라면 3조는 전시가 아닌 ‘평시 위기 상황’ 대응 조항이다. 3조가 4조에 선행한다. 3조는 “직접적인 위협이 조성되는 경우”에 “서로의 입장을 조율”해 “가능한 실천적 조치들을 합의”할 목적으로 “쌍무협상통로”를 “지체 없이 가동시킨다”고 밝히고 있다. 2000년 2월 체결된 북-러 ‘친선·선린·협조 조약’의 “침략 위험, 평화·안전 위협 정황으로 협의·협력 필요 때 지체 없이 접촉”한다는 조항을 떠올리게 하는데 이번엔 “쌍무협상통로”를 명시한 대목이 결정적으로 다르다.



단순히 ‘접촉’만 명시한 2000년 조약과 달리, 위기 상황 때 북-러의 ‘사전’ “조율”(협의)과 “합의”를 목적으로 한 ‘전략대화’ 틀을 새로 마련해 가동하겠다는 제도적 접근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냉전기 북·중·러 3국 관계에 밝은 전직 정부 고위 관계자는 20일 한겨레에 “냉전기 중·소 양국은 북한이 아무런 협의 없이 사고를 치고 사후 수습을 떠미는 행태에 불만을 갖고 ‘사전 전략대화’를 북쪽에 요청해왔고, 중국은 지금도 북쪽에 요청하고 있으나 사전 협의 제도화는 지금껏 없었다”며 “4조는 그런 맥락에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2024년 조약을 계기로 북-러 관계가 사실상 동맹 관계로 격상됐다며 윤석열 정부의 가치 외교를 비판하고 변화를 촉구했다.



김정섭 세종연구소 부소장은 “동맹은 군사적인 상호 원조 의무를 규정하는 것이 본질이므로 이제 북-러 관계도 넓은 의미의 동맹으로 간주하는 게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안보 분야 원로는 “북-러 조약은 윤석열 정부가 강조해온 ‘가치·포괄·전략 한-미 동맹’의 ‘미러 이미지’(거울상)”라며 “우리가 뿌린 씨앗이 자라 우리의 평화와 안보를 위협하게 된 기막힌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직 정부 고위 관계자는 “북-러 관계의 포괄 동맹화로 윤석열 정부의 ‘힘에 의한 평화’ 정책이 작동되기는커녕 역효과를 내고 있음이 명확해졌다”며 “대외전략의 근본적인 재검토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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