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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7 (목)

‘사라져 없어질 직업들’에게…익살스럽게 건네는 작별 인사[책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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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어떤 동사의 멸종
한승태 지음
시대의창 | 404쪽 | 1만8500원

텔레마케터(0.99), 화물·창고 노동자(0.99), 레스토랑 요리사(0.96), 청소노동자(1.0). 괄호 안 숫자의 의미는 무시무시하게도 ‘대체 확률’이다. 1에 가까울수록 컴퓨터나 기계에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 앞서 나열한 4개 직업은 시한부 선고를 받고 멸종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셈이다.

다양한 일터의 모습을 기록해 온 르포 작가 한승태는 어느 순간부터 이들 직업에 대한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우리의 일상을 먹여주고 씻겨주고 가끔씩은 꿈꾸게도 해준 세계”에 대한 격식 갖춘 작별 인사가 필요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어떤 동사의 멸종>은 한승태가 언제나처럼 직접 자신의 몸으로 부딪혀 건넨 진한 작별 인사다. <퀴닝>(2013년 출간된 <인간의 조건> 개정판), <고기로 태어나서>(2018)에 이은 그의 3번째 노동 에세이이기도 하다.

저자는 콜센터 상담원, ‘까대기’라 불리는 택배 승하차, 뷔페식당 주방 요리사, 빌딩 청소노동자로 취업한다. 도시민이 하루 한 번은 이용하거나 마주치게 되는 친밀한 직업들이다. 그는 ‘전화받다’ ‘운반하다’ ‘요리하다’ ‘청소하다’의 동사로 구성된 각 부에서 노동의 렌즈로 오늘날 한국 사회의 모습을 담는다. 그에게 이들 직업의 소멸은 ‘동사(動詞)의 멸종’과 같다. 전화받고 운반하고 요리하고 청소하는 세계가 사라지면 그 세계가 만들어내던 특정한 종류의 인간 역시 사라진다.

일종의 ‘장례식 풍경’에 관한 기록이지만, 곡소리만 흘러나오지 않는다. 그 안에는 함께 먹고 마시며 웃고 떠드는 흥겨운 순간이 있다. 저자는 특유의 익살넘치는 문장으로 “노동의 공간 안에서 펼쳐지는 고통과 욕망, 그것들의 색깔, 냄새, 맛까지 전부 기록”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힘이 있어 400여쪽을 한 번에 내달리게 만든다.

그러나 멸종의 현장을 지켜보는 일은, 그것이 저자를 한 번 통과한 ‘찍먹’에 불과한 경험이라 해도 씁쓸할 수밖에 없다. 특히 중간중간 각주로 등장하는 수많은 직업의 대체 확률 중 내 것을 발견할 때면 그때까지 쿡쿡 새어나오던 웃음이 순식간에 증발해버린다.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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