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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5 (월)

[책볼래]"쉿! 책만 보세요" 사일런트북클럽이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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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없던 새로운 형식의 '침묵의 독서 클럽'

전 세계 50개국 1천개 클럽 활동…최근 개설 급증

노컷뉴스

스마트이미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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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애틀랜타의 카페 곳곳에는 수 백 명의 사람들이 책을 들고 모여든다. 뉴저지의 한 지역서점에는 평일 저녁 10여 명이 모여 의자나 바닥에 쿠션을 깔고 누워 책을 읽는다. 낭만의 도시 샌프란시스코의 바와 갤러리에서도 여럿이 모여 책을 읽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분주한 카페 분위기와는 달리 책장을 넘기는 소리만 들리는 이 모임의 정체는 독서 커뮤니티 사일런트북클럽(Silent Book Club)이다. 전 세계 50개국 1000개 이상의 모임을 둔 이 단체는 자신이 거주하거나 원하는 도시에서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독서 클럽이다.

스마트폰의 등장 이후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도서 판매량이나 독서량은 눈에 띄게 줄고 있지만 최근 미국의 주요 도시는 물론 유럽 곳곳에서 책을 읽는 이 독서 클럽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특히 사일런트북클럽은 독특한 방식으로 운영되면서 독자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전통적인 독서 클럽은 선택한 책을 읽고 참가자들이 서로의 생각을 발표하거나 공유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때론 프로그램에 맞춰 선택한 책을 다 읽기 위해 애를 쓰기도 하고 남들 앞에서 책을 읽고 느낀 점을 고상한 표현으로 해야 한다는 압박이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근래 독서 클럽이 대중화되지 못하는 이유는 바쁜 일상 때문이기도 하지만 책은 좋아하면서도 내향적 성향 때문에 남들 앞에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어려워 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우리의 일상을 바꾼 또 다른 현상 중 하나로 보기도 한다.

사일런트북클럽의 모임은 읽을 책을 정하지 않는다. 전자책, 오디오북, 교과서, 만화책도 상관 없다. 모임 장소와 시간이 공지되면 이 단체의 모토인 'BYOBook(Bring Your Own Book)'에 따라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가져와 각자 음료나 음식을 시켜 먹으며 다른 이를 의식하지 않고 1시간 가량 편하게, 그리고 조용히 책을 읽다 가면 된다. 독서 토론이나 모임 참가자들과 어울려야 하는 친목 일정도 딱히 없지만 모임 호스트가 필요하다면 책 읽기가 끝난 뒤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는 있다. 참석 여부는 각자 선택하면 된다. 회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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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런트북클럽 웹사이트, 공동창립자 기네비어와 로라, 클럽 전 세계 지부 클럽 위치도. 홈페이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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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런트북클럽은 2012년 책 읽기를 좋아했던 기네비어 드 라 메어(Guinevere de la Mare)와 로라 글루하니치(Laura Gluhanich) 두 친구가 숙제처럼 느껴졌던 전통적인 독서 클럽에서 벗어나고 싶어 만들었다고 한다. 두 사람은 한 술집에서 만나 한 시간 동안 책을 읽었고 #silentbookclub 해시태그와 함께 소셜미디어(SNS)에 책과 와인 사진을 게시하자 모임에 합류하겠다는 친구들이 늘면서 보다 공식적인 구조를 마련하기 위해 시작한 것이 출발점이었다.

이 클럽의 특징 중 하나는 모임을 위한 공간을 대관하는 대신 공공장소를 선택한다.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한다는 원칙을 따르기 때문이다. 지역 서점이나 커피숍, 고양이 카페나 도서관, 피자 가게, 바 아니면 가까운 공원을 찾기도 한다. 자연스럽게 책을 읽는 모습을 노출할 수 있는 것도 다른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클럽은 최근 사회적 기능에 대한 주목을 받으면서 지역의 공공기관이나 대학, 갤러리, 호텔, 지역 서점 등으로부터 러브 콜을 받고 있다. 모임 공간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지역사회 커뮤니티를 강화하는 다양한 캠페인을 전개하기도 한다.

국내의 경우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대면 활동이 크게 늘었지만 온라인 독서 플랫폼도 함께 성장했다. 그믐, 독파, 플라이북 등이 대표적이다. 유료와 무료 플랫폼이 있지만 책을 대여해주는 등 여러 프로그램에 따라 유료 운영이 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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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컬럼비아, 샌디에고, 그리스 아테네 클럽과 코로나19 펜데믹 기간 비대면 활동. 홈페이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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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독서 플랫폼의 인기는 코로나19로 비대면과 재택근무가 늘면서 온라인 만남에 익숙해져서다. 불필요한 대면 활동을 피할 수 있어 온전히 책에만 집중할 수 있고 필요한 내용만 선택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느슨한 연대'가 장점으로 꼽힌다.

다만 사일런트북클럽이 다른 점은 고요가 가진 평온함 속에서 자유롭게 책을 읽는 시간을 가지면서도 다중 장소에서 함께 책을 읽는 친구라는 동질감과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 컬럼비아대학 정신의학과 특별강사인 프랭클린 슈나이어는 워싱턴포스트에 "코로나19 팬데믹은 젊은층의 직접 대면 시간을 크게 줄였다"면서 "엔데믹 이후에는 낯선 사람과 교류하는 것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이 증가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결과적으로 참여하기에 편안하면서도 불안하지 않을 정도의 사람이 모이는 환경을 찾으려는 심리"라며 "사일런트북클럽은 자전거나 하이킹 동호회처럼 활동에 참여하는데 큰 부담이 없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원하는 활동을 하면서도 사회적 관계는 자신이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잉글랜드 북동부 험버사이드에 위치한 도시 헐(Hull)에서 클럽 지부를 운영하는 엘리 크로스비 역시 BBC와 인터뷰에서 "내향적인 사람이라면 밖에 나가서 사교 활동을 한다는 생각 자체가 상당히 두려울 수 있다"며 "책에 대해 지식을 드러내거나 품격 있는 말을 준비하지 않아도 조용히 앉아서 함께 책을 읽을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고 말했다.

미국 뉴저지주 남부지역 말튼 출신의 영업관리자로 일하는 제니퍼 레예스는 "영업직을 하면서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 편하지만 개인의 사교 활동과는 엄연히 다르다"면서 "독서 클럽에 처음 참여했을 때 처음에는 혼자였지만 두 번째 참석 때 책 읽기 시간 시작 전까지 30분 동안 한 여성과 책에 대해 깊이 대화하며 친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시간은 정말 특별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침묵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의 매력을 어떤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면서도 "각자 다른 목적을 위해 도서관에 모여 있는 것과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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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서점에서 시민들이 책을 살펴보고 있다. 김민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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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런트북클럽은 미국과 영어에 익숙한 유럽권에 주로 분포되어 있다. 최근 아시아 지역에서도 활성화되면서 클럽이 늘고 있다. 한국에도 2개 지부 클럽이 활동하고 있다. 한 곳은 경기도 평택에 위치한 주한미군 캠프 험프리스에 위치해 있고, 나머지 한 곳은 전라남도 전주에 위치해 있다. 아쉽게도 국내에는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누구나 쉽게 지부 클럽 호스트로 참여가 가능하고 거주 도시에 없다면 지부 클럽 개설도 가능하다.

사일런트북클럽의 조용한 돌풍으로부터 배운다. 책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K-문화강국' 한국에도 의미가 되지 않을까. 상업성과 강압성을 배제하고 독자들의 풀뿌리에서 건강한 책 읽기를 다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책이 짐이 되지 않게 하고 온전히 책에 집중할 수 있는 작은 시간을 공유하고 뜻있는 사람들과 서로 등을 기댈 수 있는 평온함과 온기가 주어진다면 책을 찾는 사람들도 더 많아질 것이라는 작은 희망에 기대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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